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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똑, 취재 왔어요

노들야학 〈비마이너〉 읽기반의 미술반 취재기

 

 

 

 〈비마이너〉 읽기반 (명학, 희자, 인혜, 오성, 세현, 기대, 혜민)

목요일 3, 4교시 특활수업반. 〈비마이너〉 기사를 읽으며 토론하고, 종종 취재도 시도해 본다.

 

 

 

  

  〈비마이너〉는 장애와 빈곤 이슈를 다루는 진보적 장애인언론사다. 나는 〈비마이너〉 기자인데 예전부터 ‘〈비마이너〉 기사는 길고 어려워서 장애인 당사자는 정작 읽기 어렵다’는 피드백을 종종 받았다. 장애인 당사자에게 어떻게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야학 수업을 통해 〈비마이너〉 기사를 학생분들과 읽어보고자 했다. 그렇게 올해 ‘〈비마이너〉 읽기반’이 야학 특활 수업으로 신설됐다. 1학기엔 학생분들과 〈비마이너〉 기사 읽는 데에 집중했다. 기사를 함께 읽으며 우리가 왜 오늘 국회 앞에 가서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을 요구했는지, 왜 시민들이 욕을 퍼부어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하철 투쟁을 하는지 등에 관해 토론했다. 나름 재밌게 수업했다고 생각했는데 2학기에 들어서는 학생분들이 조금씩 지루해하는 게 느껴졌다. ‘기사 읽기’ 수업을 어떻게 재밌게 할 수 있을까. 다시 고민이 시작되던 중에 배운 것을 활용해 직접 취재해 보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른바 ‘실습수업’이다.

 

  수업 때마다 ‘일주일 동안(혹은 오늘 하루) 어떻게 지냈는지’를 물으며 수업을 연다. 이 시간을 활용해 인터뷰하는 방법을 틈틈이 연습했다. 서로서로 인터뷰한다고 생각하며 안부를 묻는 것이다. 방금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더 묻고 싶은 것은 없는지를 확인하며 ‘미술반 취재’를 위한 인터뷰 연습을 했다.

 

  인터뷰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사전에 취재원을 섭외하고 질문지를 짜야 한다. 미술반에 취재를 요청하고 승낙을 받았다. 〈비마이너〉 읽기반 학생분들은 미술반 학생 중 내가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을 정하고, 그에게 하고 싶은 질문을 한두 가지씩 준비했다. 〈비마이너〉 읽기반 학생 중에는 일하고 오느라 30~40분쯤 늦게 수업에 들어오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에겐 사진 기자 역할을 요청드렸다.

 

강혜민1_미술반수업하는모습.jpg

미술반의 수업하는 모습

 

 

  11월 2일, 대망의 미술반 취재 시간. 찬욱 쌤(미술반 교사)은 하얀 바탕에 색 없이 선만 그려져 있는 그림을 여러 장 커다란 모니터에 띄워놓고 학생분들에게 ‘따라 그리거나 색칠하고 싶은 그림’을 택하라고 하셨다. 학생분들이 각자가 택한 그림에 사인펜과 크레파스로 색을 채워 넣었다. 그동안 학생분들이 신청한 노래가 교실을 가득 채웠고, 찬욱 쌤은 교실을 돌아다니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학생분들을 지원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30분의 수업 참관 후, 미리 준비해간 질문을 했다. 나는 학생분들이 인터뷰하는 내용을 실시간으로 타이핑했다. 그다음 주인 11월 9일, 〈비마이너〉 읽기반은 인터뷰한 내용을 다시 읽어보며 우리가 취재한 취재원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여 기사를 완성해 보기로 했다. 이 글을 읽을 독자분들에게 우리가 만난 취재원을 어떻게 소개하고 싶은지 물으며 취재원에 대한 이야기를 채워 나갔다. 이 글은 그렇게 공동의 작업으로 만들어졌다.

 

 

※ 〈비마이너〉 읽기반 질문 순서 : 명학 → 희자 → 인혜 → 오성 → 세현 → 혜민

 

* * *

 

○ (명학) 만순 인터뷰

만순은 착하다. 색칠하는 걸 잘 한다. 텔레비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수요일에 인강원에 간다. 집에서 요리를 한다. 수줍음을 많이 탄다. 탈시설장애인상을 받았다. 발걸음이 빠르다. 인강원에서 탈시설했다.

 

- 재밌어요? 

네.

- 왜 재밌어요? 

그리니깐 재밌어요.

- 특별히 여기 택한 이유 뭐예요?

미술 그리고 노들학교…에 와가지고 미술 그리고 하니깐.

- 크게, 안 들리잖아요. 

(목소리가 커진다) 미술도 그리고요, 공부도 하고. 음… (다시 작아진다) 일자리도 배우고. 수업도 하고.

- 지금까지 미술 그린 것 중에 어떤 게 최고 인상에 남아요?

(웃는다) 

- 뭐가 남았어요? 뭐 그렸는가. 머리에 남는 게 뭐예요?

미술 한 것도 좋고. 수업도 하고. 선생님들 얘기하는 것도 좋고.

- 만순이 여기서 그림 그렸잖아요. 그중에 뭐가, 맘에 들고, 머리에 남냐고.

여기 중에서요? 

-  없어요? 없으면 없다고 답해요.

없어요.

- 찬욱이 쌤이 재밌게 해요?

네.

- 어떻게? 어떻게 재밌게? 

미술 갈쳐주고 하는 게 재밌어요

-  (찬욱쌤) 인기 좋아요?

네.

 

 

○ (희자) 성숙 인터뷰

성숙은 투쟁을 열심히 한다. 색칠을 진짜 열심히 한다. 말이 많고 한 말 또 하고 또 한다. 매일 콜라를 먹는다.

 

- 어떤 그림을 주로 그리나요. 

색칠하고, 선생님이 잘 가르치시니까 좋았고 잘 가르치시니깐 너무 좋았어요. 

(찬욱쌤은 성숙 바로 뒤에 앉아 있다. 찬욱 쌤이 말하며 웃는다. “내가 사주한 대화 같은데…”)

-  또, 또.

재밌어요. 선생님 너무 웃기고.

-  또.

선생님이 같이하니깐 너무 좋았어요.

- 누구 좋아?

희용이 좋아하지. (둘은 연인 사이다. 성숙의 과감한 사랑 고백에 사람들은 뒤집어지듯 웃는다.)

-  또.

선생님 사랑하지. 

- 또. 여기서. 성숙. 누구 좋아해?

만순 언니 사랑하지.

-  또.

(호연 언니 가리키며) 언니, 언니가 너무 착해. 언니 많이 아팠잖아. 잘 나왔어. 나오니깐 좋았어.

- 또.

(봉규 보며) 봉규는, 너무 착하고 안 사라지니깐 너무 좋아.

- 또.

지연 언니 너무 착해. 착하고 색칠 잘하니깐. 호선이는 (좌우로 고개를 흔들며) 이렇게… (바로 옆 규형에게) 자꾸 아줌마라고 불러요. 아줌마 아줌마 아줌마. 이제 하지마아~? (규형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강혜민2_희자의희용인터뷰.jpg

희자의 희용 인터뷰

 

○ (희자) 희용 인터뷰

희용은 일을 잘한다. 노들야학에서 청소, 설거지 일을 한다. 일을 많이 해서 힘들어한다. 밥을 맛있게 먹는다. 반찬을 많이 먹는다. 인사를 잘한다. 인상이 참 좋고 말수가 적다.

 

- 희용 씨 뭐했어?

미술 배우려고. 그림 그리는 게 좋았어.

- 여기서 누구 좋아해? 희용 씨? 응?

(희용, 답 안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자꾸 책상을 휴지로 닦는다)

-  나 말고, 응?

(답 안 하고 계속 휴지로 책상만 닦는다)

- 또. 없어?

(지연이 “나 있잖아”하면서 손을 들며 말한다. 성숙은 “우리 애인, 부끄러워해” 말하며 웃는다.)

희용이 “다 좋아해”라고 답한다. 

- 봉규는? 

좋아하지.

- 장기는?

다 좋아하지. 싫어하는 사람 없지.

 

 

강혜민3_인혜의찬욱인터뷰.jpg

인혜의 찬욱 인터뷰

 

○ (인혜) 찬욱 인터뷰 

찬욱은 착하다. 장난치는 걸 좋아한다. 다른 수업을 선택하면 삐진 척한다. 찬욱은 노들야학 교사다. 사근사근하고 생글생글 잘 웃는다.

 

찬욱이 인혜에게 다가가 옆에 앉으며 말한다. “기자님, 안녕하세요.”

 

- 미술 수업하는 게 뭐가 좋아요?

미술 수업할 때 다 같이, 나는 사실 미술 수업이지만 잡담하면서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면서 옆에서 훔쳐보고. 가르쳐 주는 건 사실 많이 없는 거 같아요. 그리기 좋아하는 거 준비하고, 잘 그려주면 좋아요. 언니들, 같은 반 수업 듣는 학생분들 듣는 노래 알 때마다 재밌고 그래요. 잡담하는 게 제일 좋나 봐요.

- 왜 노들야학이 좋아요?

오, 그거는 어려운 질문이네요. 허허허. 노들야학이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닌데요, 노들야학만큼 좋은 곳이 없기는 해요. 제일 재밌는 게 많은 곳. 좋은 것만 말하면 되게. (성숙이 찬욱을 보며 “선생님 너무 웃겨”라고 말한다) 나한테 말 많이 걸어줘서 좋고, 복도 지나갈 때마다 질문이 백 개씩 쏟아지는 것도 좋고, 하루만 안 나와도 왜 안 나왔냐고, 걱정인지 화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질문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아요.

- 집에서 뭐 하고 쉬어요?

아무것도 안 해요. 먹고 자고 유튜브 보고 영화 보고 끝이에요. (성숙이 묻는다. “왜 밖에 안 나가요?”) 안 쉴 때 사람을 너무 많이 만나서. (멀리 앉아 뜨개질하던 호연이 고개를 들고 “안기부 때?”라고 묻는다. ‘안 쉴 때’를 잘못 들은 것이다. 사람들이 웃는다.)

- 왜 혼자 있어요?

가족이랑 살면 싸움만 나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살아요.

 

 

○ (인혜) 봉규 인터뷰

봉규는 나이가 많고, 오래된 야학 학생이다. 괜찮은 사람 같다. 착하다. 장기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뭐든지 잘 먹는다.

 

-  봉규 님.

네.

-  뭐 했어요. 네? 

미술 그리고 그랬어요. 

- 어떻게 지냈어요?

잘 지내고 있어요.

- 미술반 왜 왔어요?

재밌어서 왔어요.

- 그전에도 미술 수업 들어본 적 있어요?

미술 수업이 재밌고, 재밌어요. 이상입니다.

 

 

○ (오성) 장기 인터뷰 

장기는 말이 많다. 잘 알고 보면 사람이 좋다. ‘내 나이가 어때서’ 노래를 잘 부른다. 옛날에 시설 들어가기 전 집에서 살았던 경험에 대해 가끔씩 이야기한다.

 

- 그림 그릴 때 애로사항 말씀해 주세요.

나는 잘 살고. 이사 갔고 2018년에 자립주택 이사 와서 집에서 아침에 일어나서 빨래 돌리고 청소 허고 퐁퐁으로 설거지 깨끗이 닦고 밥하고. 저번에는 세탁기가 고장 나서 한… 한성역서 살게 너무 시끄럽고. ㅇㅇ네 집에 갔더니. 

(오성 옆에 있던 찬욱이 말한다. “김장기 님. 기자님이 다른 거 질문한 거 같아요.”)

-  (오성이 찬욱을 스윽 보더니) (장기 님이) 맞게 말하는 거 같습니다. 

(장기가 계속 이어서 말한다.) 저는 노래 부르는 거 좋아하지. (웃으며 끄덕끄덕) 살기가 좋고. 지하철도 공짜. 장애자라. 혜화까지 오고. 활동(지원사) 선생님이 많이 도와주고. 이사 가니 너무 좋고. 너무 좋아. 나는. 

- 한 가지 더 물어볼 게 있습니다. 그림을 어떤 것을 많이 그리는지. 

나는 뭐 천(성호) 선생님도 그리고. 국어 선생님 술 먹기만 하고. 막걸리 한 병을 다 마셔버렸어. 껄껄껄. 앞으로 끊기로 했답니다.

- 그림도 이제 잘, 다양하게 그리겠습니까. 

소민이가 맨날 웅께. 아까도 울어갖고. 소민이가. 우리가 춤추고 있으니께로 경찰이 쫓아왔더라고. 껄껄. 소민이가 신고해서.

 

 

강혜민4_오성의호연인터뷰.jpg

오성(오른쪽 끝)이 호연(왼쪽 끝)을 인터뷰하고 있다

 

○ (오성) 호연 인터뷰 

호연은 수학을 좋아하고 잘한다. 뜨개질을 잘한다. 아메리카노를 많이 마신다. 들다방 단골손님이다. 군대를 좋아한다.

 

- 그림 그리는 데 애로사항은.

저는 처음에 뭘 그릴지, 딱 잘라서 얘기를 해주면 잘 그릴 수 있는데 선생님이 한번 고르라고 하면 그걸 못 골라요. 내가 만약에 이쪽이랑 이쪽이 있는데 누가 더 좋아요? 하면 못 잡아요. 그런 것에 애로사항이 있어요.

- 그건 누구나 다 마찬가진데. 

저는 그게 특히 심해가지고. 고르는 게 애로사항이에요. 두 번째는 큰돈과 적은 돈이 있을 때 무엇을 골라 쓸 것인가. 그게 애로사항이 그거예요.

- 그것은 앞으로 좀, 음… 고쳐야 되겠네요. 그리고 또 그림 그릴 때 어떤 그림을 많이 그리는지.

저는 (종이를 들어 보이며) 이런 집 그리기. 이것도(옆에 있는 에코백을 들어서 보여준다) 제가 그린 거예요.

- 미술에 소질이 있습니다.

그랬어요? 저도 잘 몰랐는데. 

- 우리학교 사람들 못 따라가겠는데. 수준이 높으시네요.

감사합니다.

 

 

강혜민5_그림색칠하는지연.jpg

그림 색칠을 하고 있는 지연

 

○ (세현) 지연 인터뷰

지연은 말 잘하고, 수업에 집중을 잘한다. 집중 안 하는 사람이 있으면 집중하라고 이야기해준다. 약간 반장 같은 느낌. 올해 처음 야학에 온 신입생이다.

 

세현이 컨디션이 안 좋다며 인터뷰를 못 하겠다고 한다. 찬욱이 세현에게 다가가 자신에게 질문을 알려주면 자신이 대신 질문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이뤄진 인터뷰.

 

- 찬욱 : 왜 미술반에 들어왔는지 궁금하답니다.

맨 처음 봤을 때, 미술 선생님을 여기 그림 그렸을 때 다양한 모양이 있고 색칠하기도 좋고. 색칠하면 머릿속에서 아무 생각이 안 나요. 왜냐면 생각나면 자꾸 신경만 쓰니깐. 미술 그리면 마음이 편해. 그게 다예요. 어려운 것도 없고 마음 편하고. 

-찬욱 : 첫 참관을 미술 하셨죠.

네.

-찬욱 : 미술반 어때요.

괜찮아. 아주 좋아요. 

 

 

○ (혜민) 규형 인터뷰

규형은 조용하다. 수업할 때 아는 내용이 많으면 이야기를 많이 한다. 아는 게 많은 사람. 올해 야학에 처음 온 신입생이다.

 

- 어떻게 미술반 수업을 신청하셨어요? 

미술 안 좋아했는데 미술 보니깐 좋아하고 재밌고 다 같이 미술 하니깐. 

- 어떤 순간이 제일 재밌어요?

색칠하는 거 좋아하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고.

- 어떤 색 가장 좋아하세요?

빨간색. 검은색. 

- 다음 학기에 듣고 싶은 수업이 있으시다면? 

저는 계속 미술. 

 

 

○ (혜민) 호선 인터뷰

호선은 조용하다. 수줍음이 많다. 옛날에 야학에서 자주 없어지는 바람에 엄마랑 학교에 같이 온다. 쿵쿵차카차카에서 연주를 한다.

 

- 어떻게 미술반에 오시게 됐어요?

지하철 끊기니깐. 

- 미술반 선택한 이유…?  

그림 그리니깐. 

-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세요?

네. 할머니가 병원에 계시거든요. 할머니가 어제 넘어져서. 화장실에서 넘어지셔서. 

- 아, 할머니랑 둘이 사세요?

(호선 옆에 있는 성숙이 답한다. “엄마하고 셋이요.”)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있어요. 선재시장(?) 앞에 용왕병원(?).

- 미술반에서 하고 싶은 거 있으세요? 

미술 그림 그릴 때 집중 안 하고. 말 안 듣고. 재용이 말 들으라고 하거든요. 불새동아리.

 

 

저녁 8시 40분, 호선과 인혜가 지하철이 끊긴다며 나간다. 두 사람이 나가니 나머지 학생들도 따라 나가서 수업이 자연스럽게 끝나려고 한다. 원래 수업 끝나는 시간은 9시다. 그때 “우리 사진 기자 있어요. 박기대 기자님, 단체 사진 찍어주세요!”라고 요청하니 교실 끝에 앉아 있던 기대 님이 나와서 단체 사진을 찍어주었다.

 

강혜민6_단체사진.jpg

단체 사진. photo by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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