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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위 2015.01.24 00:36
    노들 그리고 사람 ‘미니미니’
    그랬으면 좋겠어. 우리 참 다르지만 사랑했으면 좋겠고, 서로를 불렀으면 좋겠어. 서로 참, 원했으면 좋겠어. 보고 싶을 거야. 잊지 않을 때까지.
    연말.. 그리움의 시즌이다. 밤이 깊을수록 별들이 더 총총히 빛나듯 이 추운 계절, 몸 밖이 추워질수록 마음속 그리움의 불꽃은 그 온기를 더하나보다. 그래서 그리운 사람 하나를 다시 불러본다. 위 글은 노들야학 교사지원서의 지원동기란에 “나만을 위한 삶은 이제그만,…. “이라ㅣ고 적었던, 모음의 아래획과 세로획이 유난이 긴 글씨로 말들을 솔솔솔 잘 풀어냈던, 오면서부터 갈때까지 풀꽃 냄새를 풍기다 간 안민희 교사가 야학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글이다. 그 미니미니의 노들에 대한 짧은 단상. 2008버전.
    짧은 대화(2008년 노들바람 특집호에 실렸던 글)
    참, 좋지 않은 기억력이다. 눈을 딛고 흔적들을 더듬어 본다. 손가락 끝에 오돌오돌 매만져지는 오름들. 눈을 연다. 방금, 무엇이었지? 다시 눈을 닫는다. 손가락은 오름들 사이를 헤맨다. 아주 오래 전 흘러가버린 무언가의 흔적. 낡아버린, 메마른, 그러나 지워지지 않을 그것들. 어떤, 흐름이었을까?
    오랜만, 이라고 말을 시작해도 될까요? 괜찮아요. 아니 좋아요. 나 그 말, 참 좋아해요. 사실 내 일기의 대부분은 그 말로 시작해요. 워낙 오랜만에 그 녀석을 만나거든요. 그러면서도 참 좋은건, 그 녀석한테는 숨기지 않고, 걸러내지 않고 말할 수 있다는 거예요. 좋은 친구죠. 당신도, 오랜만이에요.
    스무살 시절들은, 무엇이었나요? 내 스무살 시절들은 통 잘라내서 햇볕 잘 드는 곳에 바짝바짝 말려내면, 당신이 남을까요? 젊음에 대해서는 좋아하는 말이 하나 있어요. 김산 알아요? 그이가 그랬어요. ‘나는 내 젊음을 어디에선가 잃어버렸다.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나도, 그럴 수 있다면 그러고 싶어요. 내 스무살 시절들은, 어디엔가 있을 거에요.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기꺼이 날 용서할 거예요.
    처음은, 어땠어요? 밤이었고, 봄이었고, 길이었어요. 언덕길, 어떤 꽃향기를 따라 걸었던 것 같아요. 언덕 끝에 쓰러질 듯 겨우 자신을 지태하고 있는 칠 벗겨진 철문이 있었죠. 언덕 끝, 거기는 정상꼭대기)이 아니었죠. 정상(꼭대기, 바름)일 수 없는 곳, 지금 생각하면, 그건,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었던 것 같아요. 알 수 없는 무엇이 저를 데리고 갔다고 밖에는 설명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사실, 저는 냄새를 거의 못 맡거든요.
    두렵지, 않았어요? 그랬을 지도 모르겠는데, 크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두렵잖아요. 사실 그 때 난, 오히려 아주 많은 것들을 버리려고 했어요. 시작이가는 건, 조금씩 버려나가는 작업니 아닐까도 싶어요. 나에게 당신은, 그러기에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많은 순간, 당신을 기억해요. 아마도 그럴 거예요. 있었을 거예요. 없는 것 처럼 (웃음). 자주 듣던 말 중에 ‘어, 너 있었네?’ 이 말 참 많이 들었어요. 존재감 없는 캐릭터, 이떤 녀석이 저에 대해 콕 집어냈던 간단명료하고 단순명쾌한 정의였죠. 그래도 그 말, 나 또 참 좋아해요. 아마 지금 내안의 누군가는 살짝 웃고 있을 거예요. 아주 오래전, 내가 하나의 점으로 시작했을 때부터 그렇게 정해진 것처럼, 그이는 내가 그리 살기로 결심했다고 굳게 믿고 있죠. 그리고 충고를 덧붙이는 것도 잊지않죠. 되도록 흔적을 남기지 말 것. 내 안의 또 다른 누군가는 그 말에 마음 아플거예요. 누군가로부터 존재를 인정받는건, 참 기쁜 일 이잖아요?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도 그렇고. 계속 그래요. 이 지루한 대결은 끝을 모르죠.
    늘, 흔들리던 모습이 선해요. 미치지 못했어요. 미칠 수 없었죠. 내가, 너무나 시퍼렇게 살아있었거든요. 시작은 참 단순했는데, 사실 나를 버리지 못한 거죠. 그래서 계속, 담장 위를 걷는 것처럼 불안하게 주변을 맴돌았던 것 같아요. 지금의 나는, 조금은 달라졌다고 말할 수도 있는데, 그래서, 당신한테, 미안해요.
    소주 마실 때 무슨 생각해요? (망설임없이) 아무생각 없어요. 허, 이 말이 참, 이리도 당당하게 나올 줄이야. (잠시후) 잊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아요. 뭐냐고 물어보고 싶은 거죠, 지금? 글쎄, 무엇을 잊고 싶었을까요.
    사람이었다.
    아까부터 흥얼거리던, 그 노래는 뭐죠? 겨울나무요.’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이렇게 시작하는, 혹시 이 노래 2절 알아요?(노래를 부른다.) ‘평생을 살아봐도 늘 한자리 넓은 세상 얘기도 바람께 듣고 꽃 피던 봄여름 생각하면서 나무는 휘파람만 불고 있구나.’ 나, 이말도 참 좋아해요. 평생을 살아봐도 늘 한자리, 평생을 살아봐도 늘 한자리, 늘, 한. 자. 리. 그런 생각 했었어요. 나무는 바람의 존재를 알려주는 친구고, 바람은 나무에게 세상 이야기 들려주는 친구이겠다 싶었죠. 그런데 어느 날 안 게 갑자기 그 사실에 가슴이 베어낸 듯 아팠어요. 바람은 나무에게 머물 수 없잖아. 나무는 바람을 보내야만 하잖아. 머무른다면, 보내지 않는다면, 바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바람을, 좋아해요? 많이 좋아했죠. 아주많이. 지금도 물론 좋아해요.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요새는, 몸에서 마른 먼지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바람이 분다면, 아주 짧은 순간에 허공으로 흩어질, 그런 아무 점성 없는 덩어리마냥, 바람이, 데려다 주겠죠, 어디든.
    내가, 싫어요? (크게 웃음) 늘 그렇게 대놓고 묻던 사람이 있었어요. 싫지 않아요. 미치도록 좋아하지도 않지만. 슬픈 일이죠.
    비가, 올 것 같죠? 후둑후둑, 잠깐 비가 내렸다. 우리도 저렇게 살면 좋을 텐데. 바닥에 점점이 자기 존재의 흔적을 남기던 빗방울들은 어느덧 경계가 없었다. 온 대지가 비로 뒤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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