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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통을 위한
수화반



노란들판 수안






          요한 : “상큼한’이 뭐예요?”
          수안 : ‘음… 뭐라고 설명하지?’(생각하다가) “레몬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들어?”
          요한 : “써!”
          수안 : ㅜ.ㅜ



노란들판에 주문한 고객님의 수정요청 내용 중에서 요한은 모르는 단어를 나에게 직접 물어봤다. 아주 기초적인 수화만 알고 있던 나는 ‘상큼’이라는 단어를 배워 본 적이 없어 당황했다. 수화 홈페이지에서 찾아봐도 없고 그냥 아는 대로(?) 손과 몸짓으로 표현하려다보니 소통에서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이 무렵 노들야학에서 요한이 한글을 배워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교육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요한을 처음 만난 날 홍은전 쌤은 이렇게 평가했다. “노들야학 12년, 처음으로 몸으로 당하는 차별이 아니라 언어로 당하는 차별의 세계를 만났다. 구화 조금, 수화 조금, 필담 조금… 다 조금. 그래서 ‘조금’ 수준을 넘어가는 대화 불가능. 저 친구의 언어를 내가 전혀 모름. 비장애인사회에서 초중고대학 다 나왔지만 모든 글을 이해 못한다. 자기의 언어가 없는 것 같은 느낌. 입에다 재갈 물려놓은 듯. 포유류가 바다 속에서 물고기들하고 같이 지낸 듯. 답답하지만 그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지 않았을까.” 평가서를 읽은 나는 같은 청각장애인 입장이라 어떤 상태인지 잘 알기에, 요한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나의 부족함이 답답했고 더욱 동지애를 느꼈다.


노들센터의 도움으로 의사소통의 장애로 방황하는(?) 이 땅의 수많은 청각장애인들의 입장을 잘 이해해주시는, 장애인정보문화누리 활동가이자 수화통역사인 김철환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분은 청각장애인들이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그들의 손으로 표현되는 사인인 수화를,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하는 신기한 세계로 이끌어 요한이 배움에 대한 의지를 갖게 해주셨다. 수화로 얘기하고 서로 정보를 교류하게 되니 딴 세상을 만난 것 같은 요한은 그 순간, 미소로 환하게 웃었다. 그게 계기가 되어 김철환 선생님의 소개로 중구장애인복지관에 계신 김정희 쌤이 수화를 가르쳐주시기로 하고 보조교사 정리라 쌤과 함께 매주 목요일마다 노들센터에서 수화 수업을 하게 되었다. 요한과 더욱 잘 소통하기 위해, 그가 잘 모르는 단어를 넣은 문장을 만들어서 하나씩 하나씩 배워나가고 있다. 고객의 주문사항이 적힌 메일을 혼자 못 읽던 그는 이제는 조금씩 이해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신감과 희열을 느낀다. 이대로 배움을 계속한다면 혼자 스스로 당당히 읽을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기대감을 가져본다.


지난 3월호 웹진 노들바람에서 그동안 표출하고 싶었던 마음속에 숨겨둔 그 무언가를 언어 대신 그림으로 보여줬던 그는 아직도 꿈꾸고 있을 것이다. 당당히 세상에 나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서 표현의 자유로움을 맘껏 표출하리라고……!




102_05_01.jpg




102_05_02.jpg

[ 요한 이야기 ]


나무엔 지금과 과거와 미래가 모두 담겨 있는 것만 같다. 쉽게 짐작하겠지만 나무는 그 자신 이외의 것을 나타낸다 보긴 어려울 것이다. 나무 치고는 그다지 크지도 않고, 울창하지도 않으니 무언가 사연이 있을 듯. 그 사연은 어릴 적, 특히 학창시절 제대로 자랐어야 할 그 시기로 돌아간다. 학교에 있던 그 나무는 자신에겐 너무 어려운, 비장애인들에겐 너무 익숙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수업에 적응하지 못했다. 교우들과 선생님들과 단절되어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가야만 했던 그 나무는 결국 가지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잘려나가는 듯한 슬픔을 겪어야만 했다. 그렇게 지내다 지금에 와서 새롭게 자신과 소통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났고 서로의 소통 방식으로 수화를 함께 배우고 있다.
이 수화가 지금의 나를 깨웠다. 잘려진 가지엔 이제 새싹이 돋고, 무엇보다 이 나무는 다시 자라고 싶다는 마음에 사로잡혔다. (아마도 그것은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난 말한다.



"이 봄에, 다시 공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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