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봄 122호 - [노들아 안녕] 내가 살아온 일들 / 조창길
[노들아 안녕]
내가 살아온 일들
조창길
저는 1972년 3월 선천적인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6살 때까지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지내왔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어떻게든 저를 걷게끔 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셨습니다. 7살 무렵 부모님의 격려와 물리치료 등을 받아 조금씩은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집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에 걸어서 등하교를 할 정도로 많이 좋아졌습니다. 4학년 때 지독한 열병으로 1년여를 병원에 있으면서 학교도 중퇴를 권유당해 병원과 집에만 있게 되었습니다. 10대 후반 살아가면서 작은 직업이라도 가지기 위해 보라매공원에 있는 시설로 직업 훈련을 받으러 다니던 중 그곳에 파견 나온 의사선생님이 수술을 받으면 더 잘 걸을 수 있다고 수술을 권유하셨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부모님은 수술을 결정 하셨고 여러 번의 정형외과 수술을 받았지만 상태는 오히려 악화되어 걷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1년 정도 시간이 지난 후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시설에 입소해서 직업 훈련을 받았습니다. 음향기기와 귀금속 공예, 두 가지 자격증을 취득하고 취업을 위해 여러 곳을 찾아 다녔지만 장애인을 받아 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장애인이라 어떤 곳에서도 나를 받아주지 않는구나. 내가 할 수 있는 직업은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 돌아왔지만 부모님은 바쁘게 일을 다니셨고 집 밖을 나가고 싶어도 혼자서 돌아다닐 수 없었기에 20여년을 집 안에서 보냈습니다. 스쿠터나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조금씩 돈을 모으기 시작 했습니다. 스쿠터를 타고 돌아다니며 너무 기뻤습니다.
집 근처에 장애인 복지관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봤습니다. 그 곳에서 같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회복지사와 친하게 지내면서 장애인의 인권과 또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나도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활동 보조 서비스를 받게 되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권강사, 보치아대회 참여 등을 하면서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장애인 전국체전에도 참가해서 지금까지 은메달 2개 동메달 3개도 땄습니다. 점점 외부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즐거워졌습니다. 2015년부터는 장애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해서 월급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몇 군데 장애인자립센터에서 일을 하다 보니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사소통과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리가 없었지만 문서 작성과 학력이 마음에 걸림돌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워드 등을 배우고 또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노들 야학을 찾아왔습니다.
야학에 오니 많은 동료들과 선생님들이 반겨 주어서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나름 열심히 공부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했습니다. 야학에서의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많은 동료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하고 지내다 보니 이번에 학생회장에도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더 욕심도 생겼습니다. 올해 고등학교 검정고시도 통과해서 사이버대학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센터 등에서 정규직 직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올해 회장으로서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겠습니다. 공부도 투쟁도 열심히 하는 사람 조창길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