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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바람을 여는 창




“저는 난생 처음으로 출구가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황금 해안에서
인간이 쏜 두 발의 총을 맞고 인간세계로 붙잡혀온 원숭이. 그때 볼에
남은 흉터로 ‘빨간 페터’라는 이름을 갖게 된 그. 우리에 갇힌 상태로
살다 보니, 아니 살려고 하다 보니 인간처럼 침을 뱉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인간의 말을 하게 되고, 그리하여 학술원에 자신에 관한
보고서를 쓰기에 이릅니다. 카프카의 단편 소설 『학술원에 드리는 보
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2008년으로 기억합니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언니들과 노들 사람 몇몇이 모여 ‘탈시설 운동’을 기획하고 준비했습니다. 물론 탈시설 운동이 무리지어 직접 행동으로 이뤄진 것이 저 무렵이었지, 탈시설 운동의 역사는 깁니다. 당시 ‘탈시설 운동’에 걸맞은 슬로건을 만들겠답시고 이 말 저 말 끌어와 억지 조합을 해보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저런 제안 끝에 슬로건은 ‘자유로운 삶, 시설 밖으로’로 정해졌습니다.



“‘슬그머니 달아나라’라는 멋진 독일어 표현이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했습니다. 저는 슬그머니 달아났습니다. 자유란 선택될 수 없다는 것을 언제나 전제로 한다면, 저에게 다른 길은 없었습니다.” 빨간 페터의 표현처럼 ‘자유’는 참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좀 미운 말이기도 했습니다. 누구나 자유를 말하고 그리고 누구에게나 자유가 있다고 많은 이가 말하니까요. 전 세계 인류의 기본권인 것처럼 이야기되는 ‘자유’이지만, 누구나 알 듯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변엔 자유가 부족한, 심지어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었습니다. 그래서 옹졸한 저는 애꿎게도 이런 ‘자유’를 좀 미워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자유란 우리가 지향하는 거대한 덩어리의 단어, 원초적인 개념의 단어라는 것을 뒤늦게 어렴풋하게나마 깨우쳤다는 겁니다. 우리는 ‘자유’를 위해, 자유롭기 위해 무언가를 합니다. 배우기도하고, 노력하기도 하고, 투쟁하기도 합니다. 이런 하나 하나의 실천들이 자유를 구성합니다. ‘시설 밖’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집이 필요하고, 활동보조인이 필요하고, 생활비가 필요했습니다.



지난 4월 세월호 침몰 사고 다음 날, 야학 신입학생이었던 송국현 님의 집에 불이 났습니다. 그는 장애인생활시설에서 자기 인생의 절반을 보내고 나이 쉰이 넘어 ‘탈시설’ ‘자립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어렵사리 출구를 찾아 나왔던 것이지요. 하지만 빨간 페터가 자유를 갖기 위해 계속해서 다음의 출구를 찾아야 했던 것처럼, 국현 씨는 시설에서 나온 뒤 다시 장애등급제라는 감금장치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새로운 출구를 찾기 전에 화재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활동지원서비스가 필요하다며 국민연금공단에 찾아가 긴급
구제도 요청해봤지만, 구제보다 화재가 앞섰습니다.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를 외치는 광화문 농성은 700일이 넘었습니다.



반복해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우리에 갇히는 것이 우리의 삶인가, 결국 벗어나도 벗어나도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망 안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절망적인 생각도 듭니다만. 희망이 허망한 것처럼 절망도 허망하다 했으니, 새로운 출구를 찾아 거대한 우리를 계속해서 찢고 나가는 수밖에요.



국현아저씨 잘 지내요. 안녕.



지금 보고 계신 이 「노들바람」은 101번째 소식지입니다. 100호는 야학 홍은전 선생님이 정리한 노들의 스무 해 이야기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책을 읽어주시면 힘이 많이 날 것 같습니다. 노들바람은 지금껏 살아온 대로 앞으로도 꾸준히 밀고 나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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