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겨울 133호 - 우리의 대응과 투쟁은 한국에서도 계속된다 / 최한별
우리의 대응과 투쟁은 한국에서도 계속된다
한국 장애계, 제네바에 가다 2
최한별
다른 나라에서도 우리처럼 장판 운동이 뜨거울까?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해 어느덧 국제연대를 담당하는 한국장애포럼에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와 다른 듯하면서도 닮았고, 닮은 듯하면서도 다른 세계 방방곡곡의 장애인 투쟁은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노들바람〉 2022년 가을 132호 - 한국 장애인운동, 제네바에서 ‘해외 동지들’을 만나다 / 최한별 에서 이어집니다. - 편집자
‘해외 동지’들을 만나 힘을 든든히 얻은 우리는 더 힘을 내서 심의 대응에 돌입했다. 본격적으로 한국 정부에 대한 심의가 시작된 건 8월 24일 오후부터였다. 정부 심의는 마치 국정감사를 하는 것처럼 한국 정부에서 유엔장애인권리협약(UN 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아래 협약) 이행 현황을 설명하면,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아래 위원회) 위원들이 정부에 현황이나 문제점 등을 중심으로 질의한다. 그리고 정부는 이 질문에 다시 답변하는 방식으로 심의가 진행된다.
이틀간의 심의가 끝난 후 위원들은 한국 정부에 대한 권고를 담은 최종견해(Concluding Observation)를 발표한다. 심의에서 위원들이 어떤 질문을 하고 어떤 답변을 듣는지에 따라 최종견해에 담길 권고가 상당 부분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주된 ‘심의 대응’ 활동은 위원들이 한국의 문제점을 드러낼 수 있는 질문을 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정부의 답변이 가리고 있는 진실을 알리는 것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한 달간의 위원회 정기 회의는 정말 강도 높게 진행된다. 위원들은 매일 적어도 한 개 이상의 국가를 심의한다. 심의를 위해서는 각국 정부가 제출한 보고서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국가인권기구 등에서 제출한 수많은 보고서도 파악해야 한다. 심의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선택의정서에 따른 개인통보나 직권조사 등을 통해 들어오는 문제들도 확인하고 논의해야 한다.
주요 현안에 대한 논의뿐만 아니라 일반논평(General Comment)과 가이드라인 등의 작성까지 정기회의에서 이뤄진다. 예를 들어 한국이 심의를 받은 제27차 정기회의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에서 장애인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며 위원회의 역할을 논의하였고, 장애인 노동권에 관한 일반논평 8과 긴급 상황을 포함한 탈시설 가이드라인도 작성되었다.
이렇게 촉박하고 빠듯한 일정 속에서 위원들에게 한국 상황을 잘 알리는 것은 우리에게도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위원들과의 만남은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1) 미리 약속 잡기 (2) 이메일을 통한 정보 전달 (3) 길 가던 사람 붙잡기. 사전에 만날 약속을 잡기는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다. 위원들의 하루는 정말 꽉꽉 차 있기 때문에 단 5분이라도 만날 약속 잡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예상대로(!) 가장 효과적인 것은 ‘길 가던 사람 붙잡기’였다. 우리는 위원들 얼굴을 익혀두었다가 복도건 카페건 로비건 보이기만 하면 쫓아갔다. 만약 내가 위원이라면 정말 지치고 힘들겠다 싶으면서도 지금 받을 권고가 앞으로 10년간 활용된다는 생각을 하면 간절한 마음으로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위원들은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무척 피곤할 텐데도 기꺼이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이렇게라도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구조를 바꾸고 싶어 하는 장애인단체들의 간절함을 마음 깊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짧지만 소중한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면 위원들을 만났을 때 의제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계획을 늘 머릿속에 정리하고 다녀야 했다.
심의 당일에도 반복된 참사
이 과정에서 위원들이 특히 놀라고 충격을 받았던 의제는 역시 장애인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었다. 위원들은 한국에서 반복되는 이런 사건들을 시민사회 보고서를 통해 인지하고는 있었으나 단순히 장애인 부모가 자녀 양육이 어려워 발생하는 사건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우리는 위원들을 만나고서야 이런 문제를 확인할 수 있었고, 한국의 열악한 장애인 지원 시스템으로 인해 동일한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고 정정해 주었다. 위원들은 이 사실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한국처럼 소위 ‘잘사는’ 나라에서조차 부모가 장애인 자녀를 키우기 버거워한다니, 그래서 자녀를 살해하고 자기까지 자살을 한다니.
공교롭게도 한국 심의가 열리는 첫날인 8월 24일 아침(제네바 현지 기준)에도 대구에서 동일한 사건이 다시 발생했던 터였다. 위원들은 깊은 애도를 표하며 이 문제에 대해 날 선 질문을 던졌다. 염민섭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장은 “잇따라 발생한 일에 대해 정부 책임자로서 깊은 애도의 말씀을 드린다.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그분들이 느끼시기에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대답했다. 동행했던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활동가들은 “한국에서도 못 들어본 애도를 여기(제네바) 와서야 들어 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위원회에는 국가별 심의 담당관을 두고 있었다. 심의 담당관은 해당 국가에 대한 최종견해 작성을 주관하는 위원으로, 1~2인으로 구성된다. 한국 심의 담당관은 몽골의 게렐 돈도브도르이(Gerel Dondovdorj) 위원과 가나의 거트루드 페포아메(Gertrude Oforiwa Fefoame) 위원 두 사람이었다. 두 위원 모두 시각장애여성 당사자고, 특히 게렐 위원은 같은 아시아권 국가 출신에다 한국에 방문한 경험도 많아 한국의 장애인이 경험하는 차별적 문화의 맥락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심의 담당관에게 한국 상황을 잘 설명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우리는 두 위원에게 많은 정보를 전달했다. 심의가 시작되기 전인 이른 아침부터 심의가 끝나고 나서 밤늦게까지, 우리는 틈만 나면 두 심의 담당관에게 메일을 보내고 궁금한 것은 없는지 확인했다.
두 위원은 상당히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다. 정부가 보고서를 늑장 제출하는 바람에 시간이 부족했을 텐데도 정부 보고서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높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한국의 심의 담당관인 게렐 위원과 거트루드 위원을 비롯해 최선을 다하여 한국 심의를 진행해 준 위원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하고 싶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한국 정부가 심의를 받는 동안에도 심의 대응단은 신경을 곤두세웠다. 정부의 답변 중 잘못된 것은 없는지, 현실을 부풀리거나 축소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등을 검토했다. 한국어 답변을 영어로 통역하는 과정도 주요 모니터링 대상이었다. 위원들은 결국 통역된 내용으로 정부 답변을 파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응단은 구글 문서에 한국어를 속기하고, 통역 중 바로잡을 내용을 작성하고, 정부 답변에 반박이 필요한 내용을 정리하고, 이를 뒷받침할 통계와 기사들을 즉각적으로 모았다. 속도도 빠르고 처리해야 하는 정보의 양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작업이었는데 놀랍게도 대응단은 마치 오랫동안 함께 일해 온 사람들처럼 빠르게 합을 맞춰갔다.
이렇게 모아진 자료를 심의가 끝난 후 모여 다시 문서로 정리해 위원들에게 전달했다. 대응단은 밤늦게까지 위원들에게 보낼 자료들을 정리하고, 번역하고, 다시 짧게 줄이고, 또 보완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료를 위원들의 관심 사항별로 묶어 한 명, 한 명에게 메일로 발송했다. 이미 너무 많은 정보 속에서 혼란스러울 위원들에게 관심 있을 만한 이슈에 대한 압축적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밤샘 작업 끝에 25일 아침, 심의 대응단은 충혈된 눈으로 한국 심의 마지막 날을 맞았다. 이날도 심의 내용을 전날과 동일하게 모니터링했다. 심의 마지막 날인만큼 최대한 빠르게 내용을 정리하여 심의가 끝난 직후 위원들에게 발송했다.
심의는 끝났지만 우리의 활동은 끝나지 않았다. 한국에서 심의 대응 활동을 궁금해 하고 있을 사람들에게 결과를 보고하고, 우리의 ‘대응’은 최종견해 이행 점검으로까지 이어질 것임을 정부와 위원회에 알리는 기자회견을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보도자료 오케이, 현수막 오케이, 발언자 섭외 오케이, 보고 내용? 그 무엇보다 자신만만하게 오케이. 그런데 문제는 기자회견 장소였다. 원래 우리는 기자회견을 유엔 제네바 사무소 앞 광장에 있는 ‘브로큰 체어(Broken Chair)’ 앞에서 하려고 했다. ‘브로큰 체어’는 다리 하나가 부러져 세 개의 다리로 서서 유엔 본부를 바라보고 있는 거대한 의자 조형물로, 인권 침해 피해자들을 상징한다. 이 상징물은 전 세계 국가와 유엔을 향해 인권 침해를 중단하고, 모든 이의 인권을 보장할 의무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
브로큰 체어가 있는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하려면 제네바 경찰 및 제네바시와 24시간 전에 협의를 해야 한다. 그런데 아뿔싸, 정신없이 심의 대응을 하다가 그만 기한을 넘긴 것이다. 심의가 끝나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는 ‘대체 어디서 기자회견을 하느냐’로 고민하고 있었다. 잡혀갈 위험을 무릅쓰고 브로큰 체어 앞에서 기자회견을 강행할지, 아니면 작은 회의장을 빌려 실내에서 진행할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우리는 고민을 했다.
그러던 중 김동호 협약 선택의정서 비정부기구 연대 단장님이 한 마디를 툭 던졌다. “그냥 여기서 하면 안 되나?” ‘여기’라 함은 한국이 심의를 받고 있는 E동의 19호 회의실(Meeting Room XIX)을 말하는 것이었다. 간이 콩알만한 나는 ‘규정이 엄청 빡빡한 유엔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이 기자회견을 한다고 이 회의장을 과연 빌려줄까’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회의장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던 김은정 한국장애인연맹 간사님이 멀리서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는 정당하다
그렇게 거대한 회의장 내에서 기자회견이 이뤄질 수 있었다. 기자회견을 하는 내내 나는 왜 지레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반추해보았다. 소위 ‘무시당한 경험’이 내 안에 너무 많이 축적되었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민관협의를 한다고 하고, 시민사회의 의견을 듣는다고 하면서도 정작 전혀 존중받지 못해본 경험이 얼마나 많은가. 시민단체들의 의견은 너무 자주 비현실적이라며 무시되고, 공적 공간에서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늘 무언가를 금지 당한다.
당사자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별도의 비공개 면담(Private briefing)을 제도화하는 등 시민단체의 활동과 그 무게감을 존중하는 유엔의 시스템을 체험하면서, 아무리 바쁘고 피곤해도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위원들의 모습을 접하면서, 한국에서 우리가 가졌던 문제의식이 우리만의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투쟁의 정당성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국제적으로도 다시 한번 확인받게 된 것이다.
상상 이상으로 바쁘고 정신없던 일주일이었지만 ‘우리의 투쟁은 정당하다’는 또렷한 감각을 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동시에 그동안 조금은 멀게 느껴졌던 협약이, 그리고 이와 관련된 다양한 문서와 규정들이, 무엇보다 정부에 대한 권고를 담은 최종견해가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 생생하게 확인한 기회이기도 했다. 어느 문장도 위로부터 뚝 떨어진 것이 아님을, 한 글자, 한 글자가 전 세계 장애인의 삶으로부터, 그리고 우리 사회에 뿌리박힌 비장애중심주의의 차별에 맞선 용기로부터 움텄다는 것을 절감했다.
이렇게 움튼 소중한 싹이 다시 우리에게 주어졌다. 지금 이 시대, 한국의 장애인이 경험하는 수많은 차별과 배제를 끝내기 위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2, 3차 최종견해에 담겨 발표되었다. 이 권고에 어떻게 생명력을 부여하고 성장시킬 것인지는 결국 우리 손에 달려있다. 이 소중한 권고가 무럭무럭 자라 더 풍요로운 평등을 피워낼 수 있도록, 우리의 활동은 한국에서 더욱 뜨겁게 계속될 것이다.
*이 글은 <비마이너>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