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가을 124호 - 노들장애인야학 27년째 역사를 맞다 / 천성호
노들장애인야학 27년째 역사를 맞다
개교기념식 행사 풍경
글 천성호
야학에서 함께 만나, 함께 꿈꾸고, 집회도 함께 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차별 없이, 평등하게,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꿈꾸고 활동하고 있다.
사진 정택용
노들 장애인 야학의 개교 27주년을 기념한다는 것은 야학이 문을 열고 27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것 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노들장애인 야학 의 27년간 배움과 투쟁의 역사를 기념하는 것이고, 그 공간 속에서 함께 배우고, 투쟁한 사람들의 열정 과 노력을 기념하는 것이다.
노들야학의 역사(歷史)는 단순히 지나온 것 만이 아니다. 그곳에는 노들 사람들의 삶과 눈물이 있기 때문이다. 노들의 개교기념식은 작년에도 있었고, 올 해도 있고, 내년에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매년 개교 기념식을 소박하게, 때로는 시간의 의미를 두고 행사 를 기획하지만, 매년 8월 8일이 우리에게 와 닿은 방 식은 다르다. 올해는 특히, 최중증장애인의 권리 중 심 서울 일자리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같 이 행사를 진행하려고 했지만, 우천으로 연기되고 개교기념식만 진행되었다.
개교기념식은 그동안 교사들이 준비하는 행사였 는데, 올해는 총학생회와 공동으로 준비해 진행했 다. 총학생회-노들 학생들은 일상의 투쟁과 배움의 과정에서 노들야학에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야학 운영의 한 부분으로 책임과 권리를 가진다. 총 학생회의 권리와 의미가 생기는 지점이다. 또한, 총 학생회 자치활동과 민주주의의 실천이라는 면에서 도 행사를 공동으로 준비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었 다. 지난해 26번째 개교기념식 자료를 바탕으로 조창길 학생회장, 박지호 부학생회장, 조호연 총무, 나 이렇게 네 명이 같이 개교기념제 1차 회의를 진행하였다. 이 회의를 통해 나온 것을 바탕으로 기념기념제 행사를 정하고, 축사하실 분을 구하고, 행사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였다.
개교기념식 당일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걱정은 되었지만, 다행히 오후가 되자 비는 올 것 같지 않았 다. 기념식이 예정된 5시가 되자, 마로니에 공원 이음 센터 공연장 앞에 야학의 학생과 교사, 다른 단체의 손님들이 오시고, 자리가 조금씩 채워졌다. 코로나 19 예방 조치로 참석자들의 발열 체크를 하고, 기본 정보를 기록하는 예방 차원의 조치도 진행되었다. 그 래서 5시가 되었지만, 어수선했다. 야학의 행사는 항 상 어수선하다. 그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노들야학 27주년 개교기념식 시작을 알리고, 먼 저, 야학의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는 순서가 있다. 아차산 밑의 정립회관 탁구장에서 시작된 야학, 정 립회관 민주화 투쟁, 정립회관에서 쫓겨나 마로니에 공원에서 천막을 치고 “길바닥에 나앉아도 수업은 계속된다”라고, 한겨울 천막에서 수업을 진행하였 다. 지금의 야학 공간은 그 천막야학 투쟁의 성과이 기도 했다. 2003년 이동권 투쟁, 2006년 활동지원 사 제도화 투쟁, 2009년 탈시설 투쟁, 2012년 8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 공동행동”으 로 시작된 1842일간의 투쟁 등, 장애해방의 투쟁에 서 노들 장애인 야학은 항상 그 자리를 함께 지켜왔 다. 그것이 27년간의 노들 야학의 역사이다.
야학 소개가 끝나고, 장애인문화예술원 “이음” 안 중원 대표님은 “노들의 투쟁을 함께 보면서 항상 노 들과 함께하겠다”라는 말로 축사를 하였다. 노들야 학의 친구 같은 성미산학교의 최경미 선생님, 발달장 애청년허브 “사부작”의 소피아, 이정찬 님이 인사를 해 주셨고, 이정찬 님은 축시를 하였다. 미야자와 겐지1 님의 “비에도 지지 않고”라는 아름다운 시를 낭 독해 주셨다. 노들장애인야학이 “비에도 지지 않는” 그런 야학, “모두에게 바보라고 불리는” 그런 우직한 사람들이 되라는 당부처럼 들렸다. 성미산학교와 노 들야학이 서로에게 해방된 연결로 존재하기를 바란 다는 말씀이었다.
노들야학의 총학생회 소개와 인사도 있었다. 조창 길 총학생회장님은 축사를 통해 “우리의 권리 투쟁 에 모두가 함께 나가자”라고 축하해 주셨다. 이어서 故 신지균 님의 장학금 증정식이 있었다. 신지균 님 은 교장샘의 어머니로 재작년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가족들이 장학금을 야학에 기부하여 매년 개교기념 일에 “신지균 장학금” 증정식을 진행하고 있다. 노들에서는 배움과 투쟁의 모범이 되라는 의미에서 총학 생 회장단 3명에게 주는 장학금이었다.
노들 음악대의 축하 공연이 시작되었다. 한받 과 노들야학 학생으로 구성된 노들테크노전사들 공 연이 되었다. 한받의 노란색 밍크 코트와 쫄바지라 는 톡톡 튀는 의상으로, 학생들은 ‘노들음악대’라고 쓰인 축구단 유니폼 같은 꽂분홍색 단체복을 입었 다. 모두 4곡을 음악대가 같이 불렀다. “노들테크노”, “노들의 투쟁”, “불어라 노들바람”, “노들 함께”를 신 나게 불렀다. 한받 님은 노들야학에 맞게 노래를 고 치거나 개사를 해서 학생들과 손님들과 함께 신나게 춤을 추며 불렀다. 노들음악대는 중증의 장애인들에 게 문화예술이 무엇이고, 노동이 무엇인지를 알리고 선포하는 공연이었다.
노들음악대의 공연이 끝난 뒤, 박경석 교장샘의 축사가 이어졌다. 명희샘이 선물한 축하의 꽃머리띠 를 머리에 두르고, “오늘이 과거에서 이어오는 것을 잘 알기에 평등하고, 차별 없는 미래를 위해 오늘을 감사한 마음으로 잘 지켜내겠다”라고 축하했다. 축 사 명단에는 없었지만, 이날 “부양의무제 완전한 폐 지”를 위해 광화문에서 머리를 삭발한 이형숙 노들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님의 축사도 있었다. “빈곤 의 사슬, 폐지했으면 좋겠습니다. 중앙생활보장위원 회 회의에서 문건으로 부양의무자 완전 폐지 계획을 담으십시오! 기재부는 돈 가지고 장난치지 마십시오! 우리도 존엄함을 가진 이 땅의 인간으로 살고 싶습 니다. 마음을 모아 끝까지 투쟁합시다”라고 외쳤다. 개교기념식도 투쟁의 선언으로 가득한 날이었다.
개교기념식 행사가 모두 끝나고 모두가 모여 노들 센터와 성미산학교에서 선물한 케이크에 불을 켜고, 27주년 기념행사를 마쳤다. 그리고 모두가 야학으로몰려가 잔치 날에 빠질 수 없는 잔치국수(들다방 식 구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한)를 맛있게 먹고, 잔치 날 에 빠질 수 없는 막걸리(종헌 샘이 “느린 마을 양조 장”에서 야학까지 직접 끌고 온)를 먹으며 개교기념 식 잔치를 축하하였다. 이렇게 노들야학 27주년 개 교기념일이 끝났다.
노들장애인 야학의 역사는 개교하면서부터 배움 과 투쟁의 역사이다. 그래서 노들야학의 개교기념일 은 매년 8월 8일이 아니라, 1년 365일 모두이며, 일 상을 한결같이 배우고, 투쟁하는 하루하루가 노들 야학의 진짜 개교기념일이다.
1 미야자와 겐지(1896~1933)는 일본 동화작가이자 시인, 교육자이다. 교사생활을 하던 그는 농민들의 아픔을 함께하기 위해 농업에 뛰어들었으며, 이후 농업 강의, 벼농사 지도, 비료 개발 등의 활동을 펼쳤다. 100여 편의 동화와 『봄과 수라』 등 400여 편의 시를 남겼다. 특히 『은하철도의 밤』은 그의 대표작이며, 애니메이션 <은하철도999>의 원작으로 오늘날까지 인기를 얻고 있다.
성미산마을 사람들의 축하 인사 성미산학교의 최경미 선생님과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의 소피아, 이정찬 님
우리가 오늘 여기에 축하를 하러 온 이유는 노들의 해방이 성미산마을의 해방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 니다. 성미산마을도 여기 청년들과 좋은 삶을 가꾸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27년동안 지 지 않고 여기까지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미야자와 겐지의 <비에도 지지않고>라는 시로 축하의 마음을 전합니다.
비에도 지지않고 _미야자와 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않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욕심은 없이 결코 화내지 않으며 늘 조용히 웃고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채소를 조금 먹고 모든 일에 자기 잇속을 따지지 않고 잘 보고 듣고 알고 그래서 잊지 않고 들판 소나무 숲 그늘 아래 작은 초가집에 살고
동쪽에 아픈 아이 있으면 가서 돌보아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 있으면 가서 볏단 지어 날라 주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말라 말하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별거 아니니까 그만두라 말하고
가뭄 들면 눈물 흘리고 냉해 든 여름이면 허둥대며 걷고 모두에게 멍청이라고 불리는 칭찬도 받지 않고 미움도 받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그러한 사람으로 노들과의 우정을 약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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