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여름 101호 - [노들아 안녕] 김선아
|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사무국장으로 노들에 발을 들인 김선아예요. 나이는 많고 정신연령은 가르치는 일 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정도ㅎㅎㅎ 그런 제가 신임교사라니… 아니 이젠 정교사죠. 흐~ ‘노들’ 은 지인들을 통해 있단 거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한번도 와보지 못했던 공간이었죠. 전장야협 사무국장이니 당연히 교사를 해야한다는 교장샘과 전임자 금철샘(지금은 비마이너에서 하기자로 활동하는)의 꾐에빠져 덥석 한다고는 했죠. 전장야협 업무를 익히느라 10월 중순부터 노들을 왔다 갔다 했어요. 그로부터 2~3개월이 흘러 12월이 다 되도록 참관수업은커녕 야학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 지도 모르고 있었어요. 조금은 불안했어요. 할 수 있을까? 괜히 한다고 한 건 아닐까? 장애인 운동에대해서도 아니 장애인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누굴 가르친단 걸까? 그러다 12월에서 1월 사이에 진행된 연구수업 동안 집중적으로 참관수업 및 과정을 열심히 이수했죠. |
그때 수업을 참관하면서는 아차 싶더라구여. 고민은 더 깊어졌구여… 왜냐하면 선생님들이 너무 수업을 잘하시는 거예요. 전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말을 듣고 필요를 이해하는 것조차가 힘든데 말이죠. 고백하자면 전 여기 오기 전엔 ‘노들’이라는 이름과 장판의 대표 ‘박경석’ 교장샘의 이름 석 자 알고 있는 게 지식의 전부였죠. 장애인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는 문외한. 그게 제 모습이었어요. 차별에 저항하는 곳이라면 어디나 일해보고 싶다라는 맘을 가지고 모르는 건 많지만 그저 열심히 하자라고만 생각했어요. 그전엔 학원 강사(초등, 중등 수학강사)로 밥벌이를 하고 있었기에 가르치는 일 하나는 자신 있었어요. 그 외 업무적인 것은 기계치, 컴치에 나이 많아 힘도 부족, 활동가로서 미숙함투성이네요. 하지만 ‘그냥 돈벌이’ 말고 ‘활동’을 꼭 하고 싶었어요. 그런 제게 이 노들과 노들샘들은 일로도 마음으로도 도움과 힘을 주시는 분들이었어요. 덕분에 처 음에 든 걱정에 비해 일을 차차 해나갈 수 있게 되었어요. 장애운동을 하시는 분들이라 그렇구나 생각했어요. 이분들과, 노들과 함께 오래 오래 활동하고 싶다라는 맘이 들더군요. 지난 비마이너 창간 4주년 행사할 때, 노들야학 학생 준수 씨가 썼다는 ‘살아남아서 더 잘하고 싶습니다’라는 문구는 그렇게 제 책상 앞에 다짐으로 붙어 있어요. 노들에 온 지 6~7개월이 지난 시간들 속에서 이곳은 제게 일하 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어요. 제 수업은 국어 2반. 선심, 용호, 수빈, 유리, 명선. 청솔 1, 2반이 섞였죠~ 시작할 땐, 저도 사회적으로 부족하고 신체적으론 약간의 장애를 지니고 있 어 장애인 학생들과 다를 바 없으니 노력하면 된다였어요. 학생들은 노력하 고 이해해야하는 대상이었죠. 지금 제게 학생들은 ‘그냥’ 친숙해요~ㅎㅎㅎ 수업에선, 아직 배울 점이 많고, 학생들의 얘기를 못 알아들어서 학생들을 힘들게 할 때도 있지만 가르치기보다 배운다는 말을 어느 곳보다도 실감하 게 되는 공간인 것 같아요. 보다 학생의 욕구에 맞는 질 좋은 수업도 해야 하고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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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생각하고 느끼는 야학 ‘노들’을 얘기했네요. 야학 신임교사 아니 이제 정교사인 저를 소개해야 하는데 그만큼 저를 소개하기보다 제가 어떻게 노 들에 녹아드는가를 소개하는 게 더 낫다 싶게 저 혼자로는 너무 부족하네요. 잘할 자신, 정말 없어요. ㅠㅠ 하지만 여러분이 함께해주신다면 노들을 아 는,노들과 함께하는 분들, 상근·비상근 야학선생님들 모두와 학생분들이 도와주시면 “살아남아서 더 잘하고 싶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노들에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