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가을 139호 - [420 특집] 그날 혜화역 / 김은호
2024년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특집
그날 혜화역
김은호
2024-1학기 노들야학 교사 인준에 도전하였으나 장렬히 실패하고만 사람. 2학기를 맞아 재도전해보겠다고 생각하며 글을 쓰고 있음. 본업은 공익변호사로 여성인권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고, 장애학과 페미니즘이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음
경험하지 않은 일을 이해하는 것은 늘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숱하게 보고 들은 사건에 대해서는 으레 내가 그것을 경험한 양 알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지하철 투쟁은 나한테 그런 일 중 하나였다. 현장에 와본 적 없지만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
420 전야, 420 공동투쟁단 문화제에 참여하러 혜화에 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저 노들과 문화제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버스를 타고 혜화역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그때부터 엘리베이터 탑승을 두고 언쟁이 벌어진 것을 봤고, ‘왜 또 저러고 있을까?’ 싶어 의아했다. 역을 지나 마로니에 공원에 짐을 내려놓았는데, 대추쌤이 혜화역에 충돌이 있다면서 같이 갈 수 있냐고 물었다. ‘아까 본 그거군’이라 생각하며 짐을 챙겨 혜화역으로 향했다. (단순히 그게 아니었다는 건 플랫폼에 내려가서 알게 되었다.)
혜화역의 양 방향 엘리베이터는 모두 서울교통공사의 통제로 막혀있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는 공사 직원들은 하나의 거대한 벽 같았다. 방패를 들고 선 외형도 외형이지만, 몇 번이나 행동의 이유를 물어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엘리베이터를 포기하고 계단 출입구로 향하자, 엘리베이터를 탈 수 없어 휠체어를 두고 엉덩이로 계단을 내려가는 박길연 대표님이 있었다. 박 대표님의 휠체어는 네다섯의 활동가에 의해 역 안으로 내려졌고, 그제야 박 대표님은 휠체어를 타고 플랫폼으로 갈 수 있었다.
나 역시 플랫폼으로 내려갔고, 그때부터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연행 대응을 했다. 그래도 나름 집회, 접견, 영장 대응도 해봤고 ‘이런 일을 처음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지하철 투쟁 현장 대응은 상상 이상이었다. (아니 근데, 그날은 딱히 ‘지하철 투쟁’도 아니지 않았나? 그냥 지하철을 타면 다 투쟁이 되어버리는 건지)
이미 한 명이 연행된 상황에서 박길연 대표님의 연행을 저지하기 위해 옆에 붙어 싸우는 동안 ‘엉망진창이구나..’하는 생각만 들었다. 경찰은 공사가 체포한 현행범을 넘겨받는다고 하면서, 공사에게 마이크를 건네며 ‘체포 사유를 말해달라’고 했고(아무리 현행범 체포를 누구나 할 수 있다지만 좀 웃기지 않나? 일단 지하철을 타려는 장애인을 공사가 낚아채면 정확한 사유를 몰라도 충분히 현행범이 될 수 있다는 판단으로 데려가는 것인지…), 그러면서 항의하는 사람들을 하나둘씩 플랫폼 위로 끌어냈는데, 조력하러 내려온 변호사까지 끌어내기도 했다. 이후 그분이 겨우 다시 내려왔지만,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경찰이 이렇게 무시할 수 있는지.
다시 내려온 변호사님과 함께 기계적인 체포사유 고지를 납득할 수 없다는 항의를 계속하자, 경찰은 우리에게 사유를 설명한답시고 채증 영상을 보여주기만 했다. 영상을 살핀 우리가 ‘이 영상의 어디가 문제라는 거냐’고 묻자 대답을 하지 못한 채 영상을 돌려보더니, 나중엔 수사과장까지 와서 영상을 다시 보겠다고 했다. 수 차례 영상을 돌려봐야 할 정도로 사유가 보이지 않으면 그냥 연행을 하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죽어도 연행을 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결국 사유가 명확하지 않다는 걸 경찰도 인정해서 박 대표님이 연행되진 않았지만 그날 혜화역에서는 또 다른 사람이 연행되었고, 엘리베이터의 문은 밤새 장애인에게만 닫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계속 발에 땅이 붙어있지 않은 것 같은 느낌으로 걸어다녔다. 방금까지의 혜화역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연행을 저지하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 같은 무력감을 한참동안 느꼈다. 그제서야 내가 지하철 투쟁, 아니 장애인 투쟁을 알고 있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가 있었고, 나는 그걸 내 현실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부끄럽지만 솔직히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 번의 투쟁을 함께하는 걸로 모든 걸 알 수는 없고 혜화에 가지 않는 수많은 날을 아무 감각 없이 보내기도 한다. 아마 앞으로도 알지 못하는 세계가 남아있겠지. 가끔은 그게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이렇게 한두번씩 계속하다 보면 적어도 상상이 불가능한 세계의 범위는 줄여나갈 수 있겠지, 싶기도 하다. 세계의 확장은 정확히 이해하고 연대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지 않을까. 부족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노들의 2학기를 같이 보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