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여름 123호 - 2020 노들야학 천막 교실 / 김진수
2020 노들야학 천막 교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막 칩시다
김진수
요즘 가장 좋아하는 건 걷고 또 걷기
5월의 어느 날, 노들야학은 1층 주차장에 노란 천막을 쳤다. 샛노란 천막은 그 자태만으로도 눈이 부셨는데, 봄 하늘이 주는 햇볕을 가득 머금어서 그런 듯했다. 어두웠던 주차장을 환히 밝히는 천막엔 어디서 알았는지 벌이며 나방이며 여러 벌레들이 날아들었다. 그때, 벌레를 본 한 선생님이 어릴 적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어릴 때 노란색 옷을 입고 개울가를 건넌 적이 있는데, 벌레들이 나한테 다 오더라구요. 벌레들은 노란색을 좋 아해요. 노란 천막을 보고 동네 벌레들이 많이 올 거에요.’ 그 많은 벌레들이 좋아하는 색이 노란색이라면 노란색은 세상에서 가장 많은 생물이 좋아하는 색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코로나로 인해 수업은 일주일에 두 번 임시수업 형태로 짧게 진행됐고, 오후 3시가 되면 학생들은 모이기 시작했다. 차량이 자주 오고 가는 주차장이라, 교사 두 명이 조를 짜 안전 지킴이를 했다. 안전 지킴이의 일이란 노란 조끼를 입고 차량이 들어오거 나 나갈 때마다 형광봉을 위아래로 흔들어 알리고, 학생들이 천막에 진입할 때까지 주위를 살피며 안내하는 것이다. 수업은 5시부터 6시반까지 네 동의 천막에 두 반을 나눠 진행했다. 방음이 안 되는 상황이라 수업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천막 야학이 끝날 때까지 수업은 별 탈 없이 이루어졌다. 학생들의 급식 은 배식 대신 들다방 도시락으로 대체했는데, 천막에서 함께 먹는 도시락은 사람들에게 색다른 기분을 느끼게 했다.
비가 많이 내렸던 날이 있었다. 교사, 학생, 활동지 원인이 모두 모여 넉가래와 빗자루를 들고 주차장에 고여 있는 물을 쓸어내렸다. 그치지 않는 비에, 비를 쓸고 쓸어도 물은 차고 또 찼다. 비는 수업이 끝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잦아들었고, 비가 잦아들자, 사람들은 천막이 비에 기울지 않도록,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천막 구석구석을 살피고 집으로 갔다. 집에 가는 길에 본 천막은 낮에 머금은 햇볕을 모두 토해낸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노들야학이 주차장에 천막을 치게 된 건 5월부터 시작하는 엘리베이터 공사 때문이었다. 작년에 계획했 던 공사가 시공사의 일정으로 올해로 미뤄졌고, 갑자기 코로나가 터지면서 야학의 수업이 임시수업으로 진행 되는 틈을 타, 미뤘던 공사를 5월에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주차장에 천막을 치자는 제안은 누구나 예상하듯, 예상하지 못한 답으로 문제를 타개하는 교장샘이 했다. ‘코로나로 인해 공간을 대여하기도 어렵고 우리 가 임시수업이라도 진행하려면 천막을 치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는 말로 모두를 설득했다. 그렇게 결정된 천막 치는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대여하는 돈이나 사는 돈이나 거기서 거기여서 천막은 사기로 했다. 기존의 파랑 천막 대신 노란 천막을 사자는 제안으로 노란 천막을 주문했고 주차장 한 면을 다 채우기 위해 다섯 동을 치기로 했다. 그런 과정을 거처 5월 초 노들의 주차장엔 노란 천막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노들에게 천막을 친다는 것은 익숙한 일이다. 2008년 초 겨울 노들은 마로니에 공원에 천막을 치고 천막 야학을 했는데, 그 때의 천막 야학이 밑불이 되고 불씨가 되어 지금의 번듯한 공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노들에게 천막은 수업을 지속하기 위한 공간으 로써의 의미뿐만 아니라 밑불, 불씨 같은 희망의 의미 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든 유리빌딩이 허물어지든, 어떤 ‘그럼에도’의 상황이 오더라도 불구(얽매여 구애되지 않는)하자는 의미를 가진다. 그런 의미에서 2020년 5월 노들의 천막야학은 2008년 노들 천막야학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언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막을 치자는 의미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