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겨울 136호 - 움직이는 진 무리 / 하마무
움직이는 진 무리
하마무
진 수업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목요일 진 수업이 인생의 낙입니다. 사랑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진(Zine) 수업에서 노동자분들과 함께 배우고 있는 하마무입니다. 진이 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우선 진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진은 개인이나 작은 그룹이 이윤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기획부터 집필, 편집, 인쇄, 유통의 전 과정을 스스로 하는 인쇄물을 말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속도와 그날의 기분에 따라 자유롭게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을 진으로 봅니다. 종이로 진을 만들어 서로 교환하는 사람들도 있고,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하거나, 박수를 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모두가 각자의 고유한 방식으로 함께 있습니다. 진 수업은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의 하나로 진행됩니다. 매주 목요일 진 수업 참여자들은 세상과 자신을 연결하기 위한 진을 만듭니다. 2019년에 시작한 ‘PZZZ’는 중증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들이 스스로를 드러내고 말하기를 보여주는 프로젝트입니다.
2023년 10월 26일에는 ‘움직이는 진 무리’를 열어 지금까지 만들어 온 진 자랑대회를 했습니다.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고유한 예술적 표현을 꾸준히 지속해 온 창작자들이 거리로 나오기로 했습니다. 창작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진과 그림을 들고나와 소개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노래를 하고, 어떤 사람은 춤을 추고, 어떤 사람은 진을 보여주고, 어떤 사람은 가만히 있었습니다. 우리는 언어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대화를 합니다. 진으로 몸을 꾸미고 진을 교환합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진입니다. 그리고 움직이는 진입니다. 아주 멋진 무리의 완성입니다. 사실 완성이 아닌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주에도 진 무리를 가져갔습니다.
제주에서 우리는 돌고래를 바다로 내보내라고 외쳤고 해군기지 앞에서 진 띠 잇기를 했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의 학살은 잘못된 일이라고 외쳤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진을 들고 죽이지 말라고 외쳤습니다. 바다를 바라보고 돌고래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했고, 탈시설을 외치는 우리의 꿈과 감옥 같은 수족관에 갇혀있는 돌고래의 상처를 상상합니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아주 멋진 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장애와 예술 활동은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예술은 일부를 제외하고 쓸모없긴 합니다. 먹을 수도 없고 당장 전쟁을 멈추는 힘도 없습니다. 그런 것을 예술에 기대하는 건 별로입니다. 그렇지만 계속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관공서가 해야 하는 일을 예술이 실제로 해왔습니다.
‘쓸모’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런 질문을 우리는 계속 던집니다. 우리의 존재는 자본주의나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언어적인 표현 방식을 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무언가 전조를 전달합니다. 그것이 바로 공공의 이익이고 모두를 위해 우리가 노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저의 바람은 그런 이익이나 쓸모가 아닌, 그냥 태어나 버렸는데 일 안 하면 낙인찍히고 소외당하는 게 잘못된 것이라고 인식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이미 노동하고 있고,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안 보이는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춥니다.
우연히 태어나 버렸습니다. 모든 시스템이 자본주의의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 돌아가는 사회에 태어나버렸습니다. 제가 원한 적 없지만 태어나자마자 이 시스템에 편입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태어나기만 하면 누구나 생존권을 보장받는 사회를 만들자고 요구합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하며, 장애가 있어도 존재만으로 노동 중입니다. 조금 어색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노동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혼자 살 수가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 덕분에 삽니다. 진을 통해 우리는 세상과 연결됩니다. 당신과도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