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가을 120호 - [나는 활동지원사입니다] 활보로 자립하고 공감하다 / 정지원
[나는 활동지원사입니다]
활보로 자립하고 공감하다
정지원
나는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를 할 시간을 확보하면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했다. 그때 같은 공간에서 공부하던 선생님의 소개로 장애인 활동 보조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장애인 활동 보조 일이란, 장애인의 집으로 가서 가사와 신체, 사회적 활동을 돌보는 일이다. 처음엔 생활비도 빠듯할 정도의 수입이었다. 그러다 차츰 일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저축도 하게 되었고 학비와 책값, 생활비의 전반을 해결하게 되었다.
나의 이용자 그녀는 뇌병변장애인이다. 뇌병변장애가 있으면 뇌의 손상으로 신경근육이 마비되고 틀어져서 손발을 쓰는 것도 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원활하지 않게 된다. 해서, 밥을 먹고 씻고 외출하는 일을 내가 돕는다. 그녀는 집에만 있는 게 아니고 야학도 다니고, 직업도 있고, 아르바이트도 하며 일상을 바쁘게 보낸다. 그래서 나도 엄청 바쁘게 돌아다닌다.
그녀는 장애인들이 시설 밖으로 나와서 활동하도록 돕는 멘토 역할도 했다. 그녀의 소통 방법은 핸드폰. 떨리는 손가락으로 핸드폰에 문자를 써서 상대 장애인에게 소리로 들려준다. 그러면 상대 장애인은 그 소리를 듣고 휠체어 발판에 ‘발’로 글을 써서 의사를 표현한다. 이때 내가 할 일은 이들이 주고받는 의사표현에 집중해서 서로가 이해하도록 이들의 주장을 전달하는 일이다. 전달이 안 될 땐 여러 번 묻는다. 그녀의 숙제를 위해 이것을 글로 받아 적어서 전달할 때면 흐뭇하기도 했다.
한날은 그녀가 시무룩해 있었다. 밥도 잘 못 먹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무슨 일이냐고 하니까. 그녀는 앞으로 있을 상견례 때 시댁 식구를 만날 일이 걱정이라고 했다. 결혼 전에 시댁 식구를 한번 만나야 하는데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상견례 진행 상황을 듣고 난 후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해주었다. “다른 절차는 다 준비 됐으니 그날은 인사드리고 밥만 맛있게 먹고 오면 된다.”고. 그러자 고민이 풀렸는지 그녀의 얼굴에 바로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 그녀는 지난 5월에 결혼을 했다.
이처럼 활보 일은 나에게 경제적 자립을 넘어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고 상대와 공감하는 일의 기쁨을 경험하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