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여름 131호 - 이웃사촌이 되고 싶은 나의 이웃 / 백구
이웃사촌이 되고 싶은
나의 이웃
백구
낮 수업 목요일 진(zine) 수업해요. 어디서나 '머쓱'한 사람입니다.
중심보다 주변부를 좋아하고 미끄러짐으로써 넓어지려고 노력해요.
연옥 님과 수진 님은 나의 이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10분을 걸어가면 연옥, 수진 님의 집이 나온다. 산책을 하다가 활동보조인의 양손을 잡고 걸어가는 두 사람을 우연히 마주치기도 했다. 반가움에 연옥, 수진 님에게 ‘안녕하세요. 저 백구예요. ‘인사 했지만 머쓱하게도 야학이 아닌 길거리에서 마스크를 쓰고 마주친 나를 멀뚱하게 보기만 하셨다. 그것이 또 우습다. 4년을 만났어도 나는 아직 낯설고 새로운 사람이라는 것이 재밌다.
연옥, 수진 님의 집에 방문한 건 지난 2월 겨울이었다. 딸기케이크를 하나 골라 터벅터벅 걸어 연옥, 수진님의 집으로 갔다. 초인종을 누르고 문이 열리고 빼꼼히 얼굴을 내미는 연옥님과 거실 저편의 심기가 불편한 듯 가방을 메고 서 계신 수진님이 보였다. 연옥님은 나를 보고 미소가 번졌는데 수진님은 날카롭게 곤두선 표정이었다. 평소 노들에서 만나는 연옥님은 다가가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다가오는 사람이고 수진님은 수줍은 표정으로 춤사위를 뽐내는 사람이었다. 좀처럼 기분이 풀리지 않는 수진 님을 뒤로 한 채 식탁에 연옥 님과 나, 자립주택 코디네이터 선생님이 둘러앉아 딸기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붙였다. 녹는 초를 보며 수진님을 애타게 불러도 수진님은 가방을 멘 채 집 안 이곳저곳을 서성이셨다. 딸기 케이크를 자르고 나눠 먹으며 연옥, 수진 님의 집을 둘러보았다. 방문에 붙어있는 종이접기와 장식들, 연옥님 방 한편에 가득 붙어 있는 사진과 액세사리들. 연옥 님의 바짝 묶은 머리에 달린 예쁜 머리방울과 삔처럼 연옥 님의 취향들이 방 안 곳곳에 꽂혀있었다. 사람들과 찍은 사진, 좋아하는 가수, 연옥 님의 그림, 받은 꽃, 인형들이 아기자기하게 스크랩 되어 있었다. 반면 수진 님의 방은 수진 님의 까만 가방처럼 속을 알 수 없게 모든 물건들이 옷장 속에 자물쇠로 굳게 닫혀 있었다. 성향이 너무 다른 두 사람이 한 집에 함께 살고 있다. 2019년에 함께 자립을 하신 연옥, 수진 님은 4년째 함께 지내는 룸메이트다. 가깝게 지내는 만큼 싸우는 일도 많지만 밖을 나설 때 제일 먼저 손을 잡는, 의지하는 사이이기도 하다.
왼편에는 방문에 크리스마스리스, '이연옥'의 이름이 써있는 작품과 그림들이 붙어있다.
벽에 사진들이 줄지어 붙어있고, 꽃, 엽서, 인형, 열쇠고리, 생일모자, 노란리본으로 꾸며져 있다.
연옥 님은 작년부터 한글을 배우기 시작하셨다며 한글을 빼곡히 쓴 노트를 꺼내 보여주셨다. 자립주택 코디네이터 선생님 말로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한글 쓰기부터 하신다고 한다. 오이, 우산, 수박이라고 정갈하게 적힌 단어들. ‘기한한한리한리용한수히히한수백구히힌한~’으로 빼곡히 적힌 쪽지를 연옥님에게 전해 받을 때도 뜻은 모르지만 나의 안부를 묻는 마음이 전해져 찡~ 했는데 한글을 배우는 연옥 님이 건넬 문장들이 궁금해진다.
네모공책에 '비누로 닦습니다.', '비행기를 탑니다.'의 문자가 5번씩 반복해 쓰여있다.
클리어화일에 꽃과 사람 그림이 겹겹이 넣어져 있다.
야학에서 두루마리 휴지를 손에 들고 살풀이춤을 추거나 소고를 두드리며 교실을 누비는 수진님으로 만나다가 집에서 온몸으로 화를 표현하고 외치는 수진 님은 낯설면서도 감정과 몸의 표현의 솔직함이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서울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살면서 눈 인사를 나누거나 아는 사람은 없었다. 투명 인간 처럼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집으로 들어가 조용히 밖으로 나오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다 자립하신 지선님, 연옥님, 수진님이 나의 이웃이 되었다. 동네 산책길에 손 흔들고 인사를 나누며 아는 척 하고 싶은, 이웃사촌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생겼다. 비록 매번 나를 몰라보고 새로워 하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이웃사촌으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