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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 모임 '술독'


최한별 | 노들야학 음악반 교사이자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늘 서두르기만 해서 요즘엔 좀 느긋해지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한별 쌤, 같이 낭독모임 하지 않을래요?"
지난해 봄, 교사회의를 위해 야학을 찾은 나에게 연극반 미진 쌤이 물어왔다. 야학 교사를 시작하고 그럭저럭 한 학기가 다 되어갈 즈음이었다. 변수가 많은 취재일 때문에 야학의 많은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고, 학교 다닐 때 국어 읽기가 걸리면(?) 묘하게 설렜던 기억에 덥석 고개를 끄덕였다.


낭독모임은 미진의 오랜 구상이 실현된 것이었다. 미진은 연극 수업을 하면서 학생분들이 다양한 이야기에 얼마나 목말라 하는지 알게 되었고, 자신이 알고 있는 희곡의 매력을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은 욕구도 있었다고 했다.


첫 모임에 가보니 사람이 꽤 많았다. 진수, 정민, 여의, 임당, 가비, 건우, 거기에 미진의 친구인 진석, 장웅까지. 당시 나는 야학 교사들과도 별로 친분이 없는 상황이었고 외부에서 오신 손님들도 있어서 좀 어색했지만, 우리 뭐 할까요? 하는 질문에 의견이 오가다보니 점점 신이 났다. 와, 이 사람들 말하는 거 되게 좋아해! 그땐 몰랐다. 우리가 만들어내게 될 색이 얼마나 다채로울지. 내가 그 색에 얼마나 매료될지.


우리의 첫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이었다. 나는 두 남성의 사랑을 받다가 요정들의 실수로 하룻밤 만에 천덕꾸러기(!)로 전락하는 허미아 역을 맡게 되었다. 허미아가 되어 다른 등장인물들과 대사를 주고받다보니 점점 허미아의 입장에 빠져드는 것이 느껴졌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는데, 서로가 서로의 자극제가 되었던 것 같다. 미진의 포스 넘치는 디렉션은 이 열기에 기름을 부었다.

두 번째 작품은 안톤 체홉의 『갈매기』였는데, 첫 작품과 사뭇 다른 분위기에 연출이 더해져 사뭇 긴장된 마음으로 임했다. 하지만 많은 학생분들이 오시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다. 다음엔 홍보도 더 열심히 하고 학생분들과 더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기로 했다.

제일 재밌고 도움이 많이 되었던 연습은 '잘' 읽기 위한 연습이 아니라 내가 맡은 인물이 다른 인물들과 과거에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을지, 그 역사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태도와 허미아의 성격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내가 설득이 되어야 듣는 사람도 몰입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희곡 낭독은 혼자 잘 읽으면 되는 행위가 아니었다. 우선은 내가 담당한 인물과 깊이 있게 대화를 나눠야 하고, 다음으로는 다른 인물들과 또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이 대화가 무대 위에서 관객과의 대화로 또다시 이어진다. 밖으로 드러내기도 하지만, 잘 드러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 안으로 들어가 나를 잘 들여다봐야 한다. 안과 밖, 수직과 수평 온갖 방향으로 에너지가 오가는 이 어마어마하게 동적인 행위! 이 다이내믹한 낭독의 세계를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언제든 술독(책을 펴서 술술 읽는 모임이라는 뜻이지만 술독에 빠진 모임이라고 오해하셔도 될 것 같다)의 문을 두드려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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