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겨울 125호 -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놀이터, 통 합 놀 이 터 만 들 기 / 김필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놀이터
통 합 놀 이 터 만 들 기
김필순
통합놀이터 법개정 추진단
페이스북을 하다보면 가끔 외국의 저상버스나 신기한 형태의 경사로를 볼 수 있다. 만화 책 속에서 나 나올 것 같은 상상놀이터, 또 여기서 소개할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놀이기구를 접할 기회가 있다. 마로니에공원에 설치된 휠체어그네도 그렇게 페이스북에서나 볼 수 있는 놀이기구를 공원에 설치해보 자는 것에서 출발했다.
2018년 봄, 유리빌딩으로 연결되는 마로니에공원 후문에 파란 펜스가 쳐지고 뭔가의 공사가 시작 되었다. 이게 뭘까 하는 찰나에 현수막이 걸렸다. 유아놀이터를 설치합니다... 대학로 특성상 주거시설 도 부족하고 주말을 제외하고는 아이들 보기 힘든 이 동네에 웬 놀이터.. 대부분 그렇게 생각했지만 투 쟁대장 박경석 고장쌤은 그 현수막을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마로니에공원을 많이 이용하는 사람이 우 리 장애인인데 장애인도 이용할 수 있는 휠체어그네를 설치해달라고 종로구청에 요구하자고 했다.
값비싼 휠체어그네를 마로니에공원에 설치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순탄했다. 우리는 휠체어그네를 설치하고 싶었고, 종로구청 사회복지과는 주민참여예산으로 받은 편의시설 관련 예산이 있었고, 건축 을 전공한 종로구청장은 특색 있는 놀이터에 관심이 많았고 게다가 낙산 아래 살고 있었다. 이런 조건 속에서 생각보다 순조롭게 마로니에공원에 휠체어그네가 설치되 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현행법상 휠체어그네는 어린이 놀이시 설에 설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노들센터를 주축으로 공익변호사 그룹과 아동인권단체가 모여 ‘통합놀이터 법개정 추진 단’이 꾸려졌다.
관련 법개정을 준비하면서 통합놀이터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활동도 시작했다. 2019년 초여름 마로니에공원에 팝업놀이터를 열고, 통합놀이터 관련법 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도 열고, 서명활 동을 통해 통합놀이터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알리고 통합 놀이터의 관점에서 본 놀이터 안전기준의 문제는 무엇인지, 아동 의 놀 권리 측면에서 놀이터 관련 법개정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알렸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 8월,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발의되었다. 이 개정안 또한 2019년부터 통합놀이터 에 관심있는 국회의원이 적극적으로 대표발의 하였다. 하지만 순 조로움은 여기서 끝이었다. 예산이 쑹풍쑹풍 들어가는 가는 법안 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국가·지자체에 장애 어린이의 놀이시설 조 성과 관련 시설 및 기술기준을 마련하라는 의무조항을 행정안전 부가 거부하면서 법안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 은 몇 년간 이에 대해 문제제기 받은 산업통상자원부가 관련 인증기준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 이다. 그리고 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니 통합놀이터 법개정 추진단에 인증기준에 대한 방향성과 의 견을 듣고 싶다고 자문을 요청했다.
그럼 통합놀이터가 뭘까? 휠체어그네가 설치된 놀이터가 통합놀이터가 아니라 ‘모든 어린이가 장 애유무나 장애정도에 따라 차별받지 않고 완전히 참여하여 놀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놀이터’를 통합 놀이터로 정의한다. 휠체어 탄 채 이용할 수 있는 휠체어그네나 회전무대(일명 뺑뺑이), 몸을 가누기 힘든 아이도 탈 수 있는 바구니그네(스윙그네라고도 불림, 한번 누워보면 그 느낌을 잊을 수 없음), 폭 이 넓어 아이와 보호자가 같이 탈 수 있는 미끄럼틀(아직 실물을 보지는 못함), 놀이터 바닥에 평평하 게 깔린 트램펄린(일명 방방이),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고무바닥과 경사로가 설치된 놀이터를 통합놀 이터라 부른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통합놀이터를 알리는 팝업놀이터와 같은 오프라인 홍보가 아닌 스토리를 담 은 온라인 홍보에 주력했다. 노 들센터 홈페이지에 들어오면 놀 이터에 대한 경험을 담은 통합 놀이터 이야기 글이 있는데 그 중 ‘사실, 알고 있었어요. 저는 시소를 탈 수 없었다는 걸. 애초에 놀이터에는 내가 이용할 놀 이기구는 없다는 걸요’라는 장 애인당사자의 글을 접할 수 있다. 그렇게 일상에서 장애인은 분리되고 차별을 경험한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유튜브 채널에 접속하면 ‘통합놀이터를 찾아서’라는 놀이터 방문기 영 상이 있는데 거기서 발달장애인 당사자는 ‘놀이터에 가면 친구들이 놀렸지만 그래도 나 에게 놀이터는 소중하다’라고 말한다. 놀이터 하면 떡볶 이가 생각난다는 그들의 이야기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 같이 놀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서로의 다름을 자 연스럽게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도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통합놀이터 관련 활동을 하면서 내 머리 속에 자리잡은 한 장면이 있다. 삐까뻔쩍한 대형놀이 시설이 아닌 숲이 듬성듬성 있는 동네놀이터에 서 그네 타는 아이 옆에서 휠체어를 탄 채 그네 타는 노인이 함께 있는 모습. 내가 꿈꾸는 나 의 노후 그리고 내가 꿈꾸는 일상의 모습이다. 2018년보다 그 일상이 현실 가까이 왔지만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 관련법 개정 활동을 2021년에도 통합놀이터 법개정 추진단에 서 이어갈 계획이다. 그리고 하나 더, 마로 니에공원 휠체어그네 옆에 뱅뱅이도 설 치하고 싶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