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가을 139호 - 광주 이야기 / 김홍기
광주 이야기
김홍기
노들야학 불수레반 학생.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노동자
오늘은 광주에 가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출발해야해서 준비를 빨리빨리 하느라 바빴다. 장콜이 빨리 안와서 지하철타러 가려고 했는데 그 때 콜이 왔다. 그래서 콜을 탔다. 그런데 연신내까지 갔는데 앞에 차가 너무 많이 밀려있었다. 그래서 옆쪽으로 빠져서 가자고 말을 해서 기사님이 옆으로 빠졌다. 그런데 거기도 차가 많았다. 그래서 다시 연신내쪽으로 와서 장콜에서 내렸다. 그리고 3호선 지하철을 타고 종로3가역에 갔다. 엘리베이터 1호선 방향으로 빨리 탔다. 용산역 지나갈 때 탁영희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다. "홍기형 언제 와요?" 가는데 5분 걸린다고 얘기를 했다. 그래서 기차를 타러 갔는데 엘레베이터가 빨리 안 왔다. 겨우겨우 승강장에 도착했는데 2분전에 기차가 떠나있었다. 그래서 박찬욱 선생님이 표를 바꾸려고 했다. 그런데 표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묶여있어서 우리 것만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열심히 이야기해서 간신히 오후 1시 20분에 출발하는 표로 바꿀 수 있었다.
그렇게 광주에 도착하니 어느덧 시간은 2시 20분이 되어있었다. 광주송정역 안에서 전국에서 모인 동지들과 지하철 선전전 시위를 같이 했다. 광주 경찰은 서울 경찰과 달리 우리가 시위를 할 때 방패를 들고 막거나 하지 않았다. 그리고 광주 지하철에서는 지하철 직원들이 미리 장애인들을 배려해서 카드를 찍어주기도 했다. 덕분에 편하게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장애인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다같이 탈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선전전도 했는데 시민들도 별말없이 받아들였다. 광주의 시민의식이 높은 것 같다. 서울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리고 이어서 다같이 지하철을 타고 5.18과 관련된 장소인 금남로 4가에 내려서 행진을 했다. 사람들이 많이 왔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온 장애인들이 장애인차별철폐를 위한 발언도 했다. 우리 장애인들이 당하는 차별과 같은 현실을 알리고자 하는 발언이었다.
발언이 끝나고 5.18민주화운동을 기리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풍물공연도 있었다. 행진이 끝나니 저녁 6시였다. 서울로 돌아갈 사람들은 돌아갔고, 세 명의 선생님들과 나, 그리고 상지는 광주에서 하루 더 자고 여수로 놀러가기로 했다. 5.18 전야제에도 끝까지 참여해서 여러가지 공연들도 재밌게 구경했다. 다음날 여수로 이동하려고 했는데 전주콜이 안 됐다. 하루 전날 예약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결국 여수로 갈 수 없게 되어서 여수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표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5.18 민주광장(처음으로 사람들이 많이 죽은 장소)에 있는 245빌딩 10층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많이 죽은 사진들을 봤다. 벽에 총알자국이 박힌 것도 봤다. 건물 밖에서 헬기를 가지고 군인들이 총을 쏜 자국이었다. 시민들이 총을 맞아서 죽었다고 했다. 임산부들도 죽고, 학생들도 죽었다. 그리고 수많은 탱크가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고 정말 마음이 아팠다.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 군인이 시민들에게 총을 쏠 수 있었을까. 군인들도 똑같이 우리나라 사람인데. 같은 나라 사람을 총을 쏜다는 건 정말 말도 안된다. 최근에 5.18에 참여했던 군인 한명이 5.18희생자들에게 사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말단 군인들도 윗사람들이 시켜서 억지로 했던 것 같았다. 정말 비극적인 일이다.
청각장애인이 5.18 민주화운동의 첫 희생자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27살이었다고 한다. 말을 못해서 군인들이 때려죽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리고 연극도 봤다. 그 연극은 관객도 같이 체험할 수 있는 연극이었다. 보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군인들이 광주를 통제해서 식량이 차단됐는데 주민들이 서로 도와주고 연대하며 주먹밥을 만들어 먹는 것도 보았다. 당시 광주는 전화도 끊기고 외부와의 연락과 소식이 모두 끊긴 상태였다. 그래서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은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전두환의 명령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죽었다.
이어 망월동 5.18 민주화묘지에도 갔다. 거기서 민주화 열사들에게 참배도 했다. 묘지가 정말 컸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증거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