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가을 102호 - [나는 활동보조인입니다] 최영은 님
나는 활동보조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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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와
함께하는 월요일
최영은 활동보조인
4시. 지하철역에서 언니를 만난다. |
먼저 어떤 반찬을 가져왔는지 메뉴를 공개하면서, 미리 저녁 식사 시간이 얼마나 즐거울지 예측해본다. 언니는 비위가 굉장히 약하기 때문에 내가 챙긴 모든 반찬을 언니가 먹을 수 있는 경우는 복권을 긁어서 오백원짜리에 당첨 될 정도? 그래서 모든 반찬이 검열 통과된 날은 기분이 꽤 뿌듯하다. 그 다음엔 어젯밤에 잘 잤는지 안부를 물어본다. 사실 답은 언제나 NO이지만, 그 속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10%의 밀도 낮은 No일 때 수다는 이어지고 90%의 강력한 No일땐 ‘언니 그럼 좀 주무세요.’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내 입술은 닫힌다.
이런 간단한 체크가 끝날 때쯤이면 항상 열차가 들어온다. 엘리베이터와 가장 가까운 칸 또는 장애인석이 있는 칸으로, 항상 똑같은 칸에 타고 똑같은 길로 다니지만 열차 칸에 들어서는 순간 긴장이 시작된다. 과한 방어기제일 수도 있지만, 매번 언니에게 쏟아지는 시선과 수군거림 또는 가끔씩 일어나는 별 일에 대한 자동적인 긴장이다. 반면 언니는 내가 조용히 있으면 꽤 푹 잘 자고, 내가 수다를 떨면 편하게 나와 이야기한다. 이런 걸 언니는 몇 십 년을 겪어왔을 테니까. 면전에서 멍멍 소리를 들어도 한 번 쌍욕을 하곤 재수 없으니 다른 주제로 넘어가자고 하는 언니. 이럴 때 보면 언니는 꽤 단단한 사람이다. 이 단단함이 굳은살 같은 느낌이라 마음이 안 좋을 때도 있지만, 어쨌든 언니의 방식이다.
수군거림은 그렇다 쳐도 쏟아지는 시선은 한 번도 피해본 적이 없다. 자신들과 다른 신체에게 자연스레 눈길이 가는 느낌인데 이 자연스러움이 때론 무섭다. 어떤 신체를 자연스레 쳐다보게 된다는 건 그들이 자신과 같은, 함께 섞여 사는 사람으로 생각되지 않는, 낯설고 접해보지 못한 존재라는 의미를 가지는 걸 테니까. 이럴 때면 활보를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궁금증이 생겨 읽어 본 책 들이 몇 권 떠오른다.
한 책에서 이렇게 말하더라.
우리 사회는 다양한 신체들을 받아들이며
함께 사는 넓고 수용적인 사회가 아니라고.
팔 두 개, 다리 두 개, 잘 보이는 눈과 잘 들리는 귀. 더 좁게는 가늘고 긴 팔다리와 큰 눈 높은 코와 같이 만족해야 하는 기준이 정해져 있는 사회.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는 존재일수록 우린 그들을 거리에서 마주치기 힘들다. 장애인이 시설·집에 처박히는 경우나 사람들이 온갖 성형으로 완전 정상 또는 완전 표본의 얼굴을 갖는 경우가 그렇지 않나. 으악, 이렇게 언니와 함께 있을 때면 종종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곤 한다. 언니의 신체, 언니의 존재는 내게 여러 가지 생각과 질문을 떠올리게 하는 촉발제다. 이 사회가 요구하는 웬만한 것에서는 다 비껴나 있지만, 자신의 방식으로 매일을 잘 살고 있음을 일주일에 삼일, 나에게 증명해주는 언니는 내게 정말로 촉발제다.
5시가 조금 넘으면 학교에 도착한다. 도시락을 깐다. 일을 시작하고 몇 달 후부터 내가 밥과 반찬을 챙겨왔다. 언니가 싸오는, 아버님의 입맛에 맞게 아주 잘 질게 된 밥은 당최 우리의 입맛에는 맞지 않기 때문.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언니, 그냥 제가 싸올게요. 모두를 위해서…”라고 말한 이후로 우린 더 즐겁게 밥을 먹고 있다. 언닌 수고스럽겠다며 항상 미안하고 고맙다고 하면서도 내가 도시락 통을 먼저 챙기지 않는 날이면 “영은 씨~ 도시락~” 하며 꼭 가방에 넣는 것까지 확인을 하신다.ㅎㅎ 그런데 사실 전혀 수고가 아니다. 그냥 일주일에 최소 세 끼 이상을 같이 먹는 언니와 내가 어떻게 하면 더 즐겁게 밥을 먹고 살까 노력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대신 언니가 가끔 외식으로 밥을 쏜다!! 그것도 밀가루, 고기를 못 먹는 내 입맛에 철저히 맞춰서)
6시 30분, 수업이 시작된다. 월요일은 수학, 과학을 듣고 화요일은 사회, 국어를 듣는다. 정규 교육의 기회가 없다 늦게나마 공부를 시작하신 분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사실 수업 내용은 내 입장에서는 초보적이고 기본적이어 보인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게 대학까지 다닌 정규교육의 참모범학생인 나에게 너무나 재미있다는 거다. 선생님들이 쉽고 재미있게 수업을 하는 덕도 있고 온갖 문제적인 발언과 상황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가령 언니랑 수학공부 하는 게 제일 재미있는데 구구단을 그냥 통째로 외워버린 언니와 하나하나 모든 걸 풀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3 X ( ) = 18, 괄호를 채우시오’ 식의 문제를 몇 줄 풀었을 뿐인데 정글을 헤치고 목적지에 도달한 것 같은 쾌감이 인다. 구구단은 원래 외우는 거 아니냐고? 언니는 정말로 ‘이이는 사, 이삼육’ 이렇게 한글을 외워버렸다. 이게 2 X 2 = 4라는 건 모르는 채…… 무슨 구구단송의 한글가사처럼 말이다@.@ 아, 그런데 잠깐 옆길로 빠지자면 언니는 정말로 가사 외우기 천재다. 조용필 광팬인데 모든 노래의 가사를 다 외운다. 한 곡도 빠짐없이! 45년간 노래한 사람도 대단하지만 그 노래를 다 아는 팬도 참 대단한 것 같다고 매번 생각한다. 그래서 구구단을 할 때마다 욕 나오기 직전까지 가는 언니에게 사람은 모두 각자의 능력이 있다고, 언니의 가사 외우기 실력을 떠올리라고 위로해준다.
10시에 수업이 끝나면 꼭 화장실에 들렀다 집으로 출발한다. 종종 다른 활보들이 성인이 되어서 신변처리를 맡긴다는 게 서로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느낀다는데 난 신기하게 처음부터 이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언니가 너무 자연스럽고 차분하게 하나하나 지시해주기 때문인 걸까. 오히려 나는 이 순간에 내가 활보라는 것을 그 어느 때보다 강렬히 느낀다. 일상의 아주 기본적인 것에서 언니는 날 필요로 하고 자신의 몸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몸을 다루어야 하는 내게 하나씩 차근차근 알려준다. 우리의 관계는 이런 게 아니겠나.
누군가를 정말로 필요로 하는 사람과 그 필요가 어떤 것인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 사람이 건네는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만나는 것!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와선 휠체어와 가방을 정리하고, 고운 화장을 지워드리고 잠옷을 입혀드린다. 할 일 끝이다! 마지막으로 하루 종일 활보한 것을 기계로 결제한다. 화면에 내가 일한 시간과 급여가 뜬다. 기분이 좋다. 돈과 시간을 포함해서 우리는 또 이렇게 하루 종일 많은 것을 나눈 거다. 집에 돌아가는 길은 발걸음도 가볍다. 마치 언니를 만난 것, 언니와 그 하루의 세상을 만난 것이 일으키는 잔잔한 물결 위로 발이 미끄러지는 것 같다. 사실 언니를 통해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이 나의 말로 잘 정리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감히 한 가지 확신한다면, 내 맘 속에 이는 물결로 나는 멈추지 않고 세상을 좀 더, 또 다른 방식으로 만나고 있고 언니는 그 물결로 매일을 살아간다는 거다.
건강한 관계고 소중한 관계다. 월요일은 또 돌아온다. 나는 또 기쁜 맘으로 언니를 맞으러 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