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가을 102호 - [노들아 안녕] 노들야학 가나
노들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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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에 부치는
연애편지
노들야학 가나
당신에게 한가위는 잘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가나’입니다. 당신을 만나고 나서부터 저는 ‘가나’라는 별명을 썼더래요.
편지를 쓰다말고 잠시 밖에 나갔다 왔어요. 담배를 피면서 밤하늘을 쳐다보았죠. 밝은 달이 꽉 차 있어요. 구름이 좀 끼긴 했지만 달이 밝은 한가위 날이에요.
이 글을 쓰다 보니 당신을 알게 되었던 게 ‘과연 언제부터였나?’ 곰곰이 되짚어보게 되었어요. 생각보다 오래전에 저는 당신을 알고 있는 사람을 보았어요. 재작년에 시청 앞 광장에서 생명평화대행진1)을 마무리하는 행사를 할 때였죠. 무대에 마지막으로 오른 사람은 한 여성2)의 영정사진을 품에 안고 나왔어요. 사진 속의 여성은 나랑 동갑이랬어요. 활동보조인이 돌아간 뒤에 불이 난 집에서 죽음을 맞았다는 그. 그는 ‘활동보조 24시간 쟁취’를 위해 열심히 투쟁한 활동가였대요. 정작 자신이 부족한 활동보조 시간 때문에 죽음을 맞았다고 했죠. 영정사진을 들고 말씀을 하신 분은 길고 흰 머리의 꽁지를 묶고 휠체어를 타고 계셨죠. 누군지 아시겠지요? 바로 박경석 교장선생님이셨어요. 말씀을 하시던 교장선생님은 말미에는 큰 소리로 “꺽~, 꺽!” 하시며 구슬프게 우셨어요.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이들이 다함께 서럽게 울었죠. 저도 울었어요. 제 옆에 앉아계셨던 분은 붉게 들뜬 얼굴에 눈물이 가득한 채로 끊어질 듯이 흐느끼셨죠. 그 분은 수유너머N의 이진경 선생님이셨어요. 그 모습이 저는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그래요. 저는 당신보다 인문학 공동체 ‘수유너머’를 먼저 알았어요. 재작년부터 저는 수유너머N과 수유너머R을 오가며 세미나를 조금씩 하곤 했어요. 한동안 아무런 세미나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시 ‘세미나 한번 해볼까?’하는 마음이 들지 뭐에요. 수유너머R 누리집에서 ‘뭐, 할 만한 세미나 없나?’ 싶어 세미나를 뒤져보았지요. 여러 세미나 가운데 당신과 수유너머R이 함께하는 ‘현장 인문학’이 제 눈길을 끌었어요. 그래서 ‘소수적 문학 읽고 만들자!’라는 이름의 현장인문학에 도중에 끼어들어갔죠. 작년 가을 즈음이었어요. 덕분에 그때 대학로에서 당신을 처음으로 만났어요. ‘현장 인문학’에 참석하면서 당신과 함께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요. 간혹 뒤풀이에 따라가기도 했고요.
현장인문학이 끝나고 나서 얼마 뒤에 저는 은별, 준호 선생님과 그 두 사람을 따라 온 상용 씨를 따로 만나 술 한잔했어요. 그때 은별 선생님과 준호 선생님이 전에도 그랬지만 또다시 야학 교사를 해보라고 재차 권하더라고요. 저는 생각해 보겠다고 했고요. 술자리가 끝날 즈음이었나? 준호 선생님이 “교장선생님이 이번에 구치소에 들어가시는데 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3)을 하니까 한번 와보세요.” 하더라고요. 교장선생님께서 구치소로 들어가시던 날, 저는 검찰청 앞에서 하는 기자회견에 조금 늦게 갔어요. 현장인문학에서 봤던 사람들 몇 말고는 아는 사람도 별로 없던 저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았죠.
그러고 나서 준호 선생님이 그 다음 주인 4월 5일에 교사회의를 하니까 오라고 했어요. 또 그 말을 듣고 4월 5일 교사회의에 별 생각 없이 무작정 찾아가서 참석했었죠.
그 다음 주부터 수업참관을 열심히 했어요. 4월부터 호식이형 활동보조를 시작하면서 어차피 호식이형을 모시러 야학에 다녀와야 하는 상황이어서 한결 편했어요. 수업참관을 한 지 두 주가 지났을 때 갑자기 청솔1반 학생이셨던 국현이형이 화재로 돌아가셨죠. 그 전 주 월요일, 청솔1반 수업 참관을 하면서 저는 자꾸 밖에 나가려고 하는 국현이형을 옆에서 꼭 붙잡아두곤 했어요. 형은 1교시 때까지만 해도 어쩔 줄 몰라 했어요. 2교시 때는 제법 잘 참고 밖에 나가지 않으셨어요. 다음 주 부터는 형이 수업시간에 밖에 잘 안 나가고 잘 참을 수 있지 않을까 혼자 속으로 기대했었죠. 국현이형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저는 참 안타까웠어요. 제 첫날 수업참관 일지에는 국현이 형이 ‘송국현’이라고 자기 이름을 또박또박 쓴 글씨가 아직도 있어요. 일지에 학생분들 이름을 쓰려고 한 분 한 분 여쭤봐서 이름을 썼어요. 말을 잘 못했던 국현이형은 제 일지에 자기 이름을 손수 커다랗게 쓰셨던 거였죠.
그밖에도 당신을 만나면서 참 많은 일이 있었지요. 고병권 선생님이 쓰신 『살아가겠다』와 홍은전 선생님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를 함께 읽었던 신임교사 세미나. 조사랑 선생님을 도와서 경남누나와 지민이형에게 1부터 10까지 숫자를 익히게 했던 수학1반 수업보조 활동.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으면 어떻게든 표를 팔아보려고 애썼던 ‘씩씩한 후원주점’(1장당 5천 원씩 교회 공동재정으로 지원해주시고 많은 표를 사주셨던 은혜공동체 교회 분들께는 더욱이 고마운 마음이 커요). 처음으로 노들텃밭에 갔던 청솔1반 단합대회. 모꼬지 씨름대회와 ‘노들바람 퀴즈대회’, 신임교사 축하공연을 준비하느라 바빴던 노들모꼬지. 그리고 정교사 인준을 받은 교사수련회…
지난 교사수련회에서 저는 국어3반 수업을 맡게 되었어요. 청솔2반 담임도 정민구 선생님과 함께 하게 되었지요. 지난주부터 2학기 수업을 시작했고 저는 딱 두 번 수업을 했어요. 처음 하는 수업인데 시간을 내어 차분하게 준비를 못하곤 했죠. 늘 해치우듯이 수업을 했던 것 같아요. 학생 분들에게 아주 많이 미안했어요. 명절 때문에 쉬는 동안 이번 학기 수업계획을 잘 짜봐야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당신에게 반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저도 당신에게 홀딱 반한 것 같아요.
제가 당신에게 반한 이유는 뭘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런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가 봐요. 당신이 이 땅에 사는 장애인들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 누구보다 앞에 서서 열심히 싸워왔다는 점!
앞으로도 당신이 치열하게 싸워나가길 바래요. 고병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교육과 운동이 분리되지 않은 존재로 계속해서 살아갔으면 해요.
지금은 당신이 많이 좋아요. 언젠가는 당신에게 소홀하고 또 언젠가는 당신과 떨어져 지낼 때도 있겠죠. 그래도 당신을 만나는 순간만큼은 후회가 남지 않게 당신을 잘 만나보고 싶어요. 당신을 만나면서 저에게는 뭔지 모를 설렘과 새로운 활력이 생긴 것 같아요.
‘씩씩한 후원주점’ 때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 책을 사서 홍은전 선생님께 사인을 부탁드렸어요. 그때 홍은전 선생님은 사인을 해 주시고 이런 글을 적어주셨죠.
“가나, 노들에서 만나서 반가워요. 오래, 만나요.”
저도 당신에게 같은 말을 돌려드리며 인사를 갈음할까 해요.
“노들야학, 당신을 만나서 반가워요. 오래, 만나요!”
갑오농민항쟁 120주년을 맞는 갑오년 한가위 날, 가나가 두 손 모아 드려요!
추신 : 한가위 날, 차례를 올리면서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 때문에 억울하게 돌아가신 숱한 분들의 넋을 위로해드리세요.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1)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 해고된 쌍용차 노동자들, 용산참사 유족 등이 연대하여 만든 SKY Act(스카이 공동행동)가 이끈 전국 순회 대행진. 2012 생명평화 대행진 행진단은 제주해군기지 백지화, 비정규직· 정리해고 철폐, 강제철거 금지 등을 요구하며 이 땅에서 해고, 철거, 난개발 등으로 신음하는 곳들을 돌아다녔다. 내가 참석한 이 집회는 2012년 11월 3일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렸고 2012년 10월 5일 제주도청에서 시작한 행진을 마무리하는 자리였다. 집회의 마지막 순서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님이 올라오셨다. 2) 장애해방운동가 故 김주영 열사. 그는 2012년 10월 26일 새벽, 집에 불이 나는 바람에 이 땅을 등지게 되었다. 따지고 보니 내가 2012 생명평화대행진 서울광장 집회에서 그의 영정을 본 건 그 사건이 있은 지 고작 일주일이 갓 지나 여드레가 되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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