메뉴 건너뛰기

     

자료실

조회 수 27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고병권의 비마이너

그의 선물

 

 

 고병권

맑스, 니체, 스피노자 등의 철학,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런저런 책을 써왔다. 인간학을 둘러싼 전투의 최전선인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자리를 잡고 공부하고 있으며, 읽기의집 집사이기도 하다. 앞으로 국가의 한계, 자본의 한계, 인간의 한계에 대한 공부를 오랫동안 할 생각이다.

 

 

 

 

  내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박경석 대표를 처음 만난 것은 2007년이다. 동료들과 만든 잡지 창간호에 그의 인터뷰를 싣고 싶었다. 당시 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를 요구하며 한강대교를 기어가던 장애인들의 시위에 강렬한 인상을 받은 터였다. 그는 인터뷰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문제는 날짜였다. 2001년 이동권 투쟁이 시작된 이래 그는 바쁘지 않은 적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때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국회통과를 앞둔 시점이라 더 바빴다. 날짜 잡기와 미루기가 반복되었다. 그가 바쁜 만큼 나도 초조했다. 인터뷰 날짜가 옮겨질 때마다 잡지 창간 일정이 옮겨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터뷰하기를 잘했다. 그날 나는 단번에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그의 말에는 그런 힘이 있었다.

 

  그가 이번에 책 <출근길 지하철>(위즈덤하우스)을 펴냈다. 부제가 ‘닫힌 문 앞에서 외친 말들’이다. 이 부제는 내가 자주 보았던 풍경이기도 하다. 지하철플랫폼에서 그가 발언을 시작하면 서울교통공사 직원이 곧바로 방해 방송을 시작한다. 그리고 열차가 도착하면 보안관들은 장애인들의 탑승을 막은 채, “일반승객 있어요?” “열차 타실 시민분 계세요?”를 외치며 비장애인들만을 탑승시킨다. 박경석의 말은 문 너머에 닿지 않는다. 탑승을 거부당한 동료들만이 묵묵히 듣고 있을 뿐이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보안관들은 이들을 아예 역사 바깥으로 끌어낸다.

 

  벽이 되어버린 문 앞에서 그는 도대체 무슨 말을 했던 걸까. 이 책에는 당시 그가 했을 법한 말들이 담겨 있다. 왜 욕먹을 게 빤한 출근길 지하철 행동에 나섰는지, 왜 좀 더 온건한 방법으로 시민들의 지지를 구하지 않았는지, 장애인들이 요구하는 탈시설이나 권리중심일자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니 그가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따로 있었음을 알 것 같다. 그에게는 간절히 전하고픈 선물이 있었다. 한 편의 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천둥과 소낙비와 바람의 시. 이 시 한편을 다 전할 수 없다면 폴 발레리가 쓴 한 줄의 시구라도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이 시구는 한 장애인 청년이 머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처음에는 무서웠고 다음에는 끔찍했던, 그러나 끈질기게 싸워왔던 어떤 것이 이제야 끝났음을 말해준다. 무감각 말이다. 

 

  이 이야기는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행글라이더 사고로 하늘에서 추락한 청년. 정신을 차려보니 하반신에 감각이 없었다고 한다. 죽은 신체를 만지는 기분. 그는 믿기지 않는 듯 칼로 허벅지를 계속 그어댔다. 그러다 두려움이 엄습하면 감각이 남아 있는 팔을 담뱃불로 지졌다.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그래서 팔이 항상 부어있었다. 그런데 담뱃불에 지져진 팔이 다음에는 자포자기의 표시가 되었다. 자신은 그런 팔을 가지고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라고. 그는 자기에 대해 무감각해졌고, 사람들에 대해 무감각해졌으며, 세상에 대해 무감각해졌다. 그는 애인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은 채 이별을 통보했다. 그때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책들도 알 수 없는 사물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어떤 감각이 살아났다. 휠체어를 막아선 도로의 경계석, 그를 외면하는 버스와 택시, 어디선가 달려 나와 그를 놀리고 도망치는 아이들. 그는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했다. 장애인복지관을 다닐 때도 다리에는 여전히 감각이 없었지만, 어떤 무감각에 반응하는 예민한 감각이 생겨났다. 장애인들에 대한 세상의 무감각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천둥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장애인운동가 친구들이 죽던 날, 그들이 자신의 감각을 깨운 번개였다는 것을 뒤늦은 천둥소리로 알았다고.

 

  이후 그는 노들야학에서 자신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차별의 무게를 짊어진 중증장애인들을 만났다.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사람들, 신변처리부터 모든 것을 지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 시설에 오래 갇혀 있던 사람들. 그들 한명 한명의 인생에 대해 들었다. 그러자 마음에 소낙비가 내렸다. 우리 사회가 비용을 아끼기 위해 처분해왔던 사람들, 아무도 듣지 않는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 이들에게 다가가자 세상이 선명해졌다. ‘모든 사람은 비용, 효율, 성과보다 존엄한 존재다.’ 싸움의 어느 순간 바람이 불어왔다고 했다. 삶의 감각이 돌아온 것이다. “제가 싸움의 현장에서 느끼는 내가 살아있다는 감각을 여러분에게도 선물로 안겨드리고 싶어요.” 자신과 타인과 세상에 무감각한 열차 앞에서 그는 이 선물을 들고 그렇게 외쳐댔던 것이다.

 

*이 글은 <경향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고병권1.jpg

 

고병권2.jpg

2024년 7월 25일, 《출근길 지하철: 닫힌 문 앞에서 외친 말들》 북토크가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진행됐다. 사진출처 비마이너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1227 2025년 여름 142호 - [고병권의 비마이너] 약자의 눈 / 고병권 [고병권의 비마이너] 약자의 눈         고병권 맑스, 니체, 스피노자 등의 철학,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런저런 책을 써왔다. 인간학을 둘러...
1226 2025년 여름 142호 - [교단일기] 차와 산책 / 김진수 [교단일기] 차와 산책         김진수 노들야학 교사 진수입니다           저는 산책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차를 배우고 있습니다. 자동차 아니구요... file
1225 2025년 여름 142호 - 좌충우돌 신입교사의 연구수업 날 / 이하늘 좌충우돌 신입교사의 연구수업 날         이하늘 올해부터 노들야학 청솔1A반 국어수업을 맡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활동지원사를 하다가 교사 활동을 시작하게 ... file
1224 2025년 여름 142호 - 조호연과 시 쓰는 사람들, 호시인입니다 / 황시연, 이예인 조호연과 시 쓰는 사람들, 호시인입니다        이야기 호시인 (조호연, 황시연, 이예인) 정리 황시연, 이예인 글 황시연           질문     언니는 언제부터 시... file
1223 2025년 여름 142호 - 사랑하는 박만순, 환갑 축하합니다 / 이예인 사랑하는 박만순, 환갑 축하합니다         이예인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 보장하라. 월요일에 노들에서 만화감상 수업해요             초대장을 ... file
1222 2025년 여름 142호 - 문기두의 일상을 지켜내기 위하여 / 남궁우연 문기두의 일상을 지켜내기 위하여         남궁우연 노들센터 남궁우연 활동가입니다           문기두 언니의 중구 구비추가지원이 갑자기 사라졌다. 중구는 매... file
1221 2025년 여름 142호 - 2025년 노란들판 전체 활동가, 워크숍을 가다! - 노들에서 지속 가능한 활동 만들기 / 유지영 2025년 노란들판 전체 활동가, 워크숍을 가다!  - 노들에서 지속 가능한 활동 만들기         유지영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에 입사한 지 겨우 10년차, 여전히 센... file
1220 2025년 여름 142호 - [욱하는 女자] 장애인 XXX 누려보면 안되냐..??????? / 박세영 [욱하는 女자] 장애인 XXX 누려보면 안되냐..???????         박세영 완벽함을 좋아하지만 누구도 완벽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며 나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 file
1219 2025년 여름 142호 - [자립생활을 알려주마] <자립생활 브이로그 - 신승연의 일주일> 영상 소개 / 신재, 신승연 [자립생활을 알려주마] &lt;자립생활 브이로그 - 신승연의 일주일&gt; 영상 소개         신재 매주 금요일마다 노들장애인야학 낮 일자리 ‘등장연습모임 짜잔’을 함께 ... file
1218 2025년 여름 142호 - [나는 활동지원사입니다] 운명을 믿으시나요? / 문가빈 [나는 활동지원사입니다] 운명을 믿으시나요?         문가빈 박경석 고장샘 활동지원사           운명에 대해서 자주 생각한다. 언제나 운명처럼 다가오는 일들... file
1217 2025년 여름 142호 - [노들 책꽂이] 누가 탈시설을 두려워하는가? - 『장애, 시설을 나서다』를 읽고 / 황시연 [노들 책꽂이] 누가 탈시설을 두려워하는가?  『장애, 시설을 나서다』를 읽고        황시연 노들야학 교사입니다. 『장애, 시설을 나서다』를 세상에 널리 알리... file
1216 2025년 여름 142호 - [하마무짱의 들다방신문] 2025들다방신문 제1호 / 들다방, 하마무 [하마무짱의 들다방신문] 2025들다방신문 제1호         들다방, 하마무             해당 신문은 a4용지 가로 펼침 형식이며 중앙에 좌우 구분선. 다음은 왼쪽 ... file
1215 2025년 여름 142호 - 고마운 후원인들 고마운 후원인들       노들과 함께하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2025년 4월 1일 ~ 6월 30일 기준)        CMS 후원인 (주)코시스 (주)피알판촉 강경...
1214 2025년 봄 141호 - 노들바람을 여는 창 / 한혜선 노들바람을 여는 창         한혜선 &lt;노들바람&gt; 편집인           이번 2025년 봄호는 지난해 10, 11, 12월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영등포 쪽방촌에서 산...
1213 2025년 봄 141호 - [추모_같이 공부하고, 같이 일하고, 같이 놀았던 지민을 보내며] [추모] 같이 공부하고, 같이 일하고, 같이 놀았던 지민을 보내며           노들야학 청솔1반 학생이자, 권리중심공공일자리 해고노동자 정지민 님이 2024년 12월... file
1212 2025년 봄 141호 - [추모_같이 공부하고, 같이 일하고, 같이 놀았던 지민을 보내며] 야학은 – 정지민의 시 (2023년 백일장) / 정지민 [추모] 같이 공부하고, 같이 일하고, 같이 놀았던 지민을 보내며 야학은 – 정지민의 시 (2023년 백일장)             야학은   정지민                          ... file
1211 2025년 봄 141호 - [추모_같이 공부하고, 같이 일하고, 같이 놀았던 지민을 보내며] 지민에게 / 김장기, 박성숙 [추모] 같이 공부하고, 같이 일하고, 같이 놀았던 지민을 보내며 지민에게        김장기, 박성숙 노들야학 학생           *정지민 님이 병원에 있을 때, 김장기... file
1210 2025년 봄 141호 - [추모_같이 공부하고, 같이 일하고, 같이 놀았던 지민을 보내며] 추모의 말 1 / 박성숙 [추모] 같이 공부하고, 같이 일하고, 같이 놀았던 지민을 보내며 추모의 말 1         박성숙 노들야학 학생           지민아 왜 갔어 같이 일하고 같이 공부하... file
1209 2025년 봄 141호 - [추모_같이 공부하고, 같이 일하고, 같이 놀았던 지민을 보내며] 추모의 말 2 / 천성호 [추모] 같이 공부하고, 같이 일하고, 같이 놀았던 지민을 보내며 추모의 말 2         천성호 노들야학에서 이어달리기 중에 국어교사           (먼저, 저의 개... file
1208 2025년 봄 141호 - [고병권의 비마이너] 2024년 12월 3일 / 고병권 [고병권의 비마이너] 2024년 12월 3일         고병권 맑스, 니체, 스피노자 등의 철학,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런저런 책을 써왔다. 인간학... fil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63 Next
/ 63
© k2s0o1d5e0s8i1g5n. ALL RIGHTS RESERVED.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