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여름 131호 - 지하철역에서 몸을 던지다 / 서기현
지하철역에서
몸을 던지다
서기현
센터판에서 '벽'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요즘에 '코딩'에 꽂혀있습니다.
나름 노후 준비일지도 모르지요?
센터판에서 노들판 파워싸커(전동휠체어축구) 클럽에서 선수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전동휠체어 스틱만 다룰 수 있으면 누구나 가능합니다.
많은 관심 바래요.
걷는 기억이 없다. 어렸을 때 부터 그랬다. 줄곧 무릎을 꿇고 기어다녔다. 그런데 팔은 못쓰니 네발로 기는건 못한다. 그렇게 평생을 기어다닌 결과, 내 무릎에는 거므스런 굳은 살이 덮혀있다. 사실 그래서 무릎보호대가 나에게는 딱히 필요 없다. 그렇게 단단하긴 하지만 가끔은 고장날 때가 있다. 작은 상처의 누적으로 인해 곪을 때가 있다. 그것 때문에 어렸을 때는 2,3년마다 한 번씩 크게 앓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는 병원에 간 적은 없다.
5월 10일 아침.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던 날, 평생 기어다니던 내가 그 모습을 서울 시민들에게 보여 주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갑자기 어느 활동가가 나에게 오체투지를 누군가 해야 되는데 혹시 생각 있으세요라고 물어봤다. ‘아 내가 기는 건 그렇게(?) 그림이 안 나올 텐데’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투쟁의 내용을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들었다.그래서 하겠다고 했더니 어떤 활동가가 무릎 보호대를 내 다리에 채우려고 애쓰고 있었다. 나는 사실 그거 필요 없거든요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 활동가가 민망해 할까봐 하지 않았다 .
사전집회가 끝나고 드디어 오체투지 투쟁을 해야하는 시간이 왔다. 40년 넘게 살면서 별의별일을 다 겪은지라 창피하거나 부담되는 것은 없었으나 시민들에게 처절하게 보이고 사진도 좀 잘 찍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지하철이 멈추고 장애인활동가들이 하나둘 전동휠체어에서 내려서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천천히 지하철로 들어서고 시민들의 표정과 반응을 살펴봤다. 어느 분은 애써 무시하는 모습을 보였고 어느 분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 어떤 분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항의하는 분도 있었다. 물론 그런 분들은 활동가들과 경찰들이 막아줘서 오체투지하는 분들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할수는 없었다. 그래도 그런 고성과 행동들이 장애인 당사자들에게 엄청난 부담이 되고 있었다.
나는 네발로 기는 장애인활동가들의 맨 뒤에 있었는데 나만 무릎으로 서서 기고 있었다. 다 바닥에 엎드려 있었는데 나만 미어캣 처럼 그렇게 기고 있었다. 조금 민망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앞에서 정말 불편하게 처절하게 기고 있는데 나만 편하게 기고 있었것 같이 보였다.
서기현 활동가가 오체투지를 하기 위해 휠체어에서 내려왔다.
물론 아마도 자격지심이겠지만 순간 고민이 됐다. 나도 그냥 누워서 구를까? 그런데 그것은 너무 양심상 허락이 되지 않아서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는 그때 누웠어야 하나? 그것이 나는 창피했을까?
십수년전 잠깐 연애를 한 적이 있다. 상대방도 전동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었다. 하루는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고 마치고 나오면서 그 친구가 계산을 하는 순간 지갑을 떨어뜨렸다. 나는 재빨리 휠체어에서 내려서 손을 못쓰는 상황이라 입으로 지갑을 물어서 그 친구에게 주었다. 정말 순간적인 일이었고 나는 그냥 자연스럽게 그 친구가 못 주을 것 같아서 했던 행동이지만 그 친구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식당을 도망치듯 나오게 되었다. 식당을 나와서도 그 친구는 그냥 집에 갔다. 뭐라고 물어볼 새도 없이 그냥 헤어진 것이다. 후에 왜 그랬는지 물어보왔는데 자신은 남들 앞에서 자신을 포함한 다른 장애인도 바닥에 기는 모습을 처음 보았고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 너무 민망하고 창피했다고 했다. 그리고 도대체 왜 내가 휠체어에서 내렸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했다. 나는 별 생각없이 했던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특히나 장애인들에게는 굉장히 민감한 문제라는 것을 그때 처음 느꼈다.
장애인에게 전동휠체어에서 내려 바닥을 기는 것은 어쩌면 자신을 온전히 세상에 무방비로 내놓는 것이다. 위험하고 느리고 아프고 지져분해지고 민망하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세계로 내려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마치 그들과는 다른 차원에 온 것 처럼..... 우리는 올려봐야 하고 그들은 우리를 내려다 본다. 단순히 시선차이를 넘어서는 그런 위압감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 때문에 장애인들이 휠체어에서 내려와서 바닥을 기는 처절함을 보여줘야 할까?
바닥을 기는 것은 온전히 지금의 장애인의 현실을 대중들에게 보이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쇼라고 생각할수 있겠지만 우리는 그것이 쇼라고 해도 무슨 방법이라도 써서 장애인의 현실을 모르는 대중들에게 알려낼 소임이 있다.
이른바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에서도 이미 수십년 전에 그 나라 장애인들이 썼던 전략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백악관앞의 계단을 장애인 수십명이 기어서 올라갔으며 영국에서도 버스를 운행하지 못하게 하거나 기어서 올라가거나 심지어 수갑을 자기 손목에 채우고 고정을 시키는 그런 과격한 방법도 썼다고 한다. 그런 진통이 있어서 장애인이 살기 편한 곳으로 변하였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장애인의 현실에 대해서 알지 못하거나 잘못 알고 있거나 관심이 없다. 그나마 전장연을 비롯한 수많은 장애인 단체가 때마다 집회와 시위를 해서 시민들에게 알리고 있는 것이다. 알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변화도 많이 있었다.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생기고 시내에 저상버스가 돌아다니고 활동지원서빅스가 도입이 되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생겼다.
이런 변화들이 직접적으로 장애인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만은 아니다. 엘리베이터나 저상버스는 노인이나 어린이들, 유모차를 끄는 부모님들이 직접적인 혜택을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노인분들이 압도적으로 이용을 한다. 활동지원서비스 같은 경우에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에게도 도움이 되는 서비스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은 무조건 가족이 돌보거나 시설로 가야 했지만 활동지원서비스가 시행이 되면서 가족의 부담이 엄청나게 적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부담을 느껴서서 시설로 가야 하는 장애인도 많이 줄어들었다. 이것은 사회적인 혁신이라고 볼수가 있다. 예산규모에서도 활동지원 사업의 예산이 장애인 복지 예산의 절반이상을 차지할 만큼 중요한 위치이다.
이렇듯 장애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에게도 무시못한 변화를 이끈 것이 전장연 등의 투쟁활동이다. 이 변화는 아직 진행형이고 많이 부족하다. 우리나라가 요즘에 선진국에 들어갔다고 하지만 주요 선진국 대비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예산 비율은 아직도 ⅓ 이하 이다. 그만큼 장애인들에게 예산이 쓰여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다.
정치인들은 장애인 분야에 예산을 확보해 달라고 하면 기다려 달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수십년째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 전국민적인 공감 등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장애인의 현실이 누가 그들에게 알려줄수 있을까? 바로 우리들 밖에 없다. 우리는 수십년 넘게 그들에게 우리에게 필요한 제도와 예산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들은 철저히 무시했다. 그들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지하철에 몸을 던져가며 알려야 한다. 그 처절함과 그 절실함을 온몸으로 알려야 한다. 그래서 나는 열번이라도 백번이라도 지하철, 버스, 길거리 그 어디에서라도 길 준비가 되어있다. 그래야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리고 조금이라도 변하게 할수 있기 때문이다.
투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