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자료실

조회 수 19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오체투지!

다시 시작이다

 

 

조상지

노들야학 학생. 중증장애인 권리중심 맞춤형 공공일자리 노들야학 노동자

<장애인 왜 배워야 하나> 다큐 감독. 제 1회 박종필 감독상 수상

조상지 _노들바람.jpg

 

 

 

   처음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나는 단지 노들야학 수요일 지하철 집회에 홍기형이 삭발 투쟁하는 날이라 노들야학 부총학생회장으로, 홍기형의 동료로 함께하기 위해 그날 집회에 참석한 것이였다

집회 장소에 도착한지 10분쯤 후에 집행부에서 '오체투지'를 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활동지원사를 통해 들었다. 시간이 멈춰졌다. 내 작은 눈도 커졌을 것이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 했던 오체투지

 

   오체투지는 박경석, 이형숙 등등 대단한 활동가들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아닌 내가? 오체투지를하지만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삭발한 홍기 형이 오체투지를 해야 했으니 그날은 나여야만 했다.

 

   손목과 팔꿈치, 무릎에 보호대를 했다. 휠체어에서 내려와 바닥에 엎드려 지하철을 바라봤다. 지하철 문이 열리면서 비장애인들의 발이 쏟아져 나왔다밤에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리는 자동차들의 빛 같이 어지러웠고, 발자국 소리는 천둥처럼 크게 들렸다. 나의 모든 감각이 바쁘게 움직이는 비장애인들 발에 집중 됐다. 시간이 되어 숨을 고르고 이동하는 순간 나는 최선을 다해 팔과 다리를 바둥거리며 배를 밀고 앞으로 나갔다. 

 

   솔직히 앞으로 나가진 못한 것 같다. 옆에서 활동지원사와 온술 쌤이 팔을 잡고 앞으로 당겨줘서 움직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내 오체투지는 한 살배기 아가의 배밀이보다도 못했다. 온전히 혼자 기었다면 지하철을 올라타는것만 반나절은 걸렸을 것이다. 

 

혼자 기었으면 지하철 연착 투쟁이 제대로 됐겠구나

 

   지금 생각하니 그렇다. 가급적이면 꺼내보지 않고, 깊게 묻어두고 싶었던 지난 기억들이 지하철에 앉아 있는 비장애인들의 발등 하나하나에 얹혀져 있었다. 장애인은 장애인들끼리 모여 살아야 한다고 반복했던 아버지 말들차에 태워져 시설이 있는 강원도 철원으로 가는 길시설에서 물을 주지 않아 욕실로 기어가서 대야에 받아 있는 물을 더위 먹은 개처럼 핥아먹은 후 누워서 쳐다봤던 시설 천장. 올라갈 방법이 없어 떨어져 죽지 못했던 2층 창문3층 창문에서 떨어질 때 들렸던 장애인의 비명소리.

하늘나라에서는 비장애인으로 살라고 죽은 그를 위해 빌었던 명복그렇게 죽을 수 있기를 소망했던 매 순간들.

 

   기억들을 뿌리째 뽑아내듯 움켜잡으며 기를 쓰고 앞으로 나갔다. 수많은 생각과 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으로 정신이 혼미 해질 쯤 잠시 멈춰서 숨을 골랐다.

 

   몸을 일으켜 앉았는데 누리 선생님이 기대라고 했다. 선생님 다리에 몸을 기대고 앞을 보니 활동지원사와 온술 선생님이 나를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뒤에서 천성호 교장선생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왜 삭발과 오체투지를 하는지, 지하철에서 이동권 투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을 말씀하시고 계셨다. 그 순간 눈물이 쏟아지는 걸 지하철에 앉아 있는 비장애인들의 얼굴을 보면서 참았다. 약해 보일까봐. 내가 힘들어서 우는 걸로 생각할까봐 이를 악물고 참았다. 내 편들이 있었다내 편에게 힘든 몸을 기댈 수 있고, 내 편이 투쟁의 이유에 대해 얘기해주고 있고, 나를 바라보면서 응원해주는 내 편들이 있었다.

 

   1년 전 오늘, 상황은 다르지만 같은 느낌이였던 적이 있다. 어머니와 함께 했던 구리시 인창동 성일장 철거민 투쟁 막바지였다. 조합측에서 성일장으로 들어오는 모든 진입로를 펜스로 막고, 깡패 용역을 고용하고 강제집행을 하기 위해 스카이차와 포크레인이 들어올 곳에 건물을 허물고, 땅을 다지고 있는 정말 죽느냐 사느냐 하는 순간이였다. 집회 신고하러 갔던 나의 활동지원사가 철거민들과 공범이라고 긴급체포 되었을 때 내 몸 하나 보호하지 못하는 중증장애인인 나는 모든 걸 포기하고 있었다.

 

   그때 노들야학 천성호 교장선생님이 오셨고, 노들야학과 장애인단체들이 구리시청에서, 구리경찰서에서 활동지원사 석방과 철거민들의 주거권 보장을 요구했다. 내 편들이 갇혀있는 나를 위해 구리에 와줬고, 말을 못하는 나를 대신해 외쳐주었다. 그렇게 나는 내 편들의 힘으로 철거 투쟁 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살아남은 나는 계속되는 발달장애인의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국가가 나를 죽이려 할 때 느꼈던 분노와, 사회가 나를 죽이려 할 때 느끼는 공포감이 어떤지 나는 안다.

 

   장애가 있어서 죽어야 했던 그들이 느껴야 했던 분노와 공포를 더 이상 느끼지 않게 할 것이다.

 

   장애인들을 죽이는 이 사회를 바꿔내야 하는 게 살아남은 나의 몫이다.

 

   나는 노들야학으로 돌아왔다. 1년 후 오늘, 다시 살아난 나는 더 이상 우리들을 죽이지 못하게, 죽지 않게 하기 위해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오체투지 마지막 장소 혜화역에 지하철이 도착해 문이 열렸다. 

   기어 나오다 힘이 들어 지하철과 역내에 몸을 반씩 걸쳐 엎드렸다. 숨쉬기가 힘이 들었다. 힘이 든 만큼 이를 악물었다. 

 

   비장애인들은 생애 주기에 맞게 학교 교육을 받고, 노동을 하고, 이동을 한다그것이 너무 당연해서 그들은 권리를 권리라고 느끼지도 못한다. 

   그 권리를 우리 장애인들은 온 몸을 내던지며 요구해도 돌아오는 건 병신들이라는 욕이다. 억울하고 분하지만 내일의 장애 해방을 위해 오늘은 투쟁해야 한다. 차별받고, 배제되어 왔던 장애인들이 교육을 받고, 노동을 하고, 사람을 만나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갖춰져야 하는 이동권을 나는,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집과 시설에 갇혀 죽기만을 기다리는 마지막 한 명의 장애인이 지역사회로 나오는 그날까지 지치지 않고 나는 끝까지 그들의 편이 될 것이다.

 

   오체투지를 끝내고 휠체어에 앉아 주변을 보니 많은 동지들이 내 옆에 있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장애 해방을 위한 투쟁의 길에 조그만 힘이라도 보탤 수 있어 행복했다. 동지들과 함께 투쟁의 의지를 다짐했다.

 

   오체투지는 다시 시작이다.

 

조상지가 지하철 안에서 오체투지를 준비하고 있다.JPG

조상지 활동가가 지하철에서 오체투지를 준비하고 있다. 뒤로는 노들야학 활동가들이 판넬을 들고 서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913 2022년 여름 131호 - 4월 5일 경복궁역 5차 삭발결의자 / 최동운 2022.4.5. 경복궁역 5차 삭발결의자     최동운 노들야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최동운입니다. 노들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투쟁으로 인사드립니다. 투쟁.       ... file
912 2022년 여름 131호 - 4월 12일 경복궁역 10차 삭발결의자 / 유진우 2022.4.12. 경복궁역 10차 삭발결의자     유진우 해방의 길을 향해 찾아 헤매다가 정착한 곳은 '장판(장애인운동판의 준말)'입니다. 장애인당사자로서 겪은 차별... file
911 2022년 여름 131호 - 4월 20일 경복궁역 16차 삭발결의자 / 김탄진 2022.4.20. 경복궁역 16차 삭발결의자     김탄진 노들장애인야학 학생,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노동자.          탈시설을 반대하는 일부 부모님께 드리고 싶은 말... file
910 2022년 여름 131호 - 4월 20일 경복궁역 16차 삭발결의자 / 김명학 2022.4.20. 경복궁역 16차 삭발결의자     김명학 노들장애인야학에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저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활동하는 김명학입니다. 중증장애... file
909 2022년 여름 131호 - 4월 20일 경복궁역 16차 삭발결의자 / 천성호 2022.4.20. 경복궁역 16차 삭발결의자     천성호 노들장애인야학 공동교장       당신과 나의 해방이 맞닿아 있기에… 이 글귀는 노들장애인야학의 모토이자 정신... file
908 2022년 여름 131호 - 5월 17일 광주 33차 삭발결의자 / 추경진 2022.5.17. 광주 33차 삭발결의자     추경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 활동가          나는 시설에서 15년을 살았습니다. 그때는 행복을 몰랐습니다. ... file
907 2022년 여름 131호 - 5월 25일 삼각지역 39차 삭발결의자 / 김홍기 2022.5.25. 삼각지역 39차 삭발결의자     김홍기 안녕하세요. 저는 노들야학에서 여러 가지 공부를 배워서 좋아요. 공공일자리를 3년째 하고 있습니다. 시설에서... file
906 2022년 여름 131호 - 6월 22일 삼각지역 57차 삭발 결의자 / 이영애 2022.6.22. 삼각지역 57차 삭발결의자     이영애 57년만에 자립을 앞둔 노들야학 학생입니다. 걱정 반, 좋음 반 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노들장애인... file
905 2022년 여름 131호 - 6월 28일 삼각지역 60차 삭발결의자 / 박영일 2022.6.28. 삼각지역 60차 삭발결의자     박영일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안녕하십니까?    1998년에 산업 현장에서 일하다가 250T 프레스에 왼... file
904 2022년 여름 131호 - 6월 30일 삼각지역 62차 삭발결의자 / 조재범 2022.6.30. 삼각지역 62차 삭발결의자     조재범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활동가          5살 때 신촌세브란스병원 부설 연세재활원에 입원해 수술과 재활치료를 ... file
903 2022년 여름 131호 - 7월 15일 삼각지역 71차 삭발결의자 / 장애경 2022.7.15. 삼각지역 71차 삭발결의자     장애경 노들장애인야학 학생,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노동자          저는 태어나면서 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file
902 2022년 여름 131호 - 지하철역에서 몸을 던지다 / 서기현 지하철역에서 몸을 던지다     서기현 센터판에서 '벽'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요즘에 '코딩'에 꽂혀있습니다. 나름 노후 준비일지도 모르지요? 센터판에서 노들판... file
901 2022년 여름 131호 - 장애인에게... 오체투지 투쟁이란... / 조재범 장애인에게... 오체투지 투쟁이란...     조재범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활동가          안녕하세요? 저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에서 권익옹호팀장을 맡고 있는 ... file
» 2022년 여름 131호 - 오체투지! 다시 시작이다 / 조상지 오체투지! 다시 시작이다     조상지 노들야학 학생. 중증장애인 권리중심 맞춤형 공공일자리 노들야학 노동자 &lt;장애인 왜 배워야 하나&gt; 다큐 감독. 제 1회 박종... file
899 2022년 여름 131호 - 오늘도, 지하철을 탑니다 / 김미영 오늘도, 지하철을 탑니다     김미영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활동가          매일 아침 저녁 지하철을 이용하여 출퇴근을 합니다. 언제나 그랬듯 계단을 내려가 ... file
898 2022년 여름 131호 - 이것도 투쟁이다! / 조상필 이것도 투쟁이다!  '그러하기에 돌아가는' 공장의 투쟁선전물 제작기!     상필 노란들판 공장에 있습니다. 현수막을 빠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사회적기... file
897 2022년 여름 131호 - 우리의 연대가 혐오를 이긴다 / 소성욱 우리의 연대가 혐오를 이긴다      소성욱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알의 활동가로서 성소수자 인권과 HIV/AIDS 인권에 대해 고민하고 활동하고 있다. 행동하... file
896 2022년 여름 131호 - 희망의 물리적 근거를 위한 신배공의 연대 / 김희주, 구도희 희망의 물리적 근거를 위한  신배공의 연대      김희주, 구도희 신촌홍대권역배리어프리공동행동          2022년 3월 31일, 신촌과 홍대 권역을 중심으로 활동...
895 2022년 여름 131호 - 지하철과 골목이라는 이름의 벼랑 끝에서 / 이종건 지하철과 골목이라는 이름의 벼랑 끝에서      이종건 옥바라지선교센터          지난 4월, 사회선교 단체인 옥바라지선교센터의 활동가 동료이자 이웃 신학교에...
894 2022년 여름 131호 - 우리가 저곳에 함께 가기 위하여 / 김희우 우리가 저곳에 함께 가기 위하여      김희우 돌곶이 포럼          이곳에서 저곳으로, 나의 방에서 광장으로, 일터로, 학교로, 주민센터로, 경찰서로, 친구들이...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 58 Next
/ 58
© k2s0o1d5e0s8i1g5n. ALL RIGHTS RESERVED.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