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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_노들야학 30주년 백일장

[심사위원장의 말]

'심사'를 '숙고'하기

 

 

 이지훈

노들야학에서 글을 함께 쓰고 삶을 다시 짓는 사람

 

 

 

 

  2023년 7월 25일 화요일 오후 2시였습니다. 어떤 엄청난 사건을 맞닥뜨릴지 모르는 채로, 백일장 심사위원들은 노들야학의 교실1에 모였습니다. 서로 가벼운 인사를 나눌 새도 없이, 모두의 관심은 곧장 책상 군데군데 놓여 있던 작품들로 향했습니다. 저마다 느끼는 경이는 시시각각 모습을 달리하는 표정과 고갯짓으로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 그러고는 온 책상에 작품들을 펼쳐보았습니다. 압도되었다고 할까요, 아니면 매료되었다고 할까요.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분위기가 감돌았습니다. 그렇게 2023년 노들야학 백일장 심사는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세 심사위원은 지난 2023년 5월과 6월의 일들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올해 백일장의 주제가 ‘노들야학 30주년, 나와 노들야학의 이야기, 노들야학에 보내는 편지’로 선정되었던 것을, 때 맞춰 야학의 복도에 백일장을 알리는 포스터가 늠름하게 등장했던 것을,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쓰고 그려야 하는지 학생과 교사들이 서로 열띠게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았던 것을 모두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서한영교, 백구, 이규식 작가로부터 ‘이야기할 권리’를 청해 듣는 특강 현장에 사람들이 가득 들어찼던 풍경 역시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심사위원들은 제일 중요한 한 가지를 몰랐습니다. ‘심사’하는 방법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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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영교 선생님의 백일장 특강, ‘전사들의 글쓰기’.

 

 

  무엇보다도 심사위원들 앞에 펼쳐진 작품들은 그야말로 아주 단단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특정한 기준으로 자신을 재단하고 평가하는 일을 힘차게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크기로, 장르를 넘나들면서, 오묘한 질감과 감정을 선보이며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쓰기’와 ‘그리기’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요구할뿐더러, 자신만의 정의를 발명하고 있었습니다. 모두 그 자체로 노들야학의 30년 세월을 품고 있었습니다. 문제라고는 없었습니다. 다만 심사위원들이 이렇게나 다채로운 이야기들과 만났던 경험이 없을 뿐이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작품들과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작품을 심사하는 방법과 기준을 끈질기게 궁리하기보다는, 널리 알려진 평가의 절차를 과감히 포기했습니다. ‘심사’라는 단어는 노들야학의 백일장이 이끌어낸 수다한 삶들을 아우르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그릇이었습니다. 넘치면 넘치는 대로, 흐르면 흐르는 대로 두기로 했습니다. 작품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들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심사위원들은 몇몇 대화의 장면들을 길어 올릴 수 있었습니다.

 

  ‘쭉쭉쭉 거침없다상’은 노들야학처럼 사방팔방으로 쭉쭉쭉 뻗어나가는 움직임들을 포착하는 작품들에게, ‘뿌셔뿌셔 자본주의상’은 비장애인 중심으로 이루어진 사회를 바꾸고자 했던 그간의 숱한 노력을 단번에 상기시키는 작품들에게, ‘와글와글 버스를타자상’은 함께 버스를 타며 투쟁할 적에 흐르는 끈적한 땀방울을 닮은 질감들을 선보이는 작품들에게, ‘으라차차 차별철폐상’은 차별을 반드시 철폐하겠다는 힘찬 의지를 절로 떠오르게 만드는 작품들에게, ‘알록달록 다양성상’은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애정을 연상시키는 알록달록한 색채들이 가득 들어찬 작품들에게, ‘오밀조밀 궁리하다상’은 자신의 삶과 감정에 대한 궁리를 듬뿍 담아낸 작품들에게, ‘오래오래 오래도록 노들야학상’은 노들야학을 다니는 일상 이야기와 더불어 노들야학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꿈꾸는 마음이 돋보이는 작품들에게, ‘사랑사랑 내사랑 노들야학상’은 노들야학을 향한 아낌없는 사랑이 도드라지는 작품들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참, 이들 이름 끝에 적은 ‘상’이 담고 있는 뜻은 ‘우수함’이 아닙니다. 빛나는 이야기를 치열하게 선물해준 모든 작품들에게 건네는 ‘고마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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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장 시상식에서 ‘알록달록 다양성상’을 수상하고 있는 신승연 님.

 

 

  2023년 노들야학의 백일장은 끝이 났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생각들은 끝없이 이어집니다. 매일같이 쓰고, 읽고, 춤추고, 노래하고, 말하고, 그리고, 가르치고, 배우고, 투쟁하고, 노동하는 노들야학의 일상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그렇다면 노들야학의 구성원은 학생과 교사만이 아닐 것입니다. 쓰는 사람, 읽는 사람, 춤추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말하는 사람, 그리는 사람, 가르치는 사람, 배우는 사람, 투쟁하는 사람, 노동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버젓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말이지요. ‘예술’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올해의 백일장을 통해 그 답을 톺아볼 수 있었습니다. 작품들을 만나며 압도와 매료를 줄기차게 오갔던 경험은 오래도록 피부에 남을 것 같습니다. 찬욱, 혜민 심사위원도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을 테고요. 혹 올해의 경험이 흐릿해진다면, 그때 다시 한번 백일장의 문을 두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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