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겨울 133호 - [노들아 안녕] 책상이 생겼어요 / 이예인
노들아 안녕
책상이 생겼어요
이예인
노들바람에 원고를 내게 되었어요. 어떤 말을 쓰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옆에서 애인이 말했습니다.
책상 이야기를 해 보면 어때?
그래서 쓰게 됐습니다. 애인에게 커다란 책상을 선물받고 무엇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요. 가만히 떠올려 보니 책상을 갖는 일과 저의 자립은 크게 다르지도 않았어요.
작년 가을, 어떤 이유에선지 아주 슬프던 날이었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리자 어디로도 가기가 싫었어요. 대합실에 다다라 문자 한 통을 받았어요. 집에 책상이 와 있다구요. 집에 책상이 있어서. 내게 책상을 사 주는 사람이 있어서 저는 그날 집으로 돌아갔는지도 몰라요.
저녁을 준비하고 먹는 동안 애인은 틈틈이 상판에 기둥을 고정해주었습니다. 나무합판에 금속 기둥이 달린 대단한 책상이어서 저는 완성된 책상과 함께 사진을 찍어달라구 부탁했어요. 전에 쓰던 책상보다 두 배는 더 컸습니다. 책상이 생긴 당일에는 거기서 뭘 했는지 기억나지 않아요. 그치만 그날 기쁜 마음으로 푹 잤던 거 같아요.
이제 책상이 생기고 무엇이 달라졌는지 말씀드릴게요. 이전 것보다 더 큰 책상이 생기니 그 앞에서 보내는 시간도 많아졌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함께 시와 동화를 써요. 책상이 넓어지니 그 앞에 앉아 뭔가를 쓰거나 쓰는 척하는 횟수가 늘었어요. 이건 좋은 일임이 분명해요. 다른 사람과 장소를 궁금해 할 기회도 늘어났을지 모르니까요.
게다가 밥을 먹으며 만화를 보기도 좋아요. 제가 좋아하는 무민 가족이나 나루토의 주인공들을 더 가까이서 지켜보게 됐어요. 책이나 간식을 쌓아두고도 한 켠에서 친구들에게 편지를 쓸 수도 있구요.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책상이 방 안에 있는 게 제가 여기 있어도 된다는 뜻 같아서예요.
센터판과 만난 지 벌써 5개월이 되어갑니다. 사무실에도 제 자리가 생겼어요. 집에 놓인 책상에서와는 다른 일을 해요. 공문을 접수하고, 도시락 신청을 받아요. 그 사실로 저는 얼마간 세상에 더 머물러도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늑하고 즐거운 내 자리가 많아졌으면, 하고 바라게 되기도 해요. 어쩌면 거기서 새 친구를 사귈 수 있을지도요.
운이 좋아 책상을 받게 되었지만, 정말로 모두가 책상을 가졌으면 해요. 다른 이들의 책상은 꼭 책상의 모습이 아니라 도서관이나 장난감, 피아노일지 모르겠지만요. 그 과정에서 불편하더라도 함께 시행착오를 겪어 보아요. 애인에게, 책상에게, 센터판의 동료들에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