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봄 126호 - [고병권의 비마이너] 탈시설지원법을 제정하라 / 고병권
[고병권의 비마이너]
탈시설지원법을 제정하라
고병권
맑스, 니체, 스피노자 등의 철학,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런저런 책을 써왔으며, 인간학을 둘러싼 전투의 최전선인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자리를 잡고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국가의 한계, 자본의 한계, 인간의 한계에 대한 공부를 오랫동안 할 생각이다.
이것은 연쇄살인 사건이다. 매년 동일 수법으로 지역을 넘나들며 사람들을 죽이는데도 범인이 잡히지 않고 있다. 이번 피해자는 50대 여성 A씨. 범행은 서울의 한 대학교 주차장. 피살 현장에는 가까스로 죽음을 면한 딸이 있었다. 범인은 딸을 노렸는데 어머니가 딸을 혼자서 지켜내다 결국 희생당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주 발달장애인 자녀를 곁에 두고 자살한 어머니의 이야기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두었다는 말만으로도 어머니의 신변비관, 우울증, 심지어는 자살조차 납득이 된다. 그래서 이 사회에 화가 나고 또 절망한다. 무슨 대역죄라도 진 건가. 딸을 혼자 돌본 저 어머니도 어느 순간 선택지를 받았을 것이다. 혼자 죽거나 함께 죽거나 시설에 보내거나. 즉 생명을 끊거나 관계를 끊어야 한다. 그러나 관계를 끊는 것도 생명의 길은 아니다. 숨만 쉬는 것이지 죽어가기는 마찬가지니까. 그래서 돌봄을 포기한 부모들은 뿌리가 썩은 식물처럼 화창한 날에도 시들어가고, 시설에 수용된 장애인은 웃음 터지는 TV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동물원의 동물처럼 눈빛이 흐리다.
차 안에 홀로 남겨진 자녀를 어떻게 할까. 구청에서는 “아빠가 보호할지, 시설에서 보호할지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경찰은 일단 “양육권이 있는 아버지에게 인계”했다. 아버지한테 보낼까, 시설에 보낼까. 정말 섬뜩한 말이다. 마치 연쇄살인범의 혼잣말처럼 들린다. 아버지인가, 자녀인가. 바로 죽일 것인가, 말려죽일 것인가. 그런데도 저 말이 아무렇지 않게 들리는 이유는 살인이 자살로 위장되어 있고 살인범이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최근 도로시 그리피스(Dorothy Griffiths) 등이 편찬한 <어려운 꿈>(A Difficult Dream)이라는 책을 소개받았다. 이 책의 부제는 ‘중복장애가 있는 발달장애인의 시설화를 끝내기’이다. 인지장애와 신체장애를 함께 가진 최중증장애인들이 지역 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실천적 방안을 모색한 책이다.
책 제목이 ‘어려운 꿈’인 이유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중복장애를 지닌 발달장애인의 탈시설화라니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그런데 이 짐작은 절반만 맞다.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활동가들에게 시설의 완전한 폐쇄는 오래된 꿈인데 지금은 현실화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어려운 꿈’이다.” 장애활동가들에게는 현실화되어가고 있는 꿈이 이 변화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룰 수 없는 꿈’ 혹은 ‘꿈같은 이야기’로 들린다는 것이다.
특히 시설수용자의 가족들이 그렇다. 가족들은 대체로 탈시설에 부정적이다. 시설을 폐지하면 돌봄의 부담이 다시 가족에게 떨어질 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가족’과 ‘시설’밖에 없는데, 시설이 없어지면 결국 가족 아니겠는가. 게다가 탈시설 논쟁은 가족들에게 그 날의 비극, 즉 죽지 못해 가족관계를 끊었던 괴로운 기억을 되살린다.
그런데 <어려운 꿈>의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가족들은 자기들 가족과 비슷한 사람들이 지역사회에서 지원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실제로 최근 미국의 탈시설 장애인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제임스 콘로이에 따르면, 탈시설 초기에는 가족의 절대다수(72%)가 반발했으나, 지역사회에서 안정적인 정착이 이루어진 후에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가족의 절대다수(75%)가 탈시설에 만족했으며, 시설 수용 때보다 나빠졌다고 말한 가족은 단 한 사례도 없었다.
한국에서도 십여 년 전부터 탈시설 투쟁이 본격화됐고 최근 서울 등 일부 지자체가 여기에 호응해서 지원 정책을 펴나가고 있다. 다만 법적 근거가 미비하고 국가 차원의 정책과 예산 지원이 없기에 초보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수십 년이 걸려도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이제는 국가가 탈시설을 천명하고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
마침 국회에는 지금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어 있다. 이 법률안 제4조 1항은 다음과 같다. “장애인은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나와 지역 사회에서 살 권리가 있다.” 인간은 누구나 사회에서 살 권리가 있으며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이제 정부와 국회가 이 당연한 사실이 장애인에게도 해당한다는 것, 즉 장애인도 인간이라는 것을 선포해야 한다. 지난 수십 년간의 죽음을, 이 끔찍한 연쇄살인을 멈추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제발, 이제는 끝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