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자료실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노들 책꽂이 】
마루야마 겐지의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허위에 대한 날카로운... 사이다 같은 책

허신행 | 2010년 학교 졸업 후 상근자로서 줄곧 노들야학에 있다가 올해 2월 독립(?)을 하였다. 현재는 주식회사 생각의 마을에서 사회복지 관련 출판, 연구 컨설팅(개인 및 단체의 연구작업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2012년 12월 19일 저녁, 나는 현장 인문학 마지막 세미나를 위해서 카페 별꼴에 있었다. 세미나를 하긴 해야 하는데 계속 손은 핸드폰으로 가고 있었다. 대선 결과가 나오고 모두들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대한민국의 정치와 미래에 대해서 절망만을 해온 것 같다. 가끔은 ‘다들 밑바닥으로 치달아야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다가, ‘그 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증오하기도 했다가, 결국엔 나라야 망하건 말건 나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진심으로 했었다(하고 있다).

이 대멘붕의 시기에 읽었던 몇 권의 책이 기억난다.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이라는 책은 나치의 선동가 괴벨스에 대한 책인데, 이는 새누리가 대중을 어떻게 이용해 먹는지, 도무지 왜 국민이라는 작자들은 그렇게도 잘 속아 넘어가는지를 이해해보려고 산 책이었다. 하지만 너무 두껍고 생각보다 재미없어서 중간에 접었다. 가장 최근에는 다니엘 튜더라는 영국인이 쓴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한국에서 기자 생활을 했었고, 지금은 이태원에서 수제 맥줏집을 운영하는 저자는 한국에 대해 상당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그리고 애정을 가지고 비판을 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런 책들을 읽는다고 해서 내 마음을 위로해주거나 다시 희망이 생기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저 ‘헬조선❶은 답이 없지.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생각만 더 크게 만들었다.

그러다 요즘 말로 사이다❷ 같은 책을 발견했다. 바로 마루야마 겐지의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이다. 저자는 멘붕에 빠져 있던 나에게 “원래 세상은 그런 거야. 다 글러먹었으니 당신이나 똑바로 살아.”라고 화끈하게 말해주었다. 조국의 미래를 걱정할 시간에 자기 자신을 다잡고 온전한 개인으로 우뚝 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목차만 봐도 저자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다른 책들은 제목이 제일 도발적이고 내용은 그저 그런데, 이 책은 제목이 그나마 제일 덜 도발적이고 내용이 어마어마하게 도발적이라는 점이다.

106nd_04.jpg


1장. 부모를 버려라, 그래야 어른이다
2장. 가족, 이제 해산하자
3장. 국가는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4장.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니나
5장. 아직도 모르겠나, 직장인은 노예다
6장. 신 따위, 개나 줘라
7장. 언제까지 멍청하게 앉아만 있을 건가
8장. 애절한 사랑 따위, 같잖다
9장. 청춘, 인생은 멋대로 살아도 좋은 것이다
10장. 동물로 태어났지만 인간으로 죽어라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다. 애국, 효도, 사랑, 종교 등이 그것이다. 저자는 그것들의 허위에 대해서 날카롭게 이야기한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그냥 전형적인 일본식 냉소주의 아니냐, 그냥 배설 차원이 아니냐고 반문하실지도 모르겠는데,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끼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조 있고, 깊이 있는 사유라고 생각되었다.❸ 보통 사람들이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는 것들을 정확히 짚어내고, 알더라도 ‘감히’하지 못하는 말을 편안하게 내뱉고 있는 저자의 배포에 감동할 따름이었다. “부모를 버려라”, “바보 같은 국민은 단죄해야 한다”, “국가는 적당한 바보를 원한다”, “직장은 사육장이다”, “연애는 성욕을 포장한 것일 뿐이다”, “훌륭한 생이란 없다” 등의 문구를 보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있던 나의 또 다른 자아가 손뼉을 치며 맞장구를 쳤다.

나는 지금까지 잘 포장된 삶을 살아왔다. 나의 행복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썼으며 내 욕망과 생각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했다. 심지어 내 욕망을 알아차리지도 못했었다. 그런 나에게 마루야마 겐지는 내 인생을 살라고, 온전히 너의 것을 챙겨가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가짜가 아닌 진짜 삶을 살라고 꼬장꼬장한 노인이 호통을 치고 있었다. 여러분도 꼭 자신의 진짜 욕망을 찾고, 당당한 개인으로 오롯이 살아가길 바란다. 나도 언젠가 절대 이별할 수 없을 것 같은 야학에게 “노들 따위 엿이나 먹어라”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그 무엇도 나를 옥죄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렀으면 좋겠다.


❶ 헬조센(헬조선)은 Hell +조센(朝鮮의 일본식 음독)의 합성어로, 마치 지옥과도 같은 한국이라는 뜻을 담은 신조어다.(출처: 나무위키)
❷ 답답한 상황이 통쾌하게 진행되었을 경우 쓰이는 인터넷 은어. 모 유머사이트에는 사이다 게시판이 따로 있다.(출처: 나무위키)
❸ 다른 글에서도 이 분은 일관성을 유지한다. 예를 들어 시골생활에 대한 많은 책들이 낭만을 이야기하고, 전원생활의 장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반면 실제로 시골에서 은둔생활을 한 저자는 자신의 저서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에서 ‘풍경이 아름답다는 건 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이다’, ‘텃밭 가꾸기도 벅차다’, ‘고독은 시골에도 따라온다’, ‘깡촌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친해지지 말고 그냥 욕먹어라’, ‘시골에 간다고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등의 주옥과 같은 말씀을 남기셨다.
❹ 글을 쓰면서 유독 직접 인용한 문구가 많다. 마음 같아서는 다 옮겨 적어서 보여드리고 싶다. 꼭 한 번씩 읽어 보시면 좋겠다. 기회가 되면 야학 국어시간에 수업 교재로 써도 재미있겠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160 2015년 겨울 106호 - 좋은 시설은 없다 좋은 시설은 없다 좋~은 시설이 있다는 건, 좋~은 군대가 있다는 말과 같다!! 이승헌 | 2002년에 ‘민중복지연대’라는 단체의 상근자로서 최옥란 열사 투쟁, 이동... file
159 2015년 겨울 106호 - 1017MHz, 빈곤철폐가 빛나는 날에 1017MHz, 빈곤철폐가 빛나는 날에 한명희 | 노들야학에서, 그리고 광화문 지하역사2층에서 가난한 사람과 장애인이 함께 살기 위한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 file
158 2015년 겨울 106호 - ‘턱턱턱’에 대해서 ‘턱턱턱’에 대해서 어디까지 당해봤나? 문전박대! 민아영 | 노들야학 8개월 차에 접어든 꼬꼬마 교사입니다. 한 학기 동안 불수레 영어반과 함께했습니다. 재미... file
157 2015년 겨울 106호 - 경기도 이동권이 엉망이라고 전해라 경기도 이동권이 엉망이라고 전해라 14시간 점거한 버스를 혼자 타고 집에 돌아오신 분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형숙 대표 인터뷰 김유미 | 노들야학에서 일하... file
156 2015년 겨울 106호 - 엄마는 왜 감옥에 가게 되었을까 엄마는 왜 감옥에 가게 되었을까 벌금 앞에 작아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조은별 |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숭실대학교 총여학생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좋아하는 ... file
155 2015년 겨울 106호 - [노들아 안녕] 유코디는요 ☞☜ [노들아 안녕] 유코디는요 ☞☜ 유지영 안녕하세요? ~(^^)~ 해피 바이러스, 긍정에너지가 넘쳐나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판 활동보조 코디네이터 유지영 인사드립니... file
154 2015년 겨울 106호 - [노들아 안녕] '시원섭섭'보단 '시원불안'하달까 [노들아 안녕] ‘시원섭섭’보단 ‘시원불안’하달까 정민구  응답하라 2006 제대하고 학교에 복학했다. 난 오래된, 나이 많은 복학생이 되었고 내 이름 뒤엔 언제 ... file
153 2015년 겨울 106호 - 노란들판의 책모임 첫 발을 내딛다 노란들판의 책모임 첫 발을 내딛다 『지금이 나는 더 행복하다』를 읽다 고수진 | 지난 8월, 노란들판에 입사하여 5번 째 달을 보내고 있다. 조그마한 손을 분주... file
152 2015년 겨울 106호 - 노들센터에서 보낸 9개월 노들센터에서 보낸 9개월 인턴활동을 마치며 김혜진 | 안녕하세요. 하고 싶은 것이 많아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30대 김혜진입니다. 2013년 4월에 중증 장애인... file
151 2015년 겨울 106호 - 【자립생활을 알려주마】 End? And...! [자립생활을 알려주마] End? And...! 무호아저씨와 함께 자립의 기쁨을 맛보다 김한준 | 2015년 2월 노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콧수염을 길러보고 싶어 한 3주간 ... file
150 2015년 겨울 106호 - [나는 활동보조인입니다] 김나라 님 【 나는 활동보조인입니다 】 기본을 배우는 시간 김나라 | 노들야학 학생인 장애경 씨의 활동보조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22살, 20살 두 딸과 17살 아들을 두... file
149 2015년 겨울 106호 - 죽으면 아부지 만나서 따져봐야겠어요 죽으면 아부지 만나서 따져봐야겠어요 노들야학 이영애 학생 인터뷰  정민구 | 손재주는 없지만 손으로 무엇이든 만들고 싶어 하는 민구입니다. 얼마 전 아버지... file
148 2015년 겨울 106호 - [형님 한 말씀] 2015년의 끝자락에서 [형님 한 말씀]   2015년의 끝자락에서 김명학   2015년이 서서히 저물고 있습니다. 새해가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그 끝자락에 와있습니다. 세월이 정말로 빨리 ... file
147 2015년 겨울 106호 - 장애해방열사배움터에 다녀와서... [장애인운동알기 교육1] 장애해방열사배움터에 다녀와서... 조재범 |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사업팀에서 동료상담과 자립생활기술훈련(ILST)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file
146 2015년 겨울 106호 - 장애해방학교를 마치고 [장애인운동알기 교육2] 장애해방학교를 마치고 박정숙 | 노들야학 한소리반, 활동보조인 교육기관 활동가 무더위도 사그라지고 가을인가 싶을 시월에 장애해방 ...
145 2015년 겨울 106호 - 전동휠체어축구, 들어보셨나요? 전동휠체어축구, 들어보셨나요? 유럽엔 축구팀만 300여개, 월드컵도 열린다네~ 모경훈 | 서울전동휠체어축구협회 사무국장이자 현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의 사업... file
144 2015년 겨울 106호 - 판에서 연극으로 경계를 허물다 판에서 연극으로 경계를 허물다 병명 : 장애인에 대한 편견 처방 : 장애인문화예술판 공연 관람 미나 | 내가 태어나 돌이 막 지났을 무렵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 file
143 2015 겨울 106호 - 사라진 주말, 멘붕의 연속 그리고... 사라진 주말, 멘붕의 연속 그리고... 미디어아트 ‘줄탁동시’에서 뭔가를 하얗게 불태운 이야기 강미진 | 저는 편의점과 바나나우유를 사랑하고 요즘 하루키 소설... file
» 2015 겨울 106호 - 【노들 책꽂이】 마루야마 겐지의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 노들 책꽂이 】 마루야마 겐지의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허위에 대한 날카로운... 사이다 같은 책 허신행 | 2010년 학교 졸업 후 상근자로서 줄곧 노들... file
141 2015 겨울 106호 - 비마이너가 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년 뒤에는... 비마이너가 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년 뒤에는... ‘5인 미만 인터넷신문 퇴출’ 신문법 시행령 강행에 반대합니다 하금철 | 어쩌다보니 장판에 들어왔다. 어쩌... fil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42 43 44 45 46 47 48 49 50 51 ... 54 Next
/ 54
© k2s0o1d5e0s8i1g5n. ALL RIGHTS RESERVED.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