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겨울 136호 - [노들아 안녕] 낙인찍힌 몸을 자긍심으로 / 하마무
노들아 안녕
낙인찍힌 몸을 자긍심으로
하마무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하마무입니다. 하마가 무를 먹는다, 이렇게 외우시면 되겠습니다.^^ 저는 2021년에 처음 노들에 놀러오기 시작했습니다. 미술 수업에 참여했던 적도 있지요. 하지만 제대로(?) 참여하게 된 건 올해 봄,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진(Zinn) 수업’ 때부터입니다.
저는 진 수업을 정말 좋아합니다. 제가 가르치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같이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진은 정말 자유롭습니다. 춤을 추거나 노래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아무것도 안 하거나 다 진입니다. 그래서 수업하는 날엔 많은 것을 배웁니다.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관들은 진 스타들 앞에서 와르르 무너집니다.
제가 아는 진 스타들은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춤을 추고 싶으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싶으면 노래를 부릅니다. 종이에 구멍이 날 때까지 열정적으로 그리기도 하고, 물감을 많이 짜는데 나중에 그 팔레트 자체가 작품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진입입니다. 한 명 한 명 역사가 있고 사정이 있고 맥락이 있습니다. 분노의 맥락, 하기 싫은 맥락, 좋아하는 맥락. 수업에 참여하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저에겐 행복한 목요일입니다.
저는 그림을 그리고 산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주 긴 산책을 합니다. 젠더 스터디를 공부합니다. 일본어도 좀 하는 편입니다. 또 비건 실천을 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이성을 우월한 존재로, 몸을 나약한 존재로 둔 이분법이 동물(자연)과 인간, 여성과 남성, 장애와 비장애, 비정상과 정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억압하는 것을 정당화해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차별받는 존재는 자연이나 동물과 가깝게 여겨져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도 인간이다”, “나도 국민이다” 등 빼앗긴 자가 박탈한 자의 위치에 동화하려는 것을 거절합니다.
사실 고정적이고 실재가 있는 권력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내 속에 그런 부분들이 함께 있는 것 같습니다.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차별을 받아 온 이들은 노동시장에서 ‘쓸모 있는 몸’을 만들려고 합니다. 노동을 할 수 있는 몸이라는 것은 건강한 백인 남성 중심적인 ‘정상’ 신체입니다. 여기서 배제되는 몸들은 그렇기에 끊임없이 극복을, 노력을 합니다. 능력주의입니다.
그러나 그런 몸을 극복의 대상이 아닌 자긍심으로 삼을 때 저항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쓸모없음을 자긍심으로 삼을 때, 나의 동물임을 자긍심으로 삼을 때, 나의 퀴어함을 자긍심으로 삼을 때, 비정상에 머무르고 정상 되기를 거절할 때 말이죠. 저항의 가능성이란 순간 등장했다 다시 숨어 버리기도 합니다. 변해야 하는 것은 내가 아닌 세상입니다. 세상에 분노하고, 거절당하고 낙인찍힌 이 몸을 자긍심으로 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