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여름 123호 - 코로나19, 한 명도 남겨두지 않는다 / 천성호
코로나19, 한 명도 남겨두지 않는다
천성호
노들야학에서 학생들에게 ‘국어선생님’으로 불리고,
야학에서 학생들과 함께 만나, 함께 꿈꾸고, 집회도 함께 가고,
가난한 사람들이 차별없이 평등하게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꿈꾸고 활동하고 있다.
지난 1월 20일 한국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뒤, 야학은 2월에 일주일 동안 잠시 개학을 하고 친구들의 얼굴을 잠깐 보고는 다시 휴교하였다. 3월이 지나고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확대되었고, 야학은 다시 휴교 연장을 결정하였다. 그리고 또 휴교 연장, 또 다시 휴교 연장을 하였다.
개나리가 피는 4월이 되자 국가와 교육청의 “휴교 하라”라는 권고 외에 아무 대책이 없었음에 우리는 분노하였다. 장애인 학생들은 자가 격리 수준으로 방에 구속되어서 현실에 대한 답답함과 우울증을 호소하였 다. 야학에 오고 싶은 학생들은 야학에 들러 친구들과 선생님의 안부를 묻고는 총총히 돌아가야 했다. 국가의 코로나19 정책에서 “휴교”하라 이외의 대책 이 없었고,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순환 교육이나 온라인 교육을 하라는데... 학생들 대부분이 중증장애인, 발달 장애인인데 온라인 교육은 너무 먼 곳의 이야기였다.
코로나19가 끊어 놓은 야학과 학생들의 연대의 끈 들을 우리는 스스로 다시 연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국 가에서 장애인들이 배제되었음을 알기에 우리는 그 배제됨에 맞서 한 명도 남겨두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청솔 1, 2, 3반, 불수레반, 한소리반, 인강원 학생까지 전체 70여 명이 넘는 학생들의 가정방문을 계획하였다. 야학에 일자리가 있어 매일 나오는 학생들을 제외하고, 인강원은 한 번에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가정방문은 되도록 10~20분 정도만 머물고, 방문 시 나눌 이야기는 코로나19에 대한 예방, 학생 상담, 반찬 및 마스크 나눔, 방문 일지를 작성하는 것으로 정 리하였다. 가정방문은 4월 13~17일까지 했고, 하루에 3팀으로 나눈 후 들다방에서 도시락을 받아 움직였다. 들다방에서 반찬통을 준비하고, 소고기 장조림, 도라지무침, 오징어채 등을 준비하였다. 매일 15인분 정도의 반찬을 준비했고, 마스크를 챙기고, 비타민을 챙겼 다. 들다방은 소고기 장조림을 만들기 위해 삶은 소고 기를 잘게 찢는 지루한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가정방문을 하기 위해 학생들의 전체 주소록을 놓 고, 서울을 구 단위로 묶었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사 는 구는 노원구, 도봉구, 강북구 순이었고, 서울 전 지 역에서 나누어서 살고 있었다. 가장 멀게는 양천, 김포, 경기도 양평까지 있었다. 야학 상근자들이 총출동하여 하루 방문 팀을 3팀으로 정하고, 야학 봉고차, 전장야협 꼬마차, 노들 법인 차까지 3대를 빌려서 반찬이 준 비되는 1시부터 하루에 4~5학생의 가정을 방문하면서 돌아다녔다. 하루를 차 안에서 보내고, 때론 주소가 잘 못되어 다시 길을 찾았고, 때로 집이 아닌 곳에 있어서 그곳까지 가서 학생들을 만났다. 차 안에서, 때론 아파트 공터에서 오지 않는 학생들을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기다린다는 것은 희망과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그렇게 안부를 물었다. 잘 지내냐고…. 잘살고 있느냐고….
답답한 마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환한 웃음 으로 선생님들을 맞이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우리 발걸 음의 피로는 눈 녹듯이 녹았다. 학생들은 임대아파트에 많이 살았고, SH 전세임대 대출을 받아서 전세로 사는 학생들, 자기 집에 사는 사람들, 모두 잘 지내고 있었다.
인강원 시설에 있는 학생들에겐 따로 반찬이 필요 없을 것 같아 과일을 사서 이용자들과 같이 나눠 드시라고 드렸다. 두 달 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 시설에 있어 답답함이 코로나로 인해 더 답답하게 겹치는 얼굴들을 보고 아주 속상했다. 그래도 학생들이 잘 버티고 있다는 것, 곧 노들이 개학한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학생들에게 말해주어야 했다.
가정방문을 통해 학생들이 나름 잘 지낸다는 것, 학생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폭넓게 바라보게 된 것, 꽃님의 가지런히 놓인 이쁜 가방과 모자들을 보며 저 가방과 모자를 쓰고, 다시 야학으로 나오게 되는 날을 바라며….
우리가 학생들의 안부를 묻고, 삶을 지탱하는 지점을 찾아가는 것, 서로의 연대를 묻는 것, 그것이 코로나 19를 뚫고 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