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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판핫이슈 


그 어떤 죽음도 1/n 될 수 없다                                   노들야학 민구




큰 일 이 다


요즘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슝슝’이 아니다. ‘쌔애앵 쌔애앵’지나간다. 보통 아침을 깨우는 알람소리에 힘겹게 몸을 뒤척인다. 요즘 부쩍 살이 쪄서 그런지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시간을 확인하곤 이내 곧 잠이 든다. 두 번째 알람소리가 요란하다. 이미 예상한 일이다. 핸드폰을 쳐다보지도 않고 한 손으로 여유롭게 알람을 끈 후 다시 잠이 든다. 세 번째 알람이 울린다. 그제야 부스스 몸을 일으킨다. 옆에선 아내가 쌕쌕 거리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마치 죽은 듯, 영원히 안 일어날 것처럼 숙면 중이시다. 님 쫌 짱인 듯.(엄지 척!)


힘들게 일어나 하늘 한번 쓱 쳐다보고 볕이 좋으면 세탁기를 돌린다. 나름 남향인 집인데 볕이 귀하다. 그래서 날씨 좋은 날이면, 난 제일 먼저 빨래가 떠오른다. 결혼 후 가장 크게 달라진 나의 행동습관이다. 빨래를 하고 어젯밤 먹은 야식의 잔재를 처리하고 도시락을 싼다. 그때쯤이면 아내도 슬금슬금 일어나고 우리는 사이좋게 화장실을 공유하며 출근준비를 한다. 109번 버스를 타고 마로니에 공원에 내리면 언제나 그렇듯 할머니 한 분과 인사를 나누고 사무실로 향한다. 지금부터 시작! 컴퓨터 화면 바라보다 회의하고 전화하고 사람 만나고 간간이 집회 나가면 하루가 후딱이다. 다시 109번 버스를 탄다. 원래 내려야 하는 미아초 앞에서 안내리고 한 정거장 전에 내린다. 나름 운동을 하기 위한 꼼수다. 땀 삐질 흘리며 집까지 걸어들어 온다. 밤이 깊어진다. 스무 번 남짓 야식을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먹는다. 내가 한 운동은 뭔가 싶다. 이건 마치 피자 치킨 와구와구 먹고 양심상 다이어트콜라 마시는 격이다. 씻고 잠이 든다.




--  하루가 너무 빨리 간다. 큰일이다.


나만 그런 것 같진 않다. 대한민국에 사는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하루는 24시간이 아닌 것 같다. 난, 체감시간… 10시간?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 잊지 말아야 할 일들도 잊고 살아간다. 티비 뉴스를 보다보면 어김없이 황당한, 안타까운, 가슴 쓰린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아이고, 이를 어째, 어떡하니…” 입 밖으로 감탄사 콤보를 내뱉다보면 어느덧 다른 뉴스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그렇게 내 마음 속에서도 흘러 나간다.


세상이라는 빠르게 돌아가는 톱니바퀴에 깔려 신음하다 구구절절한 사연만을 남긴 채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절규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아니, 듣지 않는다. 고속도로 위 대형 전광판에 쓰인 오늘의 ‘사망자 수’처럼 이들의 죽음은 나에게 그저 숫자로 남을 뿐이다.




--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온 민중을 집단공황상태로 몰아넣은 세월호의 침몰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KBS 보도국장이라는 사람이 참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한다. “세월호 사고는 300명이 한꺼번에 죽어서 많아 보이지만, 연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건 아니다.” 이 발언을 듣고 몹시 화가 났다. 이게 사람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가 싶었다. 사람의 목숨을 갖고 어떻게 저울질 할 수 있단 말인가.

분노한 유가족은 전남 진도에서 서울까지 경찰의 제지를 뚫고 상경했다. 그리고 KBS 앞 길바닥에 주저앉아 사장의 공개사과와 보도국장의 파면을 요구했지만 그 어떤 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청와대로 가려 했지만 길은 이미 경찰에 의해 철통 수비되고 있었다.



죽은 아이의 영정사진을 들고 경찰에 항의하는 유가족의 절규와 울음소리를 들으며
나 또한 비통한 심정이 된다.



어떻게 KBS 보도국장이라는 사람이 저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일까 싶지만, 차분히 생각해 보면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느낀다. 매일 반복되는 안타까운 죽음 앞에 나 역시 그들의 죽음을 한낱 숫자로 생각할 때가 많지 않았던가. 하나의 죽음이 숫자 ‘1’로 표현될 때 그 안에 있는 수천수만의 사연은 생략된다.




--  그 어떤 죽음도 1/n 될 수 없다.


이번 지진 재해의 사망자는 1만 명, 어쩌면 2만 명을 넘어 버릴지도 모른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도, 표제가 되는 것은 사망자와 행방불명자의 수뿐이다. 그렇지만, 이 지진 재해를 ‘2만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생각하면, 피해자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자, 8만 명 이상이 죽은 중국의 쓰촨성 대지진과 비교하면 좋았던가, 그런 식으로 숫자로밖에생각할 수 없고 그것은 사망자에게 모독이다.

사람의 생명은, 2만분의 1이나 8만분의 1도 아니다. 그게 아니라 거기에는 ‘사람이 죽은 사건이 2만 건 있었다’라는 것이다. 본래 ‘슬픔’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개인적인 것이니까.

재해지역의 인터뷰를 봐도, 모두 먼저 입에서 나오는 말은 “아내가…”, “아이가…”일 것이다.
한 개인에게 있어서는, 다른 사람이 몇 만 명 죽는 것보다, 자신의 아이나 가족이 한 명 죽는 것이 훨씬 괴롭고, 깊은 상처가 된다.

잔인한 말로,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살아 있으면, 10만 명 죽어도 100만 명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진 재해 피해의 진짜 ‘중량감’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2만 가지의 죽음에 각각 몸을 찢긴 마음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 슬픔을 지금도 품고 있으니까.


- 기타노 타케시 감독,
일본잡지 <주간 포스트> 2011년 4월 1일자 칼럼 ‘21세기 독 이야기 특별편’ 중에서

 



그렇다. 수많은 생명의 죽음을 하나의 비극적 사건으로 퉁 칠 수 없다. 현재까지 293명의 뼈아픈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사건 역시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사람이 죽은 사건이 293건이나 한꺼번에 저질러진 대참사이다. 희생자 293명의 얼굴을 기억하고 그들과의 추억을 간직한 가족과 지인이 받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슬픔까지 포함한다면, 아니 남한 땅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민중이 받은 충격과 집단 공황상태까지 포함 한다면, 이것은 절대 단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그렇다. 수많은 생명의 죽음을 하나의 비극적 사건으로 퉁 칠 수 없다. 현재까지 293명의 뼈아픈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사건 역시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사람이 죽은 사건이 293건이나 한꺼번에 저질러진 대참사이다. 희생자 293명의 얼굴을 기억하고 그들과의 추억을 간직한 가족과 지인이 받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슬픔까지 포함한다면, 아니 남한 땅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민중이 받은 충격과 집단 공황상태까지 포함 한다면, 이것은 절대 단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  대한민국은 자살공화국


아래의 표는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가 밝힌 지난 한 달간 가난, 장애 등으로 자살했거나 시도한 사건을 정리한 표이다.


날자

장소

내 용 

2.25 

제주 

회사에서 해고된 70대 남성이 파출소에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청 상담 중 자살 시도

 2.25

 강원 영월

변변치 않은 직업에 생활고를 겪어오다 최근 개업한 가게마저 어려워진 30대 모텔에서 투신자살 

 2.26

 서울 송파

팔을 다쳐 일하지 못해 생계를 꾸리지 못하던 중년 여성이 집주인에게 집세와 공과금 봉투, 유서를 남긴 뒤 두 딸과 자살 

 2.26

강원 삼척 

취업을 준비하였으나 여의치 않던 30대 모텔에서 자살 

 2.27

 강원 삼척

신병을 비관한 50대 여성 자택에서 자살 

 3.1

 서울 강서

암으로 택시 일을 하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린 50대 부부 동반 자살 

3.2 

경기 동두천 

생활고에 시달린 30대 여성이 어린 아들을 데리고 투신 

3.3 

경기 광주 

40대 남성 지적장애 있는 딸, 아들 데리고 자택에서 자살 

 3.4

 서울 성북

건설 일용직 노동자로 일해 온 70대 노인 자살 

 3.4

 전북 익산

남편과 별거해 두 아이와 함께 살던 30대 여성 경제난으로 아이들 데리고 자살 시도 

 3.9

 서울 강남

90대 노모를 모시고 살던 60대 남성 자녀가 취업해 수급비가 끊겨 자살 

 3. 9

 서울 강남

연예인 우봉식 씨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며 생계 난에 시달려 자살 

 3.12

 광주 서구

생활고를 비관한 40대 여성 자살 시도 

 3.13

 광주 북구

발달장애 아동 키우던 30대 부부 유서 남긴 뒤 아이 데리고 자살 

 3.20

경남 창원 

수급비 삭감 당한 40대 남성 분신자살 시도 

  


이들의 죽음에 얽힌 사연을 단 한두 줄로 정리해 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명확한 건 가난한 이들의 죽음의 행렬이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듯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OECD Health Data 2014’ 분석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2년 기준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했다. 지난 2003년 이후 10년 연속 1위다. 그리고 2012년 통계청자료에 따르면, 10대부터 30대까지의 한국인 사망원인 1위는 암이나 심장질환, 교통사고도 아닌, 바로 자살이다. 자살은 40대와 50대에서도 사망원인 2위이다. 연간으로는 1만 4천 160명, 하루에 38.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나라가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자살 공화국’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다.
어떻게 하면 고장 난 수도꼭지를 잠글 수 있을까.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벼랑 끝으로 내달리는 폭주 기관차 같은 대한민국이 멈출 수 있을지 모르겠다.



명확한 건, 지금의 대한민국은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비장애인 중심의 경쟁과 속도, 효율과 성장을 중요시 하는 사회가 아니라 장애인도 함께 살아 갈 수 있는 평등과 인권, 분배와 자유의 가치가 우선시 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노들이 원하는 세상은 장애인이 잘 사는 세상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세상이다. 그래서 노들은 노들의 방식대로 투쟁하고 공부하며 살아간다. 더 많은 사람이 노들처럼 살아갔으면 좋겠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 별 거 없다.



•32년 만에 야학을 통해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수빈 씨가 처음으로 저상버스 탔을 때의 설렘을 더 많은 장애인이 느꼈으면 좋겠다.


•돈 벌기 위해 취직한 공장에서 골프채로 맞아가며 일하던 태일이형이 탈출하다시피 도망쳐 나오지 않도록 장애인에게도 안정적인 일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횡단보도를 건너려던 남옥누나의 휠체어가 보도블록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앞니가 몽땅 부러지지 않도록 안전한 길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야학에서 경남누나가 짜장면 시켜 먹고 거스름돈 잘 받았는지 세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국현이형처럼 혼자 사는 집에 불이 나 녹아내린 벽지에 온 몸 화상을 입고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활동보조인이 필요한 장애인에게는 활동보조 서비스가 제공됐으면 좋겠다.


•야학에서 무상급식이 이루어져 배 곯아가며 공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차별 받지 않고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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