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이 섞여 있는 통합교육 현장. 그러나 현장은 종종 ‘통합교육의 의도’와는 엇나간다. 비장애아동은 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그 부족함은 교육 현장의 어려움으로 생생히 드러난다. 그렇다고 ‘장애인식개선’ 활동을 하기엔 이는 너무 ‘교육적’이다. 당위적 이야기의 나열보다 이를 직접 경험하게 할 수는 없을까. 또한 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공통의 문제로 끌어내어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이러한 고민을 연극적 작업으로 풀어내는 극단이 있다. 극단 ‘올리브와 찐콩’이다.
극단 ‘올리브와 찐콩’ 이영숙 대표의 ‘이해와 소통, 그 쉬운 말의 편견을 넘어 : 연극예술로 장애/비장애 통합 교육현장 들여다보기’라는 주제의 토크가 9일 늦은 3시 로사이드 사무실에서 열렸다. 이날 토크는 장애문화예술교육 릴레이토크 두 번째 시간으로 비영리예술단체 로사이드와 주윤정 사회학자가 공동주최했다.
▲극단 ‘올리브와 찐콩’ 이영숙 대표(왼쪽)의 ‘이해와 소통, 그 쉬운 말의 편견을 넘어 : 연극예술로 장애/비장애 통합 교육현장 들여다보기’라는 주제의 토크가 9일 낮 3시 로사이드 사무실에서 열렸다.
이영숙 대표는 2009년부터 일반 학교의 통합교육 현장을 찾아다니며 비장애아동을 대상으로 ‘장애아동과 어떻게 잘 지낼 수 있는지’를 연극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는 원래 미국에서 성공한 키즈언더블럭 프로그램을 파라다이스 복지재단이 런칭해 한국에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이 대표는 2009년 이를 한국적 상황에 맞게 바꾸는 과정에서부터 함께하고 있다.
올해로 6년째 진행하는 이 프로젝트는 상반기에만 총 200회가 넘는 순회공연을 했다. 학교로만 치면 130군데를 돌았다. 프로그램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저학년용 인형극 ‘버디&키디’, ‘나랑 같이 놀자’ 등과 고학년용(5~6학년) 교육연극 ‘유진아~ 유진아!’가 있다. 인형극의 경우에는 지체, 지적, 자폐, ADHD 등 현장 요구에 따라 장애 유형별로 개발되어 있다. 현재는 초등학생용만이 나와 있으며 중·고등학생용은 연구 중이다.
# 공연 뒤 아이들과 토론, 직접 극에 개입해보기도
인형극은 주제에 대한 호기심을 돋우고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 - 일정한 주제에 대하여 참석자의 자유로운 발언을 통해 창조적인 생각을 찾아내는 일)을 하는 도입부(10분), 문제적 상황을 담은 본극(10~15분), 후속활동(10~15분) 등으로 현장 상황에 맞게 총 40분으로 짜여 있다.
인형극은 두 명의 티칭아티스트(배우)가 인형을 조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아이들과 함께 인형놀이하는 느낌으로 조종자가 노출된 상태에서 인형을 조종한다.
지체장애아동을 주제로 한 인형극 ‘내가 다 해줄게’는 ‘배려심 깊은 비장애아동’이 휠체어를 탄 아이의 모든 활동을 도와준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이들은 연극을 봄으로써 상황에 ‘빠져 있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면들을 발견한다.
공연 후, 티칭아티스트는 휠체어를 탄 아동은 이러한 배려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묻고 만약 아이들이 극 속 비장애아동이라면 어떠한 다른 선택을 할지 이야기를 나누고 직접 나와 실험해보게 한다. 아이들은 실험 후 어떤 점이 달라졌고 어떤 부분이 좋았는지 이야기 나눈다. 이렇게 아이들은 배려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고학년의 경우에는 인형극 대신 배우들이 직접 연기한다. 극은 같은 반 장애아동을 둘러싼 이야기로 장애아동을 제외한 5명의 배우는 각 반에 있을 법한 보편적인 캐릭터를 연기한다.
상연 후, 배우들이 한 명씩 들어간 모둠토론을 통해 아이들은 해당 역할과 상호작용하며 자기 이야기를 풀어낸다. 모둠토론 뒤엔 전체토론을 통해 실제로 각 반에서 일어나는 문제 상황을 이야기하며, 각자 이 상황을 어떻게 느끼고 어떠한 방향으로 풀어나가면 좋은지 아이들 스스로 찾도록 돕는다. 토론 후에는 아이들이 극적 상황 속에서 이를 실험해본다. 고학년 프로그램은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다.
▲참가자들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된 저학년용 인형극 영상을 보고 있다. 인형극은 지체, 지적, 자폐, ADHD 등 현장 요구에 따라 장애 유형별로 개발되어 있다.
# 연극적 경험 통해 장애아동 이해할 수 있어
이영숙 대표는 “제작 시, 프로젝트의 전제는 ‘교실로 들어간다’였다”라고 설명한 뒤, 가장 주의해야 할 점으로 “방향을 놓치지 않되 주입식으로 강요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프로그램은 정해진 대사와 매뉴얼로 진행하지 않아요. 아이들의 반응을 열어놓고 그에 맞는 유연한 대처와 즉흥성이 강하죠. 프로그램의 방향을 기본으로 현장 반응을 더하는 거예요.”
이 프로그램은 장애아동과는 분리해 비장애아동만을 대상으로 한다. 비장애아동들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듣기 위함이다. 그래서 ‘부정적’ 이야기도 거침없이 나온다. 하지만 이 또한 들어야 하는 이야기다.
그래서 티칭아티스트에 대한 연수도 중요하다. 통합교육 가치에 대한 동의를 넘어 각자가 이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어야만 ‘임기응변’이 아닌 ‘방향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현장 반응을 더한 진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이미 장애아동과 함께 생활하고 있어요. 부정이든 긍정이든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해야 해요. 그 안에서 스스로 긍정적 방향을 찾아갈 수 있게 하는 게 가장 큰 교육적·연극적 철학이에요. 아이들을 그 자리에서 바로 바꿀 순 없어요. 그것은 주입식이죠. 우리의 목표는 잔잔한 물결처럼 보이는 그곳에 돌을 던져 파란을 일으키는 거예요.”
그래서 어쩌면, 연극을 택한 지도 모른다. 극 속에서 배우가 역할 옷을 입고 연기를 할 때, 즉, 손을 드는 작은 행위에서도 배우는 행동의 동기를 찾게 된다. 이 대표는 이러한 연극예술과 교실 속 연극 수업이 만난다고 말한다.
“침 뱉거나 눕는 그 친구의 앞뒤 정황을 알면 왜 그러는지 알게 되죠. 그걸 알고 이해하게 되면 나 자신이 조금 편해질 수 있어요. 그런데 한 반에서 같이 지내는 나도 행복해야죠. 모두가 즐겁게 사는 방법은 뭘까. 나는 과연 모른 척해도 되는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거죠. 내 안에서 올라오는 불편함을 직시하는 거예요. 남이 불편하면 나도 불편해요. 이를 꺼내서 모두가 힘들다는 걸 공유하고 서로 다름을 이해하는 거죠. 이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해요.”
수업하면서 통합교육 현장을 속속들이 보게 된다. 수업 당일에는 장애아동에 대한 아이들의 부정적인 에너지에 마음 쓰였지만 그 이후에는 아이들이 조금씩 변화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아이들은 그렇게 움직이고 느끼고 경험하고 변화한다. 그리고 성장한다. 현재 이 대표는 이외에 초등학교 특수학급, 장애인시설 등에서도 연극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