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봄 130호 - [노들아 안녕] 불현듯 / 서한영교
노들아 안녕
불현듯
서한영교
그러니까 그게, 요즘 제가 좀 이상합니다.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 통로. 걷다가 불현듯, 내 앞에 걷고 있는 무수한 사람들의 반듯한 직립보행이 묘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장애 보행자 하나 없는 일상의 질서정연함에 놀랄 때가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 들어가는데 유난히 높은 화장실 문턱 앞. 화장실 문손잡이를 잡다가 불현듯, 이 문턱을 넘지 못할 야학에서 만난 동지들의 표정이 스칠 때면 이 평화로운 아침이 난감해지기도 합니다. 노들 야학에 온 뒤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어떤 세계감이 나의 일상을 불현듯 침범합니다.
그러니까 그게, 하루에도 몇 번씩 익숙하고, 편안한 이 세계가 불현듯, 기울어질 때가 있습니다. 말을 알아듣기 위해 허리를 숙여 귀를 기울일 때, 주먹 악수를 위해 어깨를 기울일 때, 보행 안내하며 겨드랑이 아래로 손을 기울일 때, 지하 방에서 코로나 격리 중인 학생의 안부를 물으며 먼발치에서 눈을 기울일 때, 이 세계도 불현듯, 함께 기울어집니다. 내가 누리던 세계의 기울기가 변경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노들야학에 온 뒤부터 그랬습니다. 나의 아름다운 일상이, 장애 민중을 시설과 방구석으로 배제한 채 이루어진 것이라는 감각이 스칠 때면 불현듯, 이게 다 내가 누리고 있는 특권이라는 생각에 불끈, 가닿습니다. 그러고 나면, 이 도시가, 이 문명이 전속력으로 서늘해집니다. 질문은 쏟아지고, 응답을 피하고 싶지 않아서 책과 현장, 외침과 중얼거림 사이를 오가며 세계를 새로 익히며 배우고 있습니다.
제게 가르침을 주고 삶을 이끌어온 것은 체험이 아니라 그 체험을 이야기하는 태도였습니다. “나를 거부한 세계를 나도 단호히 거부한다.”(시인 장 주네)고 외치며 투쟁하는 노들의 혁명가와 전사들의 태도를 통해 오늘도 불현듯, 배우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