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여름 131호 - 오늘도, 지하철을 탑니다 / 김미영
오늘도,
지하철을 탑니다
김미영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활동가
매일 아침 저녁 지하철을 이용하여 출퇴근을 합니다. 언제나 그랬듯 계단을 내려가 승강장에서 기다렸다 아무 생각없이 몸이 기억하는대로 지하철을 탑니다. 하지만 요즘은 아무 생각없이 지하철을 이용할 수가 없습니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타면 바닥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겨서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구석구석 먼지도 많고, 머리카락도 많고, 깨끗하다고 생각했던 열차 바닥이 너무 지저분하게 보였습니다.
‘저기를 오늘도 기어야 하는데......’ 속이 상했습니다. 그냥 현상만 보면 마음이 그렇게 슬프게 흘러갑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려고 복지에도 신경을 써서 노인들을 위해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도 생기고, 저상버스도 생기고...... 그렇게 나라가 알아서 만들어 준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어느날 보니 어르신들이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을 보니 엘리베이터가 있나보다 했고, 또 어느날 버스를 타니 저상버스였고...... 그냥 언제 생겼는지 어떻게 생겼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세상 좋아졌구나’ 했습니다. 그렇게 세상이 돌아가는 구조가 비장애인 중심인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이런 구조가 비장애인 중심이라고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이제야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게 하고, 저상버스를 도입하게 하고..... 이렇게 세상이 좋아지고 있는 게 그냥이 아니고, 21년이 넘는 고달픈 이동권 투쟁의 결과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늦게 알아서 미안했고, 목숨 걸고 싸워 만들어놓은 세상을 아무 생각없이 이용하며 살았던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영상으로만 보았던 오체투지1)를, 420 지하철 투쟁이 있던 날, 처음으로 눈앞에서 보았습니다. 휠체어에서 내려 온몸을 움직여 지하철을 타는 모습에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잘 움직여지지 않는 팔다리를 휘저으며 조금씩 기어가느라 얼굴에는 땀이 흐르고, 어깨에 오는 허리에 오는 통증과 주변에 있는 시민들의 시선을 온몸으로 감당하며 바닥에 엎드려있는 심정을, 저는 감히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이 무너져내렸습니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미안했습니다. ‘아이씨 사람을 이렇게까지 내모나....’ 싶어 한참을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7차 삭발식에 센터판 활동가들이 함께 했습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출근 전에 경복궁역에서 혜화역까지 ‘장애인권리예산 기획재정부 답변 촉구를 위한 삭발 투쟁’에 바쁜 일정이 없는 날에는 한 번이라도 더 참여하자 했습니다. 그리고 무시와 멸시로 가득한 욕설과 비난을 받으면서 매일 아침 삭발하고 온몸으로 기어서 지하철을 타야 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 애타는 마음을... 그 억울한 마음을...... 알아야 할 것 같았습니다. 피켓이라도 들고 서 있고 싶었고, 목소리라도 보태고 싶었습니다. 삭발을 하고 오체투지를 할 때 그냥 옆에 함께 있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참여하다보니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왜 지하철을 막고 삭발을 하고 오체투지를 하고, 죄없는 시민을 볼모로 잡냐는 억울한 소리를 들으면서도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길 지하철을 타야하는지를...... 그 절절한 마음을 조금은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권리였습니다. 먹고 싶은 것 먹고 가고 싶은 곳 가고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권리, 누구에게나 주어진 교육의 기회와 교육을 받고 일자리를 구하고 노동을 하고 세금을 내면서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당당하게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 살고 싶은 곳에서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 사랑을 나누며 즐겁게 살아갈 권리, 그렇게 주어진 소소한 일상을 살다가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할 권리,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권리라는 거창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당연한 삶을,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빼앗겼던 권리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센터판 권익옹호팀 조재범 활동가가 오체투지에 참여하였습니다.
‘장애인의 권리는 권리가 아닙니까? 장애인의 피해와 죽음은 피해가 아닙니까? 장애인을 죽이지 마십시오. 장애인도 자유롭게 이동하고 교육받고 지역에서 살고 싶습니다. 장애인의 인간다운 존엄함을 보장해 주십시오. 장애인도, 사람입니다’
‘용와대’로 가는 길 큰 대로에서 외쳤던 박경석 대표님의 발언은 제 마음속 깊숙히 저장되었습니다.
그렇게 함께 하다보니 삭발하는 모습도 오체투지하는 모습도 조금은 익숙해 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픔만 슬픔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체투지 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미안한 마음은 여전했지만, 그래도 함께 투쟁하니 즐겁고 재밌습니다. 새로운 활동가들을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욕하는 시민들에 대응(?)하는 방법도 나름 생겼습니다. 속으로 리듬을 탑니다.
21년 외쳤다. 이제 차별 그만해
21년 외쳤다. 차별 그만해
지하철 탑니다. 이동권을 보장해
버스를 탑니다. 이동권 보장
헤이~ㅎㅎㅎㅎ
예전에는 매일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뉴스를 보면서 ‘이놈의 세상이 어떻게... 사람이 일하다 죽는데 꿈쩍을 안하지...’ 라고 안타까운 마음으로만 그치고 그냥 일상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젠 장애인에 관련된 뉴스가 먼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립니다. 21년을 넘게 외쳤지만 여전히 국가는 기다리라는 말로 책임을 외면하고, 가족과 개인이 감당해야하는 책임만을 강요당하다 보니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혹은 가족에 의해 아까운 목숨들이 사라져갑니다. 감히 그 마음을 짐작할 수도 없고 예단할 수도 없지만, 그냥 이제는 안타까운 사연쯤으로 여기고 묵묵히 기억에서 사라질 때까지 침묵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쭈~욱~~ 또 다른 의미로 그냥 사람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차별없는 곳으로 이동해 보려고 합니다.
경복궁역에서 삭발식을 마치고 혜화역으로 이동해 마무리 집회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