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가을 102호 - 올라!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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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 스페인-!
14. 10. 13 노란들판 해니
일정 : 8/29 ~ 9/10 (10박 12일) |
올해 안에 해외로 여행을 가고 싶었다. 스페인으로 정하고 바쁜 일상 속에 게으름을 부리며 준비를 겨우겨우 해나갔다. 떠나기 두 달 전쯤 여행사를 통해 가격이 저렴한 러시아항공으로 예약했다(독일 루프트한자로 일찍 예약했다면 비슷한 가격으로 비행기 표를 구매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어 좀 아쉬웠다). 이번 계획은 초짜 기획자인 햇이 담당하기로 했다. 시백 왈, 이번 계획을 통해 앞으로 어디를 가든지 자신감을 갖게 될 거라고….
해외 숙소 대행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했는데 우선 저렴한 데를 찾았다. 그러다 보니 지도상에서는 시내와 그리 멀지 않다고 생각한 곳도 실제로 가보니 버스로 25분 거리나 되었고, 창문을 열면 기대했던 바깥 풍경이 아닌 식당 복도만 보이는 호텔도 있었다.
도시별 이동은 스페인 열차 렌페로 예약했다. 고마운(?) 블로거들의 경험담을 참고하며 열심히 예매를 시도했지만 참 어려운 일이었다. 익스플로러보다는 크롬을 좋아하는 스페인 사이트. 다른 나라 인터넷을 거치는 프로그램을 설치하여 겨우 접속에 성공, 출발 전날까지 속수무책으로 예약을 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결제까지 성공한 순간,
기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으앗!” 탄성을 질렀다.
꼭 예약을 해야 오랫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는다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알함브라 궁전, 세비야 대성당도 블로그에서 정보를 얻어 관람표를 예매했다.
여행 전날 밤, 2년 전 신혼여행의 악몽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무조건 일찍 일어나기로 다짐했다(그 당시 짐을 새벽까지 싸고 공항에 너무 늦게 도착, 출발 10분 전에 비행기에 탑승했다. 스튜어디스는 우리에게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고 먼저 발권하는 특혜를 주며 늦었다고 빨리 자신을 따라오라며 혼냈고, 항공사에서 우리 이름을 부르며 탑승을 요청하는 방송까지 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서툴고 대책 없는 느긋한 여행자들이었다). 뼈아픈 경험을 한 탓에 새벽 6시에 기상, 11시에 출발하는 비행기에 무사히 탑승했다.
I ♬ 말라가
러시아 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를 이용, 모스크바를 경유했다. 모스크바 공항 면세점에서 시백은 열심히 술을 촬영했다. 가격을 비교하기 위해서였다나. 그 모습이 재밌었다. 그러나 엉뚱한 이유로 결국 한 병도 사지 못했다는…. 모스크바에서 말라가로 가는 비행기, 기내식으로 제공하는 와인을 한잔했다. 그런데 화장실에 가서 머리 높이만큼 위에 있는 잠금장치를 보지 못하고 아래쪽에 엉뚱한 고리를 거는 실수를 해 문을 잠그지 않았다. 아마도 약간 취기가 돌아 어리바리한 행동을 한 듯 했다. 볼일을 마친 다음 손을 씻고 옷매무새를 만질 때 문을 벌컥 연 나이 지긋한 외국인 남자를 깜짝 놀라게 하고 말았다. 나오자마자 사과를 했는데 그의 당황해 하는 표정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약간의 소동(?)을 일으키며 말라가에 무사히 도착했다.
말라가는 피카소의 고향이라고 한다. 출발 도시를 말라가로 택한 것은 공항이 있고 지중해에서 해수욕을 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말라가 공항에서 입국 절차를 기다리는 도중 20대로 보이는 한국 여성 두 명과 같이 줄을 서게 되었다. 그중 한 명은 한국에서 모스크바로 갈 때 내 뒷자리에 앉았고, 모스크바에서 스페인으로 오는 비행기 안 화장실에서 함께 기다리기도 했던 사람이라 반가웠다. 그녀는 스페인어를 배우기 위해 유학을 왔다며 오늘이 첫날이라고 했다. 그녀의 스페인에서의 첫날에 나도 함께한 기분이라 덩달아 마음이 설레었다. 밤 11시에 도착한 공항에서 우리를 맞아주신 택시 기사는 여성이었다. 신 나는 음악이 흐르는 택시를 멋있게 운전해 호텔 앞에 내려주었다. 트렁크에서 짐을 꺼낼 때 도와주려고 하자 괜찮다고 하며 짐을 번쩍 들어내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시내와 한참 떨어진, 아름다운 분수대와 작은 뜰이 있는 오래된 호텔이었다. 뒤뜰에 있는 작은 오렌지나무들을 보며 어렸을 적 좋아했던 소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밍기뉴를 떠올렸다. 나름 4성급이지만 주변에는 오렌지 가공 공장을 비롯한 공장들이 주로 있고 외진 도롯가에 위치한 탓에 호텔엔 차를 가지고 오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25분 정도 가야 해변이 있는 말라가 시내가 나왔다.
다음 날 말라가 해변에서 해수욕을 했다. 시백은 내내 누운 자세로 눈을 감은 채 물 위에 떠 있었다. 사람들은 편안하고 자유롭게 한낮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일광욕을 하며 독서를 하는 이들도 보였다. 간혹 비키니 상의를 벗은 채 일광욕을 하는 여성들도 있었는데 누구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자유를 만끽하는 듯한 분위기가 부러웠다.
시백이 알아본 전기자전거 대여점-한국인이 운영하는 호스탈과 연계하여 소개를 받았다고 하면 할인도 해줬다-에서 자전거를 빌려 해변을 달렸다. 기분이 상쾌했다. 쿨해 보이는 여성 사장님 말씀대로 정말 멋진 경험이었다. 인도가 넓고 곳곳에 자전거 도로가 있어 많은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돌아오는 버스 안, 나는 몸이 녹초가 되어 헤드뱅잉을 하며 졸았다. 시백은 정거장을 놓칠까 봐 양손에 패드를 올려놓고 열심히 실시간 위치를 안내해주는 지도 어플을 보고 있었다. 호텔이 있는 정거장에 내렸다. 어두운 대로를 걸어오던 중, 저멀리서 불빛이 번쩍거리고 음악이 들렸다. 주변은 다 공장이고 인기척이 전혀 없어서 이상한 생각이들었다. 약간 무섭기도 했지만, 무엇에 홀린 듯 빛과 음악 소리를 따라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뜻밖에도 마을 축제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초등학교 학예회! 아이들이 주인공인 축제였다. 현란한 불빛은 출장 놀이기구들이 내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범퍼카를 비롯한 여러 놀이기구를 타면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한 편에 설치해놓은 무대에서는 아이들이 공연을 하고 어른들은 맥주를 마시며 함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초등학생 또래의 아이들과 좀 더 어린 동생들이 가족과 함께하는 학예회. 아이들이 주인공인 파티였다. 스페인 국민들은 특히 아이들을 많이 사랑 한다는 문구를 책에서 본 적이 있다. 그 마음이 느껴졌고, 동시에 세월호 사건을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주고 자유롭게 삶을 즐기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어른들이었다면… 그렇게 많은 아이가 헛되이 희생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I ♬ 세비야
말라가에서 세비야로 출발하는 열차. 짐칸에 올렸던 가방을 잠깐 내렸다. 짐을 꺼내고 혼자 힘으로 다시 올리려다가 힘에 부쳐서 앉아 있던 시백에게 SOS를 청하는 순간, 일어서는 그의 어깨로 그만 가방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일시에 터져 나온 사람들의 “아이쿠!” 탄식과 함께 작은 웃음소리에 나도 시백도 멋쩍게 웃고 말았다.
세비야에 도착하자 한국과는 또 다른 강력한 햇빛이 맞아주었다. 시에스타 시간대에 도착한 도시는 너무도 조용해서 건물들도 잠든 듯했다. 버스 승차장 위치를 묻자 친절하게 알려준 어느 가족과 잘못 탄 버스에서 만난 한국인, 한국말을 꽤 잘하는 그의 스페인 친구가 기억에 남는다. 3번 버스를 타고서는 기사님께 이 버스가 A3번 버스가 맞느냐며 엉뚱한 질문을 했던 나, 일시에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 민망하고 부끄럽기도 한 상황이었다. 그때 한 스페인 소녀가 다가와 “어디 가고 싶어?” 한국말로 물어 너무 놀랍고 반가웠다.
말라가 해변에서 만면에 웃음을 띠고 물에 둥둥 떠 있었던 시백은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뜨거운 햇볕 아래 한참을 걸어서 도착한 호텔, 더위 먹은 우리에게(혹시 그리워질까 봐 챙겼던) 고추장, 멸치볶음, 참치는 큰 위로가 되었다.
다음 날 아침, ‘보데가 산타크루즈’라는 타파스 음식점에 갔다(* 타파스(tapas)는 식욕을 돋우어 주는 애피타이저의 일종으로서 스페인 요리에서 간식의 일종으로도 먹는다. 올리브나 치즈와 함께 차게 먹거나 오징어 등 해산물과 튀겨서 먹기도 한다. - 출처: 위키백과). 론니플래닛에도 소개된 음식점인데 요리사를 비롯해 서빙하는 사람 모두가 남자였다. 요리사가 음식을 준비하며 맥주를 조금씩 마시는 모습을 봤다.
내가 시금치와 치즈, 튀긴 오징어를 재료로 한 타파스와 함께 ‘크루즈캄포’ 맥주를 주문하자 서빙하던 이가 “Oh! Cruzcampo!” 하며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고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그 웃음만큼이나 맥주가 시원하고 맛있었다. 우리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옆 테이블에서 아이들과 샌드위치를 먹던 독일 가족의 아버지도 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음식을 먹고 나서 가격을 묻자 테이블에 분필로 가격을 적는 모습도 재밌고 따스함을 주었다.
세비야 대성당과 스페인 광장은 아름다웠고 저녁 무렵 플라멩코 박물관에서 본 열정적인 공연은 훌륭했다. 남녀 무용수와 가수, 기타리스트 네 명의 예술가가 단 한 회의 플라멩코 공연을 위해서 온몸을 불태우는 뜨거움과 열정이 느껴졌다. 밤이 되어 숙소로 돌아오던 길. 주차된 차 아래에서 새끼 나비가 울고 있었다. 마트에서 물과 주전부리를 조금 사면서 집에 두고 온 나비들 선물로 줄 간식도 함께 챙겼었다. 새끼 나비에게 간식을 꺼내 주었다.
I ♬ 그라나다
스페인의 버스는 대부분이 저상버스였다. 그라나다에 도착해 주된 대중교통인 버스를 타고 알함브라 궁전 가까이에 있는 베네치아 호스탈로 향했다. 주인 할아버지가 반갑게 맞아주셨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웠던 숙소이다. 창밖으로 오래된 주택과 나무들이 보이고 이 길의 주인인 작은 나비들도 만났다. 시간마다 울리던 성당의 종소리, 해 질 무렵 어스름한 하늘빛, 열린 창으로 들락거리던 시원한 바람. 꿈을 꾸는 듯했다.
그라나다는 안달루시아 지방 중 타파스 문화가 남아 있는 곳이다. 음식점에서 음료수 한 잔을 주문해도 무조건 타파스를 한 접시 준다. 타파스 세 접시면 두 사람의 저녁 식사가 될 정도의 양이다. 가격도 저렴하고 맛이 있어 타파스 문화에 반할 정도였다. 시백이 그 매력에 빠져 타파스 맛집을 검색, 저녁을 먹으러 두 곳의 식당을 찾아가기도 했다. 정작 내가 반한 이유는(스페인의 저녁 식사 시간이 보통 8시 이후이고 우리나라처럼 술을 즐기는 문화라는 점도 있지만) 밤인데도 식당이나 바에 가족이 많았던 점이다. 아이들은 물론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나온 가족도 있었다. 그라나다는 여행자들을 위한 도시였다. 밤늦은 시간에도 거리는 아이스크림 가게와 타파스 음식점, 바에서 나오는 불빛으로 환하고, 사람들로 가득했다.
알함브라 궁전으로 걸어 올라가는 야트막한 산길은 강원도 월정사 전나무길을 생각나게 했다. 우리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는 스페인이었지만 왠지 정겹고 친숙한 마음이었다. 그라나다의 마지막 이슬람왕국인 나스르 왕조가 살았던 궁전 알함브라의 곳곳에 있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양의 벽들이 인상적이었다. 알카자바에 올라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보며 시야가 확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그라나다 투어 버스를 탔을 때는 한국말 음성 가이드가 있어서 반가웠다. 버스를 타고 이슬람교도들의 거주지였고 아직 그 문화가 많이 남아 있는 알바이신 지구로 향했다. 하얀 벽의 아기자기한 집들, 아이들의 얼굴, peace라고 그려진 그래피티도 인상적이었다. 높고 꼬불꼬불한 언덕길을 달려 성니콜라스교회 전망대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과 함께 바라본 알함브라 궁전의 야경이 아름다웠다.
I ♬ 바르셀로나
에어비앤비(airbnb)를 통해 바르셀로나 호아닉역 주변의 아파트를 사흘간 임대했다. 그곳에서 아파트 주인인 ‘라울’을 만났다. 약속 시간을 정하는 과정에서 소통이 원활하게 안 되어 30분 늦게 아파트 입구에 나타난 그가 인사를 나누고 가장 먼저 한 말은 “Don’t worry!” 키가 훤칠하고 잘생긴 정장 차림의 스페인 아저씨 라울은 아파트 이곳저곳을 설명하며 미소와 함께 역시 걱정 말라고 말해주곤 집 열쇠를 맡기고 떠났다. 6층 건물의 맨꼭대기, 테라스가 있는 독립된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사흘간 자유롭게 지낼 수 있다는 것에 마음이 놓였다. 에어비앤비에 예쁜 숙소가 많았지만, 이 아파트를 택했던 이유는 우선 가격대가 적당했다.
주인장 라울(얼굴은 모르지만)의 이름자에 왠지 믿음이 갔다. ^^ 시백이 바랐던 테라스도 있고 사진에서 본 아파트 내부모습에서 벽에 걸려 있던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생각해도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는 건 좀 특이한 이유인 거 같다.
첫날밤 10시 즈음, 밖에서 흥겨운 음악 소리가 크게 들렸다. 도심과 가깝지만 조용하다는 게 큰 장점 이라고 얘기했던 라울이 생각나 웃음이 났다. 호기심에 밖으로 나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니 아르헨티나 거리에서 열린 축제였다. 작은 무대에서 젊은 밴드가 노래하고 남녀노소 자유롭게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시백과 용기를 내어 술을 주문하고 살짝 사람들 사이로 들어갔다. 흥겨운 분위기였다. 음악은 새벽 2시까지 계속되었지만 시끄럽다고 항의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 소박하고 즐거운 축제는 둘째, 셋째 날까지 계속되었다. 축제를 즐기는 스페인 사람들의 일상이 여유로워 보였다.
시백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마음을 빼앗겨 세 시간가량 성당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가우디의 건축 철학이 담겨 있는, 그가 죽는 날까지 설계와 건축에 헌신을 다한 성당의 모습은 신비로웠다. 가우디의 자연과 인간, 신에 대한 사랑이 후세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듯했다(* ‘그는 자연의 모든 것을 존중하며 이해했다. 하늘과 구름, 물과 바람, 나무와 식물, 동물과 곤충, 산과 바위 등 여러 가지를 보며 이를 통해서 건축언어에 접목해 갔다.’ - 출처:http://dakangel77.com.ne.kr/fish.html). 성당 바로 옆에는 당시 노동자들의 아이들이 다녔던 학교가 있었다. 이 학교 역시 성당을 짓기 시작할 무렵 가우디가 설계하고 지었다고 한다. 교육에 대한 그의 고민과 정성이 느껴져 인상 깊었던 공간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날, 오랜 역사를 가진 타파스집 ‘바셀타’에 갔다. 신선한 해산물 타파스와 함께 백포도주를 마셨다. 스페인에서 먹은 음식 중에 가장 맛있었다. 론니플래닛에서 와인이 유명하다는 내용을 봤었기에, 웨이터에게 추천하고 싶은 와인으로 하나 주문했다. 그가 한 잔이 아닌 한 병을 가져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마개를 따서 한 잔씩 따라주는 바람에 살짝 놀랐다. 시백과 함께 원 없이 낮술을 마셨다. 마지막 남은 두 잔을 옆 테이블에 앉은 브라질 커플에게 권했다. 그들은 유럽이 두 번째이고 둘 다 직업이 의사라고 했다. 유럽 물가가 비싸서 여행을 자주 하기 힘들다는 남자에게 시백이 브라질 월드컵을 얘기하자 자기는 월드컵을 여는 것이 싫다고 했다. 문득 브라질 월드컵 경기장을 무리하게 짓는 과정에서 죽은 노동자들, 평창 동계 올림픽을 준비하며 단 사흘간의 활강 스키 경기를 위해 500년 된 가리왕산 원시림을 벌목하려 하는 우리나라의 안타까운 상황이 떠올랐다. 아마 그도 나와 같은 생각에서 싫다고 말한 게 아니었을까.
낮술을 마시고 바르셀로나 해변에 가서 시백은 수영을 하고 나는 모래사장에 누워 코를 골며 낮잠을 잤다. 해변에서 지하철역으로 걸어오는 길에 오래된 아파트 단지를 지나게 되었다. 노란색 건물에 빽빽하게 들어찬 집들. 집집마다 베란다엔 빨래가 걸려 있었다. 한국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의 삶을 잠깐 엿본 듯했다. 얕은 바람에 빨래들이 흩날리는 광경이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을 떠올리게 해 가슴이 시렸다.
한국과 닮은, 그리운 스페인. 5년 안에 다시 가보리라 다짐한다. 짧지만 뜨겁고 자유로웠던 여행! 지친 일상에 잔잔한 에너지가 되어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여행 동안 시백과 햇의 몫을 책임져 준 공장 사람들, 우리 집 나비들을 보살펴 준 동생 이니, 공장에 사는 코쿠와 쿠리, 아가 나비들의 밥을 열심히 챙겨준 ㅇㅇ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