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자료실

조회 수 150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노란들판의 꿈, 이루어지다?
네 번째 공장 이전을 하며...



박 시 백 | 노란들판 10년차 디자이너- / 맥주 500cc 5잔 이상부터 내면으로부터 끓어오는 에너지로 필이 충만한 춤을 추는 이 / 스트레스 상황에서 가끔 사나운 모습을 보이지만 마음은 여유롭고 싶은 이

 

 

IMG_1407.jpg

사진 : 노란들판의 새 공간



노란들판이 새 공간을 얻었다.
어쩌다 보니 노들야학을 알게 되었고 저쩌다 보니 노란들판에 오게 된 것처럼, 그렇게 월세를 미리 알았더라면 구경할 엄두도 내지 않았을 이 공간에 어쩌다 들어오게 되었고 두 번에 걸친 가격 협상을 통해 계약까지 이어졌다. 처음으로 인테리어공사라는 것을 진행한 덕분에 내년이면 10년차인 노란들판에 이제야 ‘우리의 공간이구나’싶은 그런 공간이 생겼다.


최초의 시작은 광진구 군자동에서였다.
2006년 초,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당시 노들야학 상근 활동가였던 ‘이알찬’이 ‘돈’을 버는 현수막공장, 노란들판을 만들었다. 초기에는 일도 적고 인원도 적었던지라 점심식사를 교대로 요리해서 먹었다. 고등학교 때 부모님이 안 계신 틈을 타 친구들을 불러 밤새 건전하게 놀고 나서 아침에 의욕적으로 퓨전요리를 해주었었다. 그들의 표정에 다시는 도마를 잡지 않겠다고 다짐한 이후로 처음 해보는 요리에 모두들 맛있다고 해줄 만큼 군자동 노란들판의 분위기는 가족적이었다. 이 때 개인적으로 하루에 택배 10개 이상(5개를 넘기기 힘들었음)과 평균도 아닌 단 한 번이라도 월 매출 5천만원 이상 달성(월 평균 매출 2천만원을 못 넘겼던 때)의 꿈을 꾸었다.


두 번째 사무실은 구의동에 얻었다.
아차산 등산로가 바로 옆에 있는 공기 좋고 조용한 곳이었지만 창립 멤버 둘을 떠나보내야 했던 아픈 곳이기도 했다. 잔소리는 전문이지만 운영에는 자신 없었던 나 또한 고민이 많았으나 ‘안민희’를 비롯한 소중한 사람들이 빈자리를 채워주어 함께 노란들판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되었고 출력기계를 추가로 구입하는 등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하루에 택배 10개 이상을 보내면 전 직원에게 ‘빕스’를 쏘겠다고 객기를 부린 지 몇 개월도 안 되어 빕스에 가야했다. 누구는 여자 친구를 데려왔다. 구의동에서 4년을 보내는 동안 시민·사회·장애인단체의 노란들판에 대한 팬덤은 굳건해졌다. 다만 광진구의 시장 환경은 군자동에서와 다를 게 없었다. 고용노동부의 5년차 인건비 지원 종료를 앞두고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인원 감축 없이 살아남으려면 매출을 늘려야만 했고 돌파구를 찾아야했다.


2012년 4월,
광진구를 뒤로 하고 사회적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성북구(장위동)로 과감하게 이전했다. 지하철역에서 거리가 멀고 재개발 예정지에 속한 오래된 건물이지만 그동안의 공간 중에서 가장 넓은 곳이었다. 소원이었던 회의실도 생겼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연 매출 5억원을 돌파했고 실사출력 외에 인쇄출판디자인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하루에 택배 10개 이상 보내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다. 또 다시 객기를 부렸다. 5일 연속으로 10개 이상 보내면 빕스를 쏘겠다고 했다. 보름도 안 걸렸다. 그날 굳이 택배로 안 보내도 될 것을 보내는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었지만 받아들였다. 한 번이 아니라 월 평균 매출로 5천만원을 넘기게 되었다. 매출이 늘어남에 따라 인원도 점점 늘었다. 최근에는 장애인계와 특별한 연관이 없는 비장애인을 채용하는 등 노란들판의 스펙트럼은 넓어지고 있다. 재개발이 확정됨에 따라 새로운 공간을 알아봐야 했다. 장위동 건물은 이번에 이주한 건물의 인테리어공사 비용과 그 외 이주비용까지 이주보상비로 챙겨준 마지막까지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IMG_1405.jpg

사진 : 노란들판의 새 공간 모습이다. 벽에 책장이 설치된 좋은 사무실. 


IMG_1409.jpg

사진 : 파티션이 쳐진 사무공간


IMG_1411.jpg

사진 : 쾌적한 사무공간


IMG_1414.jpg

사진 : 넓찍한 회의 공간



2015년 8월,
노란들판은 네 번째 공간인 성북구 석관동 사무실로 이전했다. 돌곶이역에서 도보 3분 거리라는 점이 참 좋다. 아직은 분위기가 낯설어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큰 공사는 끝났지만 아직도 사무실 꾸미기는 진행 중이다. 이사와 맞물려 투표로 세 명을 복지위원으로 선출하고 예산 500만원을 배정하여 쓰레기통에서부터 시작하여 안마기까지 직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선별하여 구입하고 있다. 오후에 택배가 올 때마다 오늘은 어떤 물건이 왔을지를 기대하며 포장박스를 뜯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일 년 내내 복지위원회를 돌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공간에서 이제 무엇을 꿈꿔야 할까.
빕스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빕스를 간다는 것은 내게 노란들판의 성장을 의미하는 거였다. 단순히 외형적 성장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노란들판은 일반기업과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사회적기업이고 장애인을 고용하는 사회적기업 중에서도 또 다른 노란들판만의 가치를 지켜왔다.


의외로 노들 내에서 노란들판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부족함을 느낀다.
노들바람 소식지 첫페이지 하단에 적혀있는 노란들판의 뜻풀이처럼 나는 ‘대안적 세계’를 멀리 있는 꿈으로 생각하며 일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지난 9년 동안 노란들판은 단순히 ‘돈’을 벌었던 것이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땀을 흘리며 ‘노동’을 하는 곳, 즉 노란들판 자체가 대안적 일터였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세심한 배려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느 누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들보다 더 땀을 흘려야 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는 것이 아름다운 일만 넘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새로운 공간에서 맞는 또 다른 10년의 키워드는 결국 ‘사람’, 결국 ‘우리’가 될 것이다. 함께 천천히 걸어왔다. 요즘 나는 노란들판 홍보 브로슈어에 있는 문구인 ‘모두를 위한 들판, 노란들판’을 생각한다. 그 문구의 ‘모두’는 지금까지 그 길을 같이 걸어 온 노란들판의 한 명 한 명을 뜻하는 것이고, 그 길에 함께할 이를 뜻하는 것이리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140 2015 겨울 106호 - [동네 한 바퀴] PL사랑방, 반갑습니다! 【 동네 한 바퀴 】 PL사랑방, 반갑습니다! KNP+ 문수 님을 만났습니다. 한명희 | 노들야학에서, 그리고 광화문 지하역사2층에서 가난한 사람과 장애인이 함께 ... file
139 2015 겨울 106호 - [오 그대는 아름다운 후원인]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 【 오 그대는 아름다운 후원인 】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 연대매니저 손지후 님을 만났습니다 노들은 어딜 가든 사람이 여럿 모이면 여러 가지 걱정거... file
138 2015 겨울 106호 - [노들은 사랑을 싣고] the power of 승배 【 노들은 사랑을 싣고 】 the power of 승배 야학 동문 정승배 학생 김진수 | 야학교사 진수입니다. 요새 취미는 점심시간마다 낙산에 올라 제가 살고 있는 곳... file
137 2015 가을 106호 - 2015년 기부금영수증(소득공제용) 발급 안내 2015년 기부금영수증(소득공제용) 발급 안내 2015년 한 해 동안 따뜻한 정성을 보내주신 노들 회원+후원인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번 해에도 노들에서는 기부...
136 2015 겨울 106호 - 고마운 후원인들 2015년 11월 노들과 함께하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CMS후원인 강경완 강귀화 강남훈 강문형 강미진 강병완 강복원 강복현 강성윤 강수혜 강영미 강유...
135 2015 가을 105호 - 노들바람을 여는 창 노들바람을 여는 창 올해 노들야학은 큰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야학은 아차산에서 대학로로 오면서 ‘밤 야’자를 쓰는 야간학교에서 ‘들 야’자를 쓰는 들판의 학...
134 2015 가을 105호 - 광화문농성? 자연스럽게 끝나는 날이 옵니다 광화문농성? 자연스럽게 끝나는 날이 옵니다 두 제도 완전히 폐지되면 당연히 농성도 끝! 김 유 미 | 노들야학 상근자로 일하며 노들바람을 만든다. 물론 혼자서... file
133 2015 가을 105호 - 그의 끝이 미완인 이유 그의 끝이 미완인 이유 고 병 권 | 오랫동안 연구공동체 수유너머에서 밥 먹고 공부해왔으며, 이번 여름부터 무소속 연구자로 살아가고 있다. 노들야학에서 철학... file
» 2015 가을 105호 - 노란들판의 꿈, 이루어지다? 노란들판의 꿈, 이루어지다? 네 번째 공장 이전을 하며... 박 시 백 | 노란들판 10년차 디자이너- / 맥주 500cc 5잔 이상부터 내면으로부터 끓어오는 에너지로 ... file
131 2015 가을 105호 - [노들아 안녕] 송무림 송정규 박누리 김진수 이상우 최영은 이수현 이승헌 정우영 노들아 안녕? 노들과 새롭게 함께하게 된 분들을 소개합니다 송 무 림 l 송 정 규 l 박 누 리 l 김 진 수 l 이 상 우 l 최 영 은 l 이 수 현 l 이 승 헌 l 정 우 ... file
130 2015 가을 105호 - 우리는 2인 1조 우리는 2인 1조 둘 사이를 잇는 발판 김 유 미 | 노들바람 편집인이다. 앞서 들어간 본인 글에도 자기소개를 넣은 터라 이번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필자 자... file
129 2015 가을 105호 - 저는 노들 활동보조인교육기관에서 일해요 저는 노들 활동보조인교육기관에서 일해요 박 정 숙 | 노들야학 학생이고 (사)노들 활동보조인교육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종이공예를 하고, 가끔 시 쓰는 것을 ... file
128 2015 가을 105호 - [뽀글뽀글 활보 상담소] 초보 활보코디의 생각’s [뽀글뽀글 활보 상담소] 초보 활보코디의 생각’s 송 정 규 | 나는 하정우를 닮은 송정규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주변에서 자꾸 욕을 한다. 그런 내 얼굴이 궁금...
127 2015 가을 105호 - 메르스로 사망한 활동보조인, 그림자노동의 슬픔 메르스로 사망한 활동보조인, 그림자노동의 슬픔 사망한 활동보조인,‘전파자’ 아닌 ‘산재 노동자’로 불려야 고 미 숙 | 전국활동보조인노동조합 사무국장입니다.... file
126 2015 가을 105호 - 알바는 돈이 필요한 노동자다 알바는 돈이 필요한 노동자다 조 은 별 |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숭실대학교 총여학생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좋아하는 건 도로점거. 기타 연습을 열심히 한다. 많... file
125 2015 가을 105호 - 스물두 번째 <노란들판의 꿈 - 니나노>에 초대합니다. 스물두 번째 &lt;노란들판의 꿈 - 니나노&gt;에 초대합니다. &quot;카르페, 카르페 디엠, 현재를 즐겨라. 너희들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quot; - 영화 &lt;죽은 시인의 사회&gt; 중 삶... file
124 2015 가을 105호 - [장판 핫이슈1] 현금지급제와 개인예산제, 아이고 의미 없다  [장판 핫이슈1] 현금지급제와 개인예산제, 아이고 의미 없다 김 도 현 | 노들장애인야학 교사이자 인터넷 장애인언론 『비마이너』 발행인. 틈틈이 장애학(Dis... file
123 2015 가을 105호 - [장판 핫이슈2] 개별 급여로 바뀐 기초생활보장제도, 아이고 어려워 [장판 핫이슈2] 개별 급여로 바뀐 기초생활보장제도, 아이고 어려워 더 복잡해졌지만 함께 찬찬히 봅시다~ 정 성 철 | 2013년 사회복지학 공부. 2014년 6월 빈곤... file
122 2015 가을 105호 -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도 먹읍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도 먹읍시다” 2015 후원주점에 성원해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한 혜 선 | ‘짧은 글짓기’를 이렇게 끙끙대며 오래 쓰는 애는 첨 봤다며 혀를 ... file
121 2015 가을 105호 - [교단일기] 그래 함께 있어 보자!  [교단일기] 그래 함께 있어 보자! 가 나 | 작년 4월부터 노들야학에서 교사활동을 하고 있다. 두 학기 동안 초등과정인 국어3반 수업과 청솔2반 담임을 맡았다.... fil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43 44 45 46 47 48 49 50 51 52 ... 54 Next
/ 54
© k2s0o1d5e0s8i1g5n. ALL RIGHTS RESERVED.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