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20 00:29
2015 봄여름 104호 - [오 그대는 아름다운 후원인] 북디자이너 구화정 님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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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그대는 아름다운 후원인]
북디자이너 구화정 님을 만나다
“노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것 같아요”
by 노들야학 유 미
사진 : 노들을 후원하는 북디자이너 구화정 님
이번 호에 만날 사람으로 꼽힌 후원인 구화정 님은 내게는 노들보다 더 오래된 인연이다. 내가 언니를 만난 건 2003년, 사진이 좋아서 낮에는 알바하고 밤이나 주말엔 사진 배우러 다니는 그야말로 ‘주경야독’ 하던 때였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스튜디오 사진 촬영 수업을 함께 듣고, 그 뒤부터 쭉 같이 놀았던 것 같다. 언니는 만났을 때부터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다. 당시는 출판사에 다녔는데 지금은 본인이 디자인사무실을 차려서 일하고 있다. 2003년에 같이 공부한 사진반의 또 다른 멤버 지희 언니와 함께 일한다. 언니들도 나도 마감에 쫓기다 보니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지만 가늘고 길게, 어찌됐건 기쁘게 만나온 사이인 건 분명하다. (앗 설마 나만?)
언제였던가... 안 그래도 바쁜 언니들에게 나는 뻔뻔하게도 후원주점 포스터를 디자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어느 날은 언니가 새로 만들었다며 자랑한 명함이 참 예쁘기에, 야학 명함도 이렇게 해달라고 졸랐다. 그렇게 언니 손을 거친 작업물들이 노들에 쌓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언니들이 탁자와 의자 같은 걸 차에 싣고 와 야학에서 쓰라며 주고 가기도 했다. 그때 받은 바퀴 달린 의자를 내가 한동안 잘 굴리며 썼다. 노들야학, 노들센터, 노들 법인 활동가가 새로 들어오면 언니들은 이들의 명함을 만들어준다. 철없는 동생 모드로 평소엔 별 생각 없이 잘 받기만 하다가 가끔... ‘나는 언니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암만 생각해 봐도 내가 줄 수 있는 게 딱히 안 떠오르고... 나란 사람 대체 뭐야... 하다가, 그저 한없이 ‘고맙습니다’로 결론 맺는다.
후원인 인터뷰를 핑계로 오랜만에 언니들의 작업실에 놀러가서 놀다 와야겠다는 생각에 들떴으나, 4월은 1년 중 가장 바쁜 달. 4월 초에 만나기로 했다가 내가 너무 바빠서 연락도 못하고, 4월 20일이 지나자 언니들은 두 개의 영화제 홍보물 작업을 동시에 하느라 ‘밤샘’의 연속 상태였다. 어렵게 잡은 날짜가 몇 번 미뤄지고 결국 우리는 휴대폰 대화창에서 만났다. 흑흑.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북디자이너 구화정이라고 합니다. 단행본 디자인을 주로 하고 있고, 영화제나 행사 홍보물들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일을 12년째 해오고 있어요.
노들은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사진을 찍다 만난 친한 동생이 노들야학 교사가 되었고, 그래서 장애인이 배움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어요. 그 친한 동생은 바로바로 『노들바람』의 꽃 ‘김유미’라는 사람입니다. 하핫!
노들을 후원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옛날엔 장애가 있는 형제나 자식이 있으면 대부분 학교도 안 보내고 집안에 방치했잖아요. 그들이 교육을 받거나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해 가족에게 짐이 되어 힘들어하는 경우를 가까이에서 본 경험이 있습니다. 사실 그땐 그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당장 내 앞에 닥친 일은 아니었으니까 강 건너 불구경 같은 거요.
유미가 노들 사람이 되고 얼마 안 있어 박경석 교장선생님께서 한 말씀을 어디서 주워들었어요. 그때 머리에 망치를 맞은 듯 땡~ 종소리가 울렸지요. “내가 백인이나 흑인이 될 순 없지만, 장애인이 될 순 있다”라는 말씀이요. 아, 장애는 한순간의 사고로도 내게 닥칠 수 있는 일이었구나! 내 일이 아니라고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나에게 부끄러워 무엇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 CMS 소액후원을 시작했습니다. 그해 결혼을 하자마자 후원을 시작했으니 기억이 안 날 수가 없네요. ^^ 벌써 10년이라니요! 노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것 같아요.
노들에 바라는 것, 하고 싶은 말
노들에게 피부로 느끼는 감동을 받았을 때가 ‘꿈꾸는 현수막 노란들판’이라는 현수막 제작 업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였어요.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사회적기업이라니! 디자인 일을 하다 보니 종종 현수막 출력할 일이 있거든요. 그럴 때면 ‘노란들판’으로 연락을 합니다. 과연 내가 전하는 파일이나 요구사항이 잘 반영이 될까? 궁금했는데 어눌한 말투임에도 아무 문제 없이 잘 알아듣고, 진행이 되더라고요. 결과물도 훌륭하고요! ‘가능’하다는 사실에 새삼 감동을 받았지요. 장애가 없는 사람과 이야기를 해도 말이 안 통해서 답답한 경우가 참 많죠. 서로 일이 급해 이기적인 말투가 튀어나오기도 하고요. 노란들판과 일을 해보면서, 그간 제가 가졌던 장애인에 대한 편견 같은 게 좀 깨진 것 같아요. 이런 반성과 깨달음을 갖는 것이 정말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끄러울 만큼의 소액이지만 후원을 통해 제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을 통해 노들이 하는 일들을 봅니다. 장애인 인권을 위해 애쓰시고 투쟁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사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많은 이들이 저처럼 장애에 대한 생각을 환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노들!
사진 : 북디자이너 김지희, 구화정 님
사진 : page9 사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