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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특집

지옥행 420급행열차를 타라

  

 

 서한영교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1981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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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81년 4월 21일

 

  1981년 "4월 20일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맞는 '장애자의 날', 유엔이 세계 장애자의 해로 정한 올해, 우리나라도 장애자복지법을 새로 제정키로하고 여러 가지 기념사업을 벌이는 등 그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재활과 자립을 돕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매일경제, 1981년 4월 20일)  "사랑과 의지로 부자유를 녹인다. 첫 장애자의 날." (조선일보, 1981년 4월 21일) 에 "정부는 심신장애자의 불우함을 위로하고 사회가 그들을 따뜻하게 보호해주자는 뜻에서 처음으로 장애자의 날을 마련, 기념식을 갖고 각종 행사도 열었다" (동아일보, 1981년 4월 20일) 아픔과 불우함을 위로하고, 사랑과 따뜻함으로 장애인을 보호하자는 1981년 장애자의 날은 그렇게 시작되어 올해 44회를 맞았다. 

 

 

<2002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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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바람, 36호, 2002년 5월호

 

  이에 반해 2002년 4월 20일 시작된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은 올해 23회를 맞았다. “매년 4월 20일은 정부와 관변 단체에서 각종 장애인 관련 행사를 진행해 왔다. 정부는 이 행사를 통하여 장애인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사회구조를 숨기고 이에 대한 면죄부를 받아왔다. 아울러 관변단체도 사랑과 봉사라는 이름으로 각종 행사를 진행함으로써 장애인의 억압과 차별을 희석화 시켜 왔다. 그러나 4월 20일 행사가 매년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에 대한 구조적인 폭력과 차별 그리고 억압은 계속 심화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인 노력도 더디게만 진행되고 있다. 『'2002 4·20 장애인차별철폐투쟁 공동기획단』은 매년 4월 20일, 장애인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사회구조를 희석화시키기 위하여 정부와 관변단체에서 실시하는 각종 행사를 거부하고, 이날을 한국사회가 구조적으로 행사하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철폐하기 위한 투쟁의 날로 선언”(노들바람, 36호, 2002년 5월호) 했다. 

 

  진보적 장애운동 진영은 2002년 최옥란 열사가 터무니없는 최저생계비의 현실화를 요구하며 투쟁하다 유서를 남기고 돌아가신 기일인 3월 26일을 기점으로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아래 420공투단)을 꾸려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지나 5월 1일 노동절까지 이어지는 약 6주간의 420투쟁을 진행한다. 특히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매년 1박 2일에 걸쳐 진행되는 이날은 전국 각지에서 진보적 장애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이 모여 대규모 시위를 벌이며, “장애인에게 권리를! 차별은 이제그만! 동정은 때려 쳐! 혐오는 쓰레기통에! 이윤보다 생명을!”을 다함께 외치는 날이다. 

 

 

<2024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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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 나무 아래로 침낭에 들어가 있는 활동가들

 

  -새벽 2시 19분

  우리는 마로니에 공원 곳곳에 깔린 침낭 안에 있다. 발도 씻지 못하고 누웠다. 잠옷으로 갈아입지 못하고 누웠다. 오늘은 이곳 침낭 속에서 잠 들어야 한다. 목, 어깨, 허리, 발목이 무겁다. 냄새가 난다. 420의 냄새. “양치질은 하셨어요?” 묻지 않는다. 내 양 옆으로 노들야학 학생분들이 누웠다. “이 새벽에 마로니에 나무 아래서 선생님과 함께 잠들 수 있어서 좋아요.” 학생분들이 웃었다. 함께 웃는 사람이 있어서 참 좋다, 생각하며 잘 자요, 인사하고 각자의 고요에 들었다. 

 

  -새벽 3시 10분: 권리중심 노동자 해고복직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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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을 마치고, 이수미 씨가 “권리중심노동자 해고자 복직투쟁”이라고 적힌 머리띠를 이마에 맸다. 사진 비마이너

 

  잠에서 깼다. 시간을 확인한다. 잠이 오지 않는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양 네 마리 세다보니 빡빡 머리 하나 빡빡 머리 둘 빡빡 머리 셋 빡빡 머리 넷이 떠오른다. 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본대회 1부 마지막에 노들야학 학생-노동자 네 분이 머리를 빡빡 밀었다. 바리깡을 든 노들야학 교사들의 손이 덜덜 떨렸다. 빡빡 깎인 머리 둘레로 “권리중심노동자 해고자 복직투쟁” 글씨가 선명한 검은 띠를 두르고 행진 첫머리로 나선 빡빡머리들이 떠오른다.  

 

  이들이 삭발을 한 이유는 서울시에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사업’(이하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을 없애며,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 400명과 전담인력 105명을 해고했기 때문이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2020년 서울시가 최중증·탈시설 장애인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시작한 사업이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기능·실적 중심의 장애인 일자리에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권고에 맞춰 ‘장애인 권리생산’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일자리였다. 이 사업으로 중증장애인들은 ‘장애인 권익옹호’,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 ‘문화예술’ 등의 분야에서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DP)’의 내용과 목적을 시민사회에 알리는 일을 하게 됐다.  

 

  서울시에서 시작된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이후 전국으로 확대돼 경기·강원·전북·경남 등 지자체들이 잇따라 도입했다. 올해만 해도 서울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예산을 확대하거나 신규 도입했다. 경기도는 지난해 대비 40% 증액된 88억8000만원을 편성했고, 전라북도는 지난해 대비 2배 이상 증가된 12억5000만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부산은 올해 4억7000만원의 예산을 처음으로 편성했다. 다른 지자체들은 사업을 확대 중인데 유독 서울시만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을 폐지한 것이다. 권리를 이야기하며 말 안듣는 장애인들을 콕 집어 "벌함으로써 몇몇 사이에 공포를 퍼뜨려야 한다"(장 보댕)는 근대 처벌의 정치를 되풀이했다. 찍어누르기에 맞서 “권리중심노동자 해고자 복직투쟁” 검은 머리띠가 감싸고 있는 빡빡머리들을 생각하며 깜박 잠에 들었다. 

 

  -새벽 3시 51분: 탈시설지원조례폐지 

영교5.jpg 420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촉구대회. 사진: 전장연 라이브 영상 캡쳐

 

  잠에서 깼다. 시간을 확인한다. 잠이 오지 않는다. 양 한 마리 두 마리는 세지 않기로 한다.  행진을 마치고 혜화로 돌아와 열린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2부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촉구대회>. 탈시설을 준비하고 계신 어떤 분의 발언이 떠오른다. 그의 발언을 마무리하던 구호는 “나는 나를 사랑하고 싶다”였다. 

 

  일곱 살 때 장애인거주시설에 입소하여 스물여섯 살 현재까지 시설에 살고 계신 분이었다. 보건복지부가 선정한 전국 최우수장애인거주시설로 꼽힌 시설에서 살았다고 했다. 시설에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 평생 골라주는 옷을 입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뺏으며, 대신 말하고 대신 선택해주는 그곳에서는 스스로를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아무도 묻지 않았다고 했다. “힘들어요? 괜찮아요? 지금 기분이 어때요? 묻지 않았습니다. 힘들 때는 혼자 숨어서 울고, 혼자 숨어서 머리카락을 뜯었습니다. 아무도 묻지 않았으니까요. 저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피플(피플퍼스트)에 와서 어떤 동료가 저에게 처음으로 괜찮아요? 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펑펑 울었습니다. 뭐든지 힘들면 안 해도 돼요, 라고 했습니다. 그런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괜찮아요? 라는 말을 26년만에 처음 들었다는 그는, 자립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걱정이 된다고 했다. "서울시와 오세훈 시장은 탈시설을 조금 더 어렵게 만든다고 합니다. 의사가 하는 테스트를 통과하고, 시설 종사자가 자립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그 동안 자립 연습을 5년이나 하고, 그리고 또 시험을 다소 통과해야 자립을 시켜준다고 합니다.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1년마다 잘 살고 있는지 검사해서 잘 못 살고 있으면 시설에 다시 입소하게 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서울시의회는 탈시설지원조례 폐지를 예고했고, 결국 폐지했다. '스스로를 사랑할 권리'를 폐지했다. 탈시설을 준비하고 있는 노들야학 학생분의 얼굴이 떠오른다. 벌써 몇 해째 탈시설을 하겠다고 강한 의지를 드러내던 그의 얼굴과 탈시설자립지원조례 폐지가 동시에 떠오른다. 잠이 오지 않는다. 

 

  -새벽 4시 15분: 연행과 퇴거,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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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역 3번 출구 엘리베이터 옆 알림판에 손글씨로 쓴 스티커 피켓이 붙어있다

 

  어렴풋 잠에 들었었나 보다. 4월 마로니에 공원은 춥다. 허리가 욱신거린다. 잠에서 깨는 것도 꿈의 일부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문득, 혜화역 3번 출구 근처 엘리베이터에 붙어있던 문장 하나가 또 스쳐지나간다. "지옥에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세요"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서울교통공사 보안요원들이 탑승을 막았다. 이유는 “시위할 것 같아서” 였다. 2023년부터 서울시교통공사와 경찰은 전장연 시위에 강경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세 번의 경고 방송’과 ‘자진 퇴거 권유’ 등을 큰 소리로 고지한 뒤, 연행과 강제퇴거하는 방식이 고정패턴처럼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예 지하철 안으로 들어가는 것 조차 금지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서울역까지 지하철을 타야 했던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은 미리 예매해 놓은 기차티켓을 계속해서 흔들어보았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지방으로 가는 기차 시간이 점차 다가오고 있어서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가야 한다고 호소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지하철을 타야한다고 소리쳤지만, 엘리베이터 문을 막고 선 문지기들은 비켜서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시위할 것 같아서" 였다. 그곳, 엘리베이터 앞에는 한탄, 탄식, 분노, 헛웃음, 어이없음, 고함과 같은 소리들이 진을 쳤다. “집에 가고 싶어요”라는 말을 막고 있는 그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리는 대치 중이었다. 그야말로 아우성으로 꽉 들어찬 지옥이었다. 그것은 저 멀리 신학적 공간이 아니라 현실의 다른 이름이었다. 포위된 공간,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공간, 조여드는 공간, 이곳의 ‘지옥’은 비유도 은유도 아니다. 이곳의 고통에는 은유따위는 필요 없었다. 지옥은 현실세계의 한 부분이다. 세계의 일부분으로서 지옥은 전개되었다.  

 

  몇몇은 가로막힌 엘리베이터 이용을 포기하고, 휠체어에서 내려, 지하철 계단으로 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 칸 한 칸 엉덩이를 찧어가며 내려가는 한 칸 한 칸. 지옥에서도 낙담하지 않고, 성큼성큼 지옥 속으로 기어 내려가는 한칸 한칸. 어쩌자고 한칸 한칸. 한 칸씩 한 칸씩 내려갔다. 15초면 내려가는 계단을 15분도 넘게 엉덩이를 찧으며 계단을 기어내려갔다. 집에 가야했다. 그 옆으로 여섯명의 활동가들이 휠체어를 들었다. 나도 함께 들었다. 전동휠체어는 처음 들어봤다. 이렇게 무거운지 몰랐다. 허리가 뻐근하다. 잠이 오지 않는다. 다시 열받는다. 

 

  -새벽 4시 17분 

  가방 안에 있던 레베카 솔닛의 <길잃기 안내서>라는 책을 꺼내들어 아무 곳이나 펼쳤다. “그런데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은 곧 고통과 모험과 변화를 겪음으로써 더 나아질 사람으로 선택된다는 뜻, 달리 말해 처벌의 길을 밟음으로써 변화된 자신이라는 보상을 받을 사람으로 선택된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지옥행이 예전과는 다르게 보였다. 그리고 정말 그렇다면, 정의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계산하기 어렵다는 뜻일 터였다. (...) 그러니 지옥으로 가라. 다만 일단 들어가서는 쉬지 말고 움직여서, 반대편으로 나오라.” (39~40쪽) 밑줄을 그었다.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은 어쩌면, 우리가 함께 420지옥행 급행열차를 함께 타는 날, 일지도 모르겠다. 

 

  -새벽 5시 37분 

  언제 다시 잠에 들었는지 모르게 잠이 들었나보다. 책을 덮었다. 오늘은 도대체 몇 번씩 잠에서 깨야 하는 걸까, 생각한다. 더 이상 잠에 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기로 한다. 마로니에 공원은 뒤척이던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사람들의 시간이 시작된다. 일단, 양치질을 하자.  

 

  -아침 8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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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대입구역에서 다이인 행동을 펼치고 있다. 사진: 전장연 라이브 영상 캡쳐 

 

  첫 번째, 다이-인(die-in) 행동을 펼쳤다. 혜화역 엘리베이터는 탑승하지 못하게 방패를 들고 지키고 있어서, 버스를 타고 한성대입구역으로 갔다.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이른 아침이었다. 싸이렌이 울리고, 우리는 역사 안에서 다같이 드러누웠다. “퇴거 불응 시 역사 밖으로 강제 퇴거하겠습니다.” 잠이 쏟아졌다. 역사 안은 따뜻했다. 그러니까, 역사. 역사 안. 1분만 늦어도 큰일 나는 “지하철의 중요한 가치인 정시성”(김석호 서울교통공사 영업본부장)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역사 안. “정시성을 생명으로 하는 대중교통 지하철을 84번이나 운행 지연시킨 것은 엄청난 중범죄”(오세훈)가 되어버리는 역사 안. “시간은 돈이다”(밴저민 프랭클린)라는 화폐화된 시간에 의해 9억 9십만 원이라는 손해배상 소송액으로 계산되는 역사 안. 18세기 말, 방적공장 노동자들의 시간표 짜기에서부터 시작되어, 19세기 말 철도가 본격적으로 사용되면서 자본주의 신앙이 되어버린 ‘정시성’의 역사. 기차역마다 시계가 달리고, 지역사회의 중심이 되어버린 철도의 역사 안. 출/퇴근, 출발/도착, 등/하교와 같은 표준화된 시간표를 완성한 근대적 시간의 역사. 화폐와 결탁한 시간이 ‘정시성’을 기준으로 ‘좀 더 정확하게’ 시계를 굴리던 역사의 안쪽. 시간과 결탁한 속도가 ‘효율성’을 기준으로 ‘좀 더 빨리’ 세계를 가속한 역사 안. ‘정시성’은 ‘정상-시간’의 기준이자 규범이 되어간 한성대입구역사 안에서 사지를 들린 채 역사 밖으로 강제 퇴거당했다.  

 

  -아침 8시 18분 

  역사 바깥으로, 쫓겨났다. 역사의 바깥. 그러니까, 조국의 근대화라는 정상-시간에 맞출 수 없는 존재자들을 강제 퇴거시킨 역사 밖. ‘정상-시간’에 셈해지지 않는 장애인, 홈리스, 빈민, 탈가정 청소년… 을 시설, 복지원, 보호작업장, 재활원, 요양원…으로 퇴거시킨 역사 밖. 학교 밖으로, 지역사회 밖으로 퇴거당한 채 방구석, 벽장, 침묵 속에서 살아있는 시체로 기거해야 했던 역사 밖. 그러니까, 역사 밖. 정시성의 전통을 계승하는 한성대입구역, 역사 밖.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못하게 서울교통공사가 방패를 든 채 막고 있는 역사 밖. ‘역사 밖’에서 장애인들은 ‘역사 안’으로 진입하지 못한 채 대치 ‘중’이었다. 역사 안에서 다이-인을 벌이던 사람들은 강제 퇴거당해 ‘역사 밖으로’ 하나, 둘 쌓여갔다. ‘역사 밖’으로 쫓겨난 사람들은 다시 ‘역사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며 대치 '중' 이었다. 그러니까, 역사 밖에서, 역사 안에 맞서 대치 ‘중’인 역사 앞. 안도 바깥도 아닌 대치 ‘중’인 역사 앞. 역사(History)의 바깥에서 퇴거당한 소수적 역사(histories)가 역사 앞에서 말하고 있는 ‘중’이었다.멱살 잡힌 말. 가슴을 터트려 하는 말. 이해할 수 없는 말. 목을 짓누르는 말. 멍드는 말. 빼앗기지 않을 말. 들려 나가는 말. 다치는 말. 발 밟히는 말. 시민들 좀 생각하라는 말. 상당 시간 지연된 말. 22년간 지연된 말. 재빠르게 움직일 수 없는 말. 끌려가는 말. 휠체어에 내려 계단을 기어가는 말. 속도로는 도저히 겨룰 수 없는 말. 태워주지 않는 말. 역사가 될 수 없는 말. 역사 밖도 아니고, 역사 안도 아닌, 역사 앞에서 퇴거에 불응하며 대치 ‘중’인 사람들은 말하는 ‘중’이었다. 끊임없이 경합 ‘중’인 역사의 외부에서, 비장애중심주의와 대결 ‘중’에 있었다. 정상-시간을 바탕으로 매끈한 역사의 배치를 구불구불하게 재배치하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끊임없이 경합하는 과정 ‘중’에 있는 역사 앞에서, 투쟁은 영원히 계속되어야 한다는 혁명의 운명을 배우는 ‘중’이었다. 역사 ‘앞’에서 비켜서지 않는, 자긍심을 배우는 '중'이었다.  

 

  -아침 10시 30분 

  마로니에 공원에서 마무리 집회가 시작되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2024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집회는 비와 함께 마무리되었다. 1박 2일의 시간이 한없이 길게만 느껴진다. 온 몸이 무겁다. 잠을 좀 자야하는데, 장애인인권영화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화제에서 감독과의 대화 사회를 봐야 한다.  

 

  2003년부터 매년 봄마다 축제로 열리던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올해 사상 최초로 무산 위기를 맞았다. 서울시에서 올해부터 갑작스럽게 예산 지원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21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도 시민들의 후원으로 영화제를 기필코 성사시켰다. 이대로 마냥 피곤해 할 수 없다. 어떻게 펼쳐지게 된 영화제인데, 마지막까지 남은 힘을(하아아암) 다해서 (하아아아암) 사회자 대본을 펼쳐 (하아아암) 질문지를 수정(하아아암) 한다. "감독님, 예술과 투쟁은 어떻게 이어져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녁 10시 30분 

  양말도 벗지 못하고, 집 현관에 쓰러져 잠에 들었다. 

 

 

<2024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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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입구역 교차로에서 420공투단 해단식이 펼쳐지고 있다. 사진: 전장연 라이브 영상 캡쳐

 

  420투쟁의 진정한 마지막 날은 420공투단 해단식을 펼치는 노동절이다. 몇 만명씩 모이는 대규모 집회와 행진이 펼쳐진다. 우리는 서울시청역 2번 출구에 모였다. 이곳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본 집회가 끝나고 행진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대개 행진 대오의 가장 끄트머리에 자리했다. 노동절 행진대오의 가장 끝, 노동하는 몸들의 가장 끝, '노동'할 수 있는 몸/마음이라고 상상되지 않는 최중증장애인-노동자들이 처해있는 자리를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자리였다. 노동자들 뒤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고, 그 뒤에는 이주노동자들이 있고, 그리고 그들 뒤에는 불법체류자가 있고, 그 뒤 노동자의 가장 끄트머리, 바로 장애인이다. 가장 끄트머리에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그 자리에 알맞게 있다는 이 불온한 기분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다. 

 

  행진의 마지막 자리에 있다보면, 비장애인들의 보행법과 속도와는 달리 일관적이지 않고, 전형적이지 않은 우리는 행진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경찰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빨리 좀 가세요. 앞으로 좀 붙으세요." 끊임없이 정상 속도에 대한 압력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고립되고, 때로는 싸움이 벌어지기도 하고, 우리의 속도를 존중해달라고 겨루기도 해야 한다. 가장 마지막, 끄트머리의 자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결국, 행진 대오를 따라잡지 못한 채 을지로입구역 교차로에서 경찰에 둘러 쌓여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해단식을 가졌다. 을지로입구역 교차로를 둘러싼 초고층빌딩들 사이로, 교차하는 얼굴들을 본다. 장애인-빈민-해고노동자-여성-퀴어-동물-홈리스의 얼굴과 표정들이 을지로입구역 교차로에서 교차한다. 무수히 고유한 소수적 다양성들이 교차하는 교차로에서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해단식을 가졌다. 이 장소가 우리에게 알맞다는 이 불온한 느낌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우리 투쟁은 오늘 끝일까요? 자본이, 경찰이 막아설지라도, 서울교통공사가 뭐라 할지라도, 윤석열 정부와 오세훈 서울시장이이 뭐라 할지라도, 계속 나아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구호 외치며 마무리 하겠습니다.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시대로!'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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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2024년 가을 139호 - [420 특집] 부당한 연행, 그리고 ‘감방’에서 보낸 이틀 / 서기현 2024년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특집 부당한 연행, 그리고 ‘감방’에서 보낸 이틀       서기현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소장             2024년 4월 20일, 나는 장... file
1144 2024년 가을 139호 - [420 특집]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의날 투쟁 참여하면서 느낀 점 / 남대일 2024년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특집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의날 투쟁 참여하면서 느낀 점       남대일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동료지원팀 활동가           올해... file
1143 2024년 가을 139호 - [420 특집] 제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박종필’상 관객상 수상 / 편집부 2024년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특집 제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박종필’상 관객상 수상        편집부             제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가 4월18일부... file
1142 2024년 가을 139호 - [420 특집] 나의 420_노들야학 ‘자립의 시’ 수업 학생 글 / 엄세현, 김민정 2024년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특집 나의 420  노들야학 ‘자립의 시’ 수업 학생 글         투쟁의 스위치 -엄세현 (불수레반)     올해 두 번째 참가했다   항상... file
1141 2024년 가을 139호 - 두고봐라 오세훈아, 결국엔 탈시설이 이긴다_서울시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에 부쳐 / 민푸름 두고봐라 오세훈아, 결국엔 탈시설이 이긴다  서울시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에 부쳐      민푸름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6월 18일, ‘서울시의회 보... file
1140 2024년 가을 139호 - 포체투지에 참여하는 이유 / 재범 포체투지에 참여하는 이유      재범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권익옹호팀 활동가           지난 6월25일(화) 2년 전 박원순 시장 때 우리의 투쟁으로 만들어 낸 탈... file
1139 2024년 가을 139호 - 와글와글 5.18 광주 역사 기행 / 박유리 와글와글 5.18 광주 역사 기행       기행 참여 김홍기, 박유리, 박찬욱, 이수경, 조상지, 허종양 인터뷰 참여 김홍기, 박유리, 박찬욱, 이수경, 조상지, 이하늘 ... file
1138 2024년 가을 139호 - 광주 이야기 / 김홍기 광주 이야기       김홍기 노들야학 불수레반 학생.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노동자           오늘은 광주에 가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출발해야해서 준비를 빨리빨... file
1137 2024년 가을 139호 - 사진으로 보는 2024 제25회 서울퀴어퍼레이드 / 편집부 사진으로 보는 2024 제25회 서울퀴어퍼레이드       편집부           2024년 6월 1일, 서울 남대문로 및 우정국로 일대에서 열린 제25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 노... file
1136 2024년 가을 139호 - 같이 불러요_‘합창과 연대’ 수업과 ‘세월호 기억식’ 이야기 / 이예인 같이 불러요   ‘합창과 연대’ 수업과 ‘세월호 기억식’ 이야기      이예인 월, 화, 수, 목, 금 센터판에서 일해요. 금요일 저녁에는 노들야학에서 합창 수업을 해... file
1135 2024년 가을 139호 - 2024 여기 닿은 노래 전시 리뷰_여전히 천천히, 즐겁게, 함께 / 고권금 2024 여기 닿은 노래 전시 리뷰  여전히 천천히, 즐겁게, 함께      고권금 몸과 장소가 맺고있는 관계를 탐구하는 &lt;버티는몸 프로젝트&gt;를 2020년부터 진행해오고... file
1134 2024년 가을 139호 - [노들야학 학생글방] 행복은 다음과 같은 순간이다 * 장애경 / 행복은 즐거움이다 * 김홍기 / 나는 라디오다 * 엄세현 / 힙합 안녕 * 박규형 노들야학 학생글방         행복은 다음과 같은 순간이다 -장애경 (청솔3반)     행복은 다음과 같은 순간이다.  이를테면 시설에서 나와 처음으로 옷을 샀을 때....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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