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가을․겨울 109호 - 광화문농성 1,500일, 일상으로의 초대
광화문농성 1,500일, 일상으로의 초대
박누리 | 노들야학의 상근교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농성 1500일, 2박 3일 투쟁캠프에 단원으로 함께 했다.
‘사람이 사는 광화문 역사 농성 4년, 일상으로의 초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농성 4년을 맞아 우리가 내건 슬로건이다. 100일, 200일, 1,000일을 넘어 1,500일을 지나고 있는 광화문 농성장은 하나의 투쟁으로 시작해 이제는 사람들의 일상이 되었다. 투쟁이 일상이 되어 버린 사람들. 그들과 함께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에 더해 2017년 장애인 생존권 예산을 쟁취의 이야기를 가지고 2박 3일의 투쟁캠프를 진행했다.
이번 투쟁캠프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전국결의대회로 시작되었다. 여러 사람들의 결의에 찬 발언이 있었고, 하자센터의 페스테자 친구들이 투쟁캠프의 시작을 응원해 주었다. 힘을 받은 투쟁캠프 단원들은 여의도에 모여 있는 나쁜 정당들을 만나기 위해 머나먼 길을 떠났다.
행진 경로는 광화문에서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까지 근 8km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거리였다. 정부서울청사에서 서대문역을 지나 공덕역에 도달했을 즈음, 중증장애인들이 하나둘 휠체어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장애인 생존권 예산을 확보하라’고 외치며 아스팔트 위를 기기 시작했다. 그런 동지들에게 다른 동지들이 무릎보호대와 장갑을 끼워주었다. 매끈한 방바닥을 기기도 쉽지 않을 그들이 거친 아스팔트 위를 기어가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면서도, 그들의 절박하고도 결사적인 심정이 와 닿자 장엄한 광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의 일정 때문에 끝까지 기어서 목적지에 갈 수는 없었다. 동지들은 공덕역 오거리를 지난 후 다시 휠체어에 앉았다.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모두 생채기를 입었다. 직접 긴 사람들은 몸에,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은 마음에 각자의 생채기를 안고 다시 길을 떠났다.
마포 국민의당 당사 앞에서 저녁을 먹었다. 도착해서 얼마간 경찰과 마찰이 있었으나 다행스럽게 마무리가 되고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 새누리당으로 다시 행진을 시작했다. 마포대교를 건널 때 우리의 친구 야마가타가 와서 우리의 행진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다. 언제나 멋진 야마가타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계속해서 신나고 유쾌한 노래와 퍼포먼스로 투쟁 단원들의 사기와 힘을 북돋아 주었다.
거리가 긴만큼 행진이 진행된 시간도 여태까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진행한 행진 중 제일 길었다. 오후 3시쯤 시작한 행진은 10시가 넘어서야 끝이 보이는 듯 했다. 새누리당 당사가 저만치 보이는 동시에 그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경찰이 시야에 들어오며 또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한동안의 실랑이가 있고 나서 우리는 새누리당 당사 사거리에 앞에서 잠을 청했다. 정말 길고 긴 하루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행부라서 중간 중간 차를 타고 운전을 하며 갔던 나도 이렇게 힘든데, 쌩으로 그 행진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노들야학 학생들과 다른 투쟁단원들을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쿨쿨 잠이 들었다.
둘째 날이 밝았다. 가난한 사람과 장애인이 함께 살기 위해 첫째 날의 국민의 당에 이어 둘째 날에는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정의당에 앞에서 당당당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오전의 기자회견을 큰 무리 없이 마친 투쟁단원들은 각자 자신이 속한 단위의 사람들과 함께 삼삼오오 광화문으로 이동했다.
하나둘 광화문 광장에 모인 우리들은 대오를 정비했다. 대오를 정비한 단원들은 일부는 세종문화회관 앞 도로를 점거하고 또 나머지 단원들은 사부작 사부작 2017년 장애인생존권예산쟁취 천막을 준비해서 광화문 광장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작전은 잘 먹혀들었고, 도로 쪽 대오를 진압하는데 신경이 쏠린 경찰들은 천막은 잘 보지 못했다. 그리하여 광화문광장에는 또 하나의 천막이 들어섰다.
천막을 본 경찰들은 화가 많이 났고, 우리의 짐들이 광화문에 들어오지 못하게 방패로 막으며 우리를 탄압했다. 그러는 사이 천막 옆으로 투쟁문화제 무대가 만들어졌다. 문화제에서는 연영석 동지, 시와 동지, 박준 동지 등이 멋진 공연을 보여 주었다. 동지들의 공연은 특히 힘이 많이 들었을 우리의 둘째 날을 버틸 수 있는 에너지를 주었고, 우리로 하여금 기운이 다시 100% 충전되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이렇게 다시 힘을 받은 우리들은 침낭을 들여오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한 명이 한 개씩 농성장에서 침낭을 가지고 오기도 하고, 나는 전 정거장에서 버스를 타고 내려서 그냥 다른 짐을 나르듯 침낭을 들여오려 했으나 정보과 형사의 손에 침낭을 빼앗기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당했다. 밤이 많이 늦어져서야 우리는 다시 잠자리를 준비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광화문광장에서 절대 올 것 같지 않았던 두 번째 밤을 맞이했다.
대망의 마지막 날은 와라(‘광화문에 와야 듣는 라디오’의 줄임말) 특별 아침 방송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공공부문 성과퇴출제 저지 총파업 지지 기자회견’을 공공운수노조와 함께 진행하며 투쟁캠프 해단식을 가졌다.
정말 길고 긴 날들이었다. 누구는 고작 2박 3일가지고 그러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직접 체험해 본다면, 그리고 계속되는 그 투쟁의 긴장감을 느껴본다면 감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2박 3일을 밖에서 지내며 꽃다지의 「내가 왜」라는 노래가 많이 생각났다. 참 잘 만든 노래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좋든 싫든 어쨌든 나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2박 3일이었다. 그 힘들고도 달콤했던 시간들을 견딜 수 있었던 건 단 한 가지, 야학 학생들 및 동지들과 함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그날 밤을 함께 했던 이들과 더불어 더 좋은 날을 거리에서 맞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