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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보다 미정 언니

 4월 검정고시 이야기

 

 

 이예인

월, 화, 수, 목, 금 센터판에서 일해요. 금요일 저녁에는 노들야학에서 합창 수업을 해요.

 

 

 

 

  올해 1학기가 시작될 무렵 미정 언니를 처음 만났어요. 검정고시가 언니와 저를 만나게 했어요. 3월부터 시험이 있는 4월까지. 매주 화요일 유리빌딩 3층으로 국어, 과학이 우리를 불러냈어요.

 

  검정고시 보는 미정 언니 옆에는 대필자가 있어요. 대필자는 언니 옆에서 문제와 보기를 소리 내 읽어요. 언니가 답을 말해주면 마킹하고요. 한 달간 저의 지원에는 언니 대필자 되기 연습도 포함돼 있었던 거 같아요. 시험에서처럼 40분을 재서 국어, 과학 문제를 읽었어요. 언니가 고른 답에 동그라미 쳤어요. 그렇게 읽다가 과학 문제에서 모르는 단위를 만나 놀라기도 했어요. 찾아보니 소리에 대한 것이고 ‘헤르츠’라고 읽더라고요. 다 풀고 나면 채점하고, 틀린 문제를 같이 봤어요.

 

  언니와의 검정고시는 교육과정 일부를 기억나게 했어요. 국어는 더 그랬어요. 소리 내서 읽으니, 지문이 무지 길게 느껴졌어요. 특히 소설이요. 과학은 헤르츠처럼 어려운 말이 진짜 많았어요. 그래서 문제에 나온 단어를 보기에서 고르는 연습을 많이 했어요. 헷갈리면 1번이나 4번으로 찍는 게 좋다는 얘기도 나눴어요. 도저히 모르겠는 건 그냥 그렇대요, 하고 어물쩍 넘기기도 했어요.

 

  저마다 다르겠지만 검정고시 준비하기에 5주는 짧은 시간이었네요. 일하면서 하루도 빼먹지 않고, 3.26 전국장애인대회도 다녀오느라 언니가 힘들었을 거 같아요. 집회에서 언니를 찾아 인사하러 갈 때 많이 반가웠지만요.

 

  저는 공부를 좋아하지 않아요. 이유는 몰라도 해야 할 거 같아서 억지로 했던 적이 있는데, 세상에는 막 행복하게 공부하는 사람도 있대요.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어요. 한 자리에 못 앉아있고, 딴짓을 많이 해요. 언니하고도 검정고시 공부 일찍 마치고 밖에 나간 날이 재밌었어요. 그날은 밖에서 과학 수업 하는 날이랬어요. 선생님이랑 학생분들이랑 맥주 마시면서 시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맥주 조금 나눠 마시면서 바람 쐬니 시원하더라고요.

 

  공부보다는 미정 언니가 좋아요. 요새 우리는 1차 시험을 마치고 도덕을 공부하고 있어요. 도덕에는 당연한 거 같아 보여도 헷갈리는 말이 많더라고요. 화요일이면 퇴근해 유리빌딩 가는 길이 좋아요. 들다방에서 언니들하고 인사하고. 밥 많이 먹고 나서 3층에 내려가는 게 좋아요. 모르고 살아도 괜찮을 물질 만능주의, 시베리아 기단, 오호츠크해 기단 뭐 이런 단어를 언니랑 외우는 게 좋아요. 정답 찾을 때 문제지 뚫어져라 보는 언니도 좋아요. 헷갈렸던 답이 틀려서 안타까워할 때도 미안하지만 좋고요.

 

  언니는 내가 말을 못 알아들으면 셀 수도 없이 “아니” 아니라고 말해줘요. 그러다 책상에 손가락으로 단어를 써줘요. 언니 말을 더 들어서 앞으로 책상에 글자를 좀 덜 쓰게 할게요. 시험 준비가 아니라도 우리 자주 만나요. 검정고시 얼른 붙어서 공부하는 시간은 짧게, 집회에서는 길게 만나요. 시험을 만든 이상한 세상과도, 공부와도 싸워요. 이미정 님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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