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보면 지금 유언장을 쓰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나는 해병대를 제대하고 잘 놀다가, 1983년 토함산에서 행글라이딩 하다가 떨어져 척수 손상을 입고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집구석에 5년간 처박혀 있을 때 모든 삶의 희망을 잃고 죽고 싶어 수십 번 유언장이라는 것을 쓴 경험이 있습니다. 장애 때문에 살아갈 희망도 용기도 없었던 그때 쓴 유언장 또는 낙서는 원망이었습니다. 누군가 나를 조금이나마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매달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그냥 절망이었고 어둠이었습니다.
오늘(2014. 8. 29) 이 밤에 쓰는 유언장은 그때와 너무나 다른 유언장입니다. 나는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잘 살고 싶습니다.
잘 사는 삶은 혼자만의 삶이 아니라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그리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 그래서 정말 거지같은 세상에서 인간의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꿈을 꾸며 투쟁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왜? 유언장이냐? 문득 그리고 갑자기 떠나는 동지들, 친구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죽음은 어떤 때는 누구에게나 너무나 준비 없이 다가오더군요. 그리고 적어도 내가 오늘 기억하며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나중에 노망이 들어 변심할까봐)
사람은 죽습니다. 유한한 삶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 아름다움을 나는 충분히 누리며 살고 싶습니다. 내가 그 아름다움과 행복을 충분히 누리는 것은 여전히, 그리고 아직도 장애인과 함께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투쟁하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고, 함께하는 동지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떠나는 이별의 마음으로 ‘감사함을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그래도 장례식을 치르지 않습니까? 그러면 저랑 함께했던 사람은 양심이 있으면 잠깐이라도 들러서 내 영정 사진에 인사하고, 잠깐 눈물을 흘리면서 저의 명복을 빌겠지요. 그리고 조의금을 주시겠지요.
부탁합니다. 그 조의금이 얼마일지 모르겠지만, 장례비용으로 실비용만 쓰고 나머지는 투쟁하는 곳에 주시면 좋겠습니다. 내가 그리고 함께 투쟁했던 동지들이 있는 공간은 너무나 많지만, 정말 마음을 다해 투쟁하려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투쟁 비용으로 사용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화장을 하겠지요. 그 뼛가루는 그냥 뿌려주시기 바랍니다. 고리타분하고 관료적인 사람들 몰래, 그냥 한밤중에 (내가 삶과 투쟁을 알 때 모든 것이었던) 노들장애인야학이 공간 마련을 위해 천막을 쳤던 마로니에공원 그 즈음에 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내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 바쁜 가운데 1년에 한 번 와서 추모식 같은 것 하지 말고, 마로니에공원에서 잘 놀다가 그냥 여기에 내 뼛가루가 있다고 말해주면, 나도 그 사람을 기억하며 행복해하겠습니다.
이제 유언장은 그만 쓰고, 노들장애인야학 교실에서 나팔 불고 있는 준호를 꼬여서 술 한잔하겠습니다. 빨리 귀가하고 싶은데 (2시간 전에 장콜을 예약했지만) 장애인콜택시 콜센터에 목소리가 너무 익은 임수빈이라는 안내원(그 분은 언제나 밤에만 장콜 안내를 하시는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해요)이 오늘이 금요일이라 콜이 폭주를 해서 아직도 32명이나 대기하고 있답니다. 우와… 옛날에는 그렇게 장애인이 많이 안 돌아다녔는데, 무슨 노무 장애인들이 밤늦게 돌아다니는 거야… 좀 일찍 가시라… 지금이 벌써 밤 11시가 되어가요.
만국의 장애인들이여, (비록 예산 없다고 지랄 대는 사람이 많아도) 집구석에 처박혀 있지 말고, 수용시설에서 처박혀 질질 짜지 말고, 단결하여 세상을 괴롭혀주시기 바랍니다.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고 싶다고’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장애인콜택시를 기다리며 2014.8.29. 밤 11시40분. 박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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