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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_노들장애인야학 개교 30주년

음악처럼 다양한 투쟁과 연대를 보여준 노들

 

 

 명숙

싸우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하는 거리의 인권활동가. 싸우는 사람들의 꿈틀거리는 몸짓에서 다름의 아름다움을 읽어내려 애쓰고 기록하려 한다. 현재는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상임활동로 일하고 있다.

 

 

 

 

  사람의 삶도, 투쟁도, 노동도 음악처럼 다양하다. 때로는 웅장한 오페라처럼, 때로는 말하는 듯 노래하는 듯한 랩처럼, 때로는 신나게 몸을 들썩이게 하는 댄스음악처럼 말이다. 소리를 내는 사람과 악기와 발성과 음색에 따라 다르다. 노들야학은 나에게 여러 장르의 음악 같았다.

 

  포크송 같던 첫 만남. 노들야학을 처음 찾아간 해는 2008년이다. 야학이라고 들었는데 건물 밖에 있었다. 야학이지만 공간은 없는 야학. 대학로에 천막을 치고 야학 공간 마련을 위해 농성 겸 교실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천막 야학이라니! 기가 막히게 멋진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야외학교 같으면서도 천막이니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도 접근이 가능하다. 잔잔한 투쟁이자 활동이지만 비장애인중심의 사회에서는 혁신적인 투쟁이다. 중증장애인이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아니라 점거하고 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대학로에 오가는 모습을 보기 민망했던 것인지 80일 만에 ‘천막 야학’을 끝냈다. 시민들의 모금만이 아니라 교육 공간의 임대료를 서울시가 예산에서 지원하기로 약속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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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불편한 상상」 공연 중(사진 출처: 장애인문화예술판)

 

  두 번째 만남은 뮤지컬 그 자체였다. 내 꿈과도 연관된 문화예술이다. 2008년 2월에 ‘장애인극단 판’이 설립되엇다. 장애인들이 주연배우이고 장애인권 문제를 주로 다뤘다. 나는 비장애인 객원 단역배우로 2010년 「불편한 상상」이라는 제목의 연극에 출연해 중학생 때 잠시 꾸었던 연극배우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불편한 상상」은 장애인이 중심이 된 사회를 가정하고 그 사회에서는 비장애인으로 태어나면 부끄러워하고 시설에 가두는 미래를 상상한 것이다. 『이갈리아의 딸들』처럼 현실을 뒤바꾸어 현실의 문제점을 짚은 연극이다. 당시 나는 장애인 앵커역을 맡았다. 주인공 역할은 장애인 당사자들이 맡았는데 연기력이 정말 대단했다.

 

  2010년은 인권활동가들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이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를 제자리로 돌려놓겠다고 빡세게 투쟁하던 시기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장애인차별금지법(아래 장차법)상의 시정기구인 인권위의 규모와 기능을 축소하려고 해서다. 이른바 인권위 조직 축소 저지 투쟁이었다. 인권위가 장차법 시정기구로 제대로 역할을 해야 장애인 차별이 조금이나마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기에 전장연 등 장애인들의 싸움이 거셌다. 나는 당시에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에서 촉진자 역할을 하고 있어서 장애인 활동가들과 많이 만나고 많은 투쟁을 기획했다. 농성 중 인권위가 전기와 난방을 끊어 농성자들이 응급차에 실려 나오기도 했다. (그후 우동민 열사 투쟁이 이어졌다.) 그렇게 빡센 투쟁 중에도 나는 장애인 활동가들과 함께 연극 연습을 하고 공연도 했다.

 

  노들은 전장연 소속 단체들 중에서도 집회에 열심히 참여하기로 유명했다. 인권위 조직 축소 저지 및 독립성 확보 투쟁 외에도, 성소수자 차별에 맞선 서울시청 로비 농성에도 함께 했다. 많은 노들야학 학생들이 말하듯이 투쟁이 공부였다. 그러다 보니 여러 투쟁의 현장에서 노들야학 학생들을 자주 만났다. 특히 지금의 노들 공동교장이신 김명학 동지는 더 자주 만났다.

 

  노들이라는 나무가 자라면서 가지를 뻗었다. 노들야학 외에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있고, 장애인자립공장 노란들판, 장애인극단 판(현 장애인문화예술판)이 있다. 꿈을 꾸는 만큼 가지가 세상을 향해 뻗었다. 그러다 보니 노들과 만날 일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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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장애인노동권 발표회에서(사진 출처: 비마이너)

 

  세 번째 노들과의 만남은 퓨전 음악이랄까. 장애인 노동권 조사연구를 하며 노들을 또 새롭게 만났다. 노들야학 학생들이 하던 활동과 문화예술이 노동이 되는 순간을 보았다. 지금 내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인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은 장애인 노동권을 주요 의제로 삼고 있다. 2019년부터 장애인 노동에 대해 공부하고 조사하며 실태조사와 담론 연구를 했다. 우리는 장애인 일자리의 부족과 장애인의 노동에 대한 낮은 평가의 구조적 문제를 다루었다. 노동 경험이 있는 장애인들을 인터뷰하고 장애인보호작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만나 노동에 대한 생각과 변화에 대해 실태조사를 했다.

 

  2022년에는 한국노동연구원과 함께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를 조사하면서, 노들야학에서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노동자로 일하는 장애인들을 만나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물었다. 노들에서 권익옹호 활동을 하는 장애인들은 대학로 인근의 장애인 접근권을 조사하는 활동을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었다. 자신이 하는 노동을 설명할 때 자신감이 묻어났다. 노들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장애인은 선생님들과 같이 이야기하며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모두 자신이 번 돈이라 자유롭게 먹고 싶은 것 먹고, 사고 싶은 것 사는 것이 좋다고 했다. 사실 기초생활수급비만으로 생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여러 의미로 노동은 삶을 바꾸고, 사람을 변화시킨다.

 

  무엇보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노동과 문화예술에 대한 우리의 좁은 인식틀을 깨뜨린다. 우리가 보아왔고 익숙했던 노동과 예술에 대한 상식이 사실은 비장애인 중심이었음을, 이윤 중심의 표준화된 것만을 ‘노동’이고 ‘예술’이라고 여겨왔음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왜 노동이 아니란 말인가”라는 구호는 우리의 편견을, 자본주의 체제의 노동이 어떻게 우리의 노동과 삶을 제한해왔는지를 드러낸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위해, 더 많은 물건을 만들기 위해 기계에 맞출 수 있는 비장애인의 몸을 표준으로 한 노동이 문제지, 장애인의 몸과 노동이 문제가 아니었음을 알게 해준다. 그래서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장애인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노동을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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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아시아나케이오 투쟁문화제에서 노들테크노전사단이 공연을 준비 중이다.

 

  지금도 난 2021년에 해고노동자 농성 천막 앞에서 열렸던 노들야학 노들테크노전사단의 공연이 준 강렬함을 잊을 수 없다. 당시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는 코로나19를 핑계로 해고된 아시아나케이오 해고노동자들이 농성 중이었다. 하루는 인권단체 주관의 투쟁문화제를 하기로 했고 전장연, 바람, 행성인이 준비를 했다. 인권단체들이 운영하는 문화예술팀으로 공연을 하자는 취지로 노들테크노전사단의 공연을 섭외했다. 문화제에 참가한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좋았다. 노래가 신나기도 했고 노래를 부르며 몸을 흔드는 장애인들의 열정이 우리에게 전해졌다.

 

  우리가 보았던 익숙한 비장애인의 예술이 아닌 장애인들의 자유로운 리듬과 소리와 몸짓이, 낯선듯 낯설지 않은 그들의 노래가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흥겹고 아름다웠다. 새로운 정동이 음표가 되어 날개를 흔들며 옆으로 날아가는 듯했다. 아마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동안 자신이 알던 예술과 노동이 얼마나 협소했는지를…. 다양성과 공존이 무엇인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돌아보니 노들과 만났던 시간들 속에서 나도 참 많이 배웠구나 싶다. 그 배움은 노들이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가르치려 한다고 가르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 배움은 그저 그들 곁에 있음으로써 배울 수 있는 것들이다. 다른 세상을 가는 길에 길동무가 된다면 말이다. 길동무들조차 노들야학의 학생들로 만드는 그 꿈을 나는 앞으로도 열정적으로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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