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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비마이너

상원 의원과 전역 하사

 

 

 

 

고병권

맑스, 니체, 스피노자 등의 철학,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런저런 책을 써왔으며, 인간학을 둘러싼 전투의 최전선인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자리를 잡고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국가의 한계, 자본의 한계, 인간의 한계에 대한 공부를 오랫동안 할 생각이다

 

 

 

 

 

 

 

2012년 미국 아메리칸 대학의 한 학생이 학생회장 임기를 마치며 신문에 「진짜 나」(The Real Me)라는 글을 기고했다.

그는 스스로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아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비밀을 고백했다.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 그는 오랫동안 자기 안의 여성을 억누른 채로 남성으로 살아왔다고 했다. “사소한 일이든 짜릿한 일이든 나는 내가 해낸 일을 여성인 내가 행하는 모습으로 다시 상상함으로써만 즐길 수 있었습니다. 내 삶은 그런 식으로 내 곁을 지나쳐 갔고, 나는 내가 아닌 누군가로서 삶을 허비해야 했습니다.”

글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 그가 벽장문을 열고나올 용기를 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내가 도전하지 않는다면 내 꿈과 정체성은 서로 배타적인 채로 남고 말 겁니다.” 꿈을 선택하면 정체성을 감춰야 하고 정체성을 선택하면 꿈을 포기해야 하는 세상, 자신이 아닌 채로만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세상을 청년은 견딜 수 없어했다.

꿈을 위해 노력했기에, 그리고 그 꿈이 그만큼 다가왔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는 훌륭한 정치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에 다니면서 2008년 델라웨어 주의 주지사 선거와 2010년 검찰총장 선거에 스태프로 참여했다. 2011년에는 아메리칸 대학의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그렇게 정치가의 꿈을 키워왔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더 깊은 곳으로 몰아넣었다. 사람들의 지지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진짜 나’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은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다. 꿈에 다가갈수록 그 꿈에서 자신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자신을 부인함으로써 얻은 꿈은 자신의 꿈일 수 없다.

아마도 이 순간, 그러니까 누구도 꿈을 위해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게 된 이 순간이 좋은 정치가 한 명이 탄생한 순간이었던 것 같다.

 

 

고병권_상원의원.jpg

 

 

 

이번에 상원 의원에 당선된 세라 맥브라이드의 이야기다. 그는 미국 역사상 트랜스젠더임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당선된 최초의 상원 의원이다. 모든 언론이 트럼프냐, 바이든이냐에만 눈을 팔고, 바이든의 당선이 한국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만 떠들어대고 있는 시점에, 나는 맥브라이드의 당선이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이라도 좀 미쳤으면 하는 마음에 이 글을 쓴다.

미국 사회든 한국 사회든 바이든 이상으로 맥브라이드의 당선이 품고 있는 미래가 크고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우리 사회에도 정체성과 꿈이 배타적인 것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던 청년이 있다. 변희수 하사. 그는 훌륭한 군인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 꿈이 실현된 순간, 꿈을 위해 억눌렀던 정체성이 그를 괴롭혔다.

그에게도 ‘진짜 나’를 부인하고 이룬 꿈,

자기 자신이 아닌 누군가로서 이룬 꿈이 있었다. 자신이 꿈꿔온 군인으로 지내면서도 그는 깊은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의 꿈을 살아가는 사람이 그 자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트랜스젠더임을 고백하고 군인으로 남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성전환 수술을 한 그를 강제 전역시켰다. 그의 성이 여성으로 바뀌었다는 걸 이유로 들지는 않았다. 여성이라는 사실이 군복무에서 배제해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국방부가 강제 전역의 이유로 제시한 것은 성별 판정이 아니라 장애 판정이었다. 군병원의 판정에 따르면 성전환 수술을 받은 변하사는 3급 장애인이다(군병원의 판정은 장애에 대한 저급한 인식을 드러낸 매우 수치스러운 것이다).

요즘 미국이 선진국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났다는 사람들이 많다. 코로나19 전파 상황도 그렇고,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운동을 촉발시킨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도 그렇고, 트럼프 대통령이 보인 기행에 가까운 행동들도 그렇고, 그런 그를 지지하는 미국인들이 많다는 점도 그렇고. 미국에 대한 실망을 넘어 미국을 비웃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만큼 한국이야말로 선진국이고 한국인이라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이 늘었다.

도대체 우리는 한 사회의 역량과 미래를 무엇으로 재는 걸까. 그런 잣대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런 게 있다면,

맥브라이드를 압도적인 지지로

상원 의원에 당선시킨 사회와 변희수 하사를 장애인이라며 강제 전역 시킨 사회의 거리는 상당할 것이다. 또한 어떤 사회를 함부로 비난하고 조롱하는 것은 삼갈 일이지만,

그럼에도 “남성 성기의 제거가 심신장애로 분류되는 법적 근거를 설명해 달라”는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요구는 내가 보기에 우리 사회가 받아 마땅한 조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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