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자료실

조회 수 87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제목 인권아 학교 가자 - 노들야학 은전

 

   K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참새떼처럼 재잘대던 아이들이 멈칫한다. 와, 장애인이다! 담임선생님이 뒷목을잡는다. 그러나 그녀 역시 K를 보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이들에게도 선생님에게도 K는 낯설다. 

   그건 K 역시 마찬가지다. 8살, 취학통지서를 받아들고 엄마는 K를 업고 학교에 찾아갔다. 혼자 다닐 수 없는 아이는 받을 수 없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 엄마가 말했다. 동생 입학할 때 함께 보내주마. 그때가 다가오자 이번에는 동네 사람들이 엄마를 나무랐다. 동생까지 학교 다니기 곤란하게 만들면 어떻게 해. 입학은기약 없이 미뤄졌다. K는 무엇보다 심심했다. TV를 보다 지루하면 동네를 돌아다녔다. 빈 놀이터가 모두 K의것이었지만 하나도 신나지 않았다. 학교에 간 친구들이 돌아오기만 손꼽아 기다렸다.



꼬마들 소리만 들려도 달아나던 그아이


   긴 사춘기가 시작되었을 즈음, K는 멀리서 가방 멘 꼬마들이 몰려오는 소리만 들려도 방향을 바꾸어 달아났다. 엄마, 저 형은 왜 저래? 그 악의 없는 손가락질에도 마음이 훅 베이던 시절, 알 수 없는 적의를 누르느라 고통스러웠다. K는 꼬마들이 싫었다. 지금, 마흔 줄에 들어선 K가 10살 꼬마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2008년 노들장애인야학은 초·중·고등학교를 찾아가는 장애인 인권교육 사업을 시작했다. 그해 초 ‘산’에서 ‘평지’로 내려온 야학이 야심차게 기획한 첫 번째 프로젝트였다. 야학은 15년 동안 정립회관에 더부살이로 얹혀 지냈다. 회관은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면서도 아차산에 자리잡고 있어서 드나들기 어려운 곳이었다.그럼에도 동네에서 밀려난 장애인들은 그 높은 곳까지 꾸역꾸역 잘도 올라왔다. 2007년 야학이 정립회관에서 쫓겨나게 되었을 때, 교육청은 야학을 지원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30년 전 자신들이 보낸 취학통지서를 휴지 조각으로 만들면서도 그들은 미안함을 몰랐다.

   더 이상 밀려날 곳도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었던 사람들은 벼랑 끝에서 회관의 바짓가랑이를 붙드는 대신종로 한복판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우리는 ‘종로 100평’을 요구했다.

   ‘산’이 아니라 ‘평지’에서, ‘변두리’가 아니라 ‘도심의 한가운데’서 교육받을 권리. 15년을 공짜로 얹혀 지내다 쫓겨난 신세들치고는 그 요구가 발칙했다. 고작 40명의 중증장애인들을 위해 ‘그 많은’ 국민 세금을 달라는 것이 가당키나 하냐는 듯 교육청이 코웃음을 쳤다. 그 지당하신 경제관념 덕에 수많은 K들이 학교와 동네에서 밀려나 눈부신 성장의 시간을 놓쳤다. 우리는 묻고 싶었다. 장학관님께서 다닌 초등학교는 평당 얼마였는지. 그렇다면 ‘비싼 땅’에는 학교가 없는지. 왜 어떤 이에게는 물을 필요조차 없는 질문에 누군가는 평생을걸고 답을 해야 하는지. 80일간의 농성 끝에 기어이 우리는 대학로의 100평 교실을 ‘쟁취’했다.


   이제 이곳에서 버티고 살아남아야 했다. 호시탐탐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밀어내는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려면 먼저 이곳의 토양이 바뀌어야 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변화해야 하는 곳, K들을 추방했던 최초의 그곳, 학교로 가자. 장애인 인권교육 사업은 그렇게 기획되었다.



인권강사 k 만들기 - 인권강사 수업 사진



    K를 교단에 세우기 위한 속성 코스에 돌입했다. 대학교수가 법조문을 해설하고 베테랑 인권강사가 아이들을 사로잡는 비법을 전수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K의 것이 될 수 없었다. 가슴 뛰는 혁명을 노래하기에는 그의 목소리가 너무 작았고, 수십 명의 천둥벌거숭이들을 들었다 놨다 하기에는 그의 팔이 너무 얌전했다. 무엇보다 K에게는 활동보조 서비스도 충분하지 않았고, 아직은 글을 읽는 것조차 버거웠다. 강의 준비는 물론이고당일 아침 활동보조와 이동까지 함께할 사람이 필요했다. 야학 교사인 내가 K의 짝이 되었다. 1시간의 인권교육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K의 인생 전체가 필요했다. 우리는 오직 K만을 위한 강의안을 만들었다.


   처음 중학교로 인권교육을 나가게 되었을 때, 우리는 전날부터 숙식을 함께하며 연습했다. 글을 빨리 읽을수 없는 K는 커닝 실력이 부족했으므로 대사를 통째로 외워야 했다. 나는 밤새 그의 스파링 파트너가 되었고 동이 틀 무렵에는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K의 활동보조를 했다. 봉고차 가득 중증장애인 강사들을 태워 용역처럼 ‘출동’하는 그 피곤했던 아침에는 이 사업이 이렇게 오래, 번창하게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여러분, 공부하기 힘들지요?”

아동의 ‘놀 권리’로 내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동들은 잠시 들어주는 시늉을 하다가 이내 찧고 까불며 권리 실천에 들어간다. 놀 권리가 금세 나의 목소리를 잠식한다. 그러다 K가 입을 떼는 순간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반응’을 한다. 이 교실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장면이 아이들의 눈과 귀를 붙든다. 잘 들리지 않는 말을 들으려고 귀를 갖다 대고, 놓친 이야기의 빈틈을 채우려고 미간을 찌푸리고 눈동자를 굴린다. 아이들의 오감이 활짝 열린 이 틈을 타서


   나는 ‘장애인이라서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 같은 멋있는 말로 뒤통수를 쳐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선 K가 내 뒤통수를 더 자주 친다. 자기 차례인데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천장만 바라보거나, 간신히 입을 뗀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져 영영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 예상에 없던 질문을 받고는 땀을뻘뻘 흘리며 늘어놓는 대답이 줄줄이 반인권적일 때, 나는 밤샘 노동의 본전 생각이 난다. K가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했지만 기억력은 비상하게 뛰어나고, 차별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지만 인권의식만은 기가 막히게 균형잡힌, 그런 사람이면 좋았으련만. K는 그저 범상하다. 내가 그러하듯이.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는 이 생고생을 몇 년간 사서 했다. 그것은 이 인권교육의 중요한 목표가 차별받은장애인 당사자를 교육자의 위치에 세우는 것 자체에 있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나에게 수많은 기회가 주어졌고, 그것들을 넘느라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응원하고 기다려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한 걸음 내딛고 두걸음 머뭇거리면서도 여기까지 왔다. K가 자신을 밀어낸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의 어깨가 조금 떨리고 있어서 좋다. 어깨에 진 짐의 무게만큼 K의 삶은 땅속으로 뿌리박을 것이다. 어떤 뿌리도 처음부터 강하지 않았다. 조금씩 내려가면서 단단해지고 굵어질 것이다. 삶은 더 이상 유예될 수 없다.



사회적 약자, 주변인이라는 상징



   익숙한 사고의 회로를 거꾸로 돌리고 결속의 방식을 달리하는 것만으로도 ‘할 수 없는’ 것들이 ‘할 수 있게’되고, ‘비정상’의 것들이 ‘정상’이 된다. 약자를 배려하고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에게 자선을 베푸는 일은 익숙하다. 그러나 진정으로 함께 살기 위해서는 그 관계를 깨야 한다. 약자에게 주어야 할 것은 권력이고, 주변인에게 필요한 것은 중심의 자리, 자기 울음을 우는 주체의 자리다. 오래전 밀려나고 사라진 것들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는 조합은 낯설다. 그것을 기획하는 건 상상력이지만 현실로 만드는 것은 용기 있는 실천이다.


   낯선 조합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말보다 더 크게 말하는’ 인권의 힘이다. 서울 대학로 한복판의 장애인 야학은 아름답다. 그리고 중증장애를 가진 인권강사 K는 힘이 세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33 2014여름 101호 - 420장애인차별철폐 투쟁의 날을 맞이하여 송국현 학생을 기억하며 420장애인차별철폐 투쟁의 날을 맞이하여 송국현 학생을 기억하며 노들야학 준호 마주했던 사람들의 죽음에 괴롭고 괴로운 마음을 이끌고 투쟁을 이어온 사람들이... file
32 2014여름 101호 - 지금 국현 씨를 생각하는 모든 분들께 지금 국현 씨를 생각하는 모든 분들께 노들야학 정민 ----------------------------------------------------------------------------- 아, 어떻게 우리가 이 작... file
31 2014여름 101호 - 송국현 아저씨 장례위원 이야기 장애등급제 · 부양의무제 폐지 농성 672일차,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2014년 420을 보냅니다 송국현 아저씨 장례위원 이야기 노들야학 명희 오늘같이 바람이 불어... file
30 2014여름 101호 - [장판 핫이슈] 그 어떤 죽음도 1/n 될 수 없다 장판핫이슈 그 어떤 죽음도 1/n 될 수 없다 노들야학 민구 큰 일 이 다 요즘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슝슝’이 아니다. ‘쌔애앵 쌔애앵’지나간다. ...
29 2014여름 101호 - 25만원 노역일기 25만원 노역일기 노들야학 경석 투쟁하면 할수록 쌓이는…… 벌금. 그것이 쌓이고 쌓여, 또 다시 지명수배가 떨어진 박 경석 교장샘. 수배자로 살던 어느 날, 갑자... file
28 2014여름 101호 - 노들야학도 버스 타고 모꼬지 갑시다! 노들야학도 버스 타고 모꼬지 갑시다! 노들야학 도현 - 장기 휴직 교사 그러니까, 비밀이 하나 있다. 노들 사람들은 나를 퇴임 교사라 알고 있지만, 사실 본인은 ... file
27 2014여름 101호 - 또 하나의 기우제가 시작됐다 또 하나의 기우제가 시작됐다 장애인도 고속버스 타고 싶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하라 노들야학 유미 대중교통이라는 말이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다. 시내버... file
26 2014여름 101호 - [형님 한 말씀] 어지러운 난국 형님 한 말씀 어지러운 난국 「 어지러눈 난국 」 - 노들 명학 - 요즘에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 가고 있다. 사람의 생명은 소중한 데 이 소중한 생명들이 이... file
25 2014여름 101호 - 노들 새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 노들새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 두둥~! 새 책이 나왔습니다. 노들의 스무 해 이야기를 담은 노들바람 100호 홍은전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 file
24 2014여름 101호 - [노들아 안녕] 노들센터 아라 코삼 조아라입니다! 위 사진은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때 서강대를 산책하면서 찍은 사진인데요. 벚꽃에 눈이 팔린 저를 위해 활보팀과 광호가 나무를 흔들어서 연... file
23 2014여름 101호 - [노들아 안녕] 김선아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사무국장으로 노들에 발을 들인 김선아예요. 나이는 많고 정신연령은 가르치는 일 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정도ㅎㅎㅎ 그런 제가 신임교사라... file
22 2014여름 101호 - [교단일기] 교육과 탈교육, 그 경계에서 '노란들판'을 꿈꾸다 내가 처음 노들을 알게 된 건 EBS 지식채널을 보고 나서부터이다. 휠체어를 끌고 작업장에 가서 낮에는 일을 하시고, 밤에는 야학에서 공부를 하시던 한 남성분.... file
21 2014여름 101호 - [나쁜행복을 말하다] 진심이 아닌 가짜 글 이사 후 3주 후. in 2013. 3. Webzine 하루 종일 정리하다 쉬다 했는데 어느 날 하루는 책꽂이가 너무 지저분해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책은 그냥 꽂아놓고 종이... file
20 2014여름 101호 - [성북구 개척시대] 센터 판의 시작 그 마지막 이야기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2번의 질긴 인연으로 팔자에도 없는 소장 노릇을 하는 나에게 아주 많이 엄청난 임무가 주어진다. 서울시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지원사업의... file
19 2014여름 101호 - [뽀글뽀글 활보상담소] 딜레마 ‘딜레마에 빠졌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면 그 사람의 현재 상황이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아니 더 나아가 굉장히 곤란한 상황일 것이라고 쉽게 추측... file
18 2014여름 101호 - [자립생활을 알려주마] 긴급:[명사] 긴요하고 급함 한 포털 검색창에 ‘긴급’이라고 치면 긴급이 들어간 몇 개의 단어가 나열된다. 긴급지원, 긴급출동, 긴급피난, 긴급복지지원제도 등등… 매우 중요하며 시각을 다... file
17 2014여름 101호 - [나는 활동보조인 입니다] 이경민 님 안녕하세요.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서기현 소장님의 활동보조를 맡고 있는 이경민입니다. 소장님 곁에서 지내온 지 벌써 3개월이 지났습니다. 어리숙한 손길로 ... file
16 2014여름 101호 - 제1회 분홍배문학상 공모전 광화문 농성 2주년.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36.5도의 온도를 가진 사람이 만나 365일을 만들었고 그 날들이 벌써 두 해가 되었습니다. 장... file
15 2014여름 101호 - 날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2014 인권연극제 안녕하세요? 인권연극제 사무국장 배은지입니다.  노들바람에 실릴 인권연극제를 소개하는 원고 청탁을 받고서야 저는 올해 1월부터 급히 달려오던 발걸음을 ... file
» 2014여름 101호 - 인권아, 학교가자 K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참새떼처럼 재잘대던 아이들이 멈칫한다. 와, 장애인이다! 담임선생님이 뒷목을잡는다. 그러나 그녀 역시 K를 보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 fil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49 50 51 52 53 54 55 56 57 58 Next
/ 58
© k2s0o1d5e0s8i1g5n. ALL RIGHTS RESERVED.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