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가을 120호 -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교사 세미나 후기 / 이가연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교사 세미나 후기
이가연 | 고려대학교에서 헌법을 전공하고 있으며, 소수자의 기본권,
그중 장애와 장애여성의 권리에 관심을 가지며 공부하고 있다.
국제인권법에서 장애인법이 따로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동 및 여성에 관한 협약 등 많은 국제협약들이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해줄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기존의 협약들은 장애인이 가지는 고유한 쟁점들을 제대로 다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이 생겨난 배경에는 유엔 자유권 규약, 사회권 규약 등 많은 국제인권조약들이 존재하지만 이러한 조약들이 장애인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해주지 못하다는 비판에 부딪힌 까닭이 있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적 장애인 운동을 통해 장애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며 장애인의 권리를 위한 별도의 국제인권법 제정의 필요성이 강조된 것이다. 이러한 비판적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전 세계적인 노력이 있었고, 마침내 2008년 5월 3일,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CRPD)이 발효되었다.
그러나 국내에 발효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이 고장샘의 표현에 따르면 ‘앙꼬 없는 찐빵’이다.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직권조사권을 담은 선택의정서는 비준이 유보되었기 때문이다. 선택의정서 또한 비준하였다면 장애인 권리 구제를 위한 소송에서 국내법적 절차를 거치는 것뿐만 아니라 장애인권리위원회가 국내 사건에 대하여 조사를 시행하고, 이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선택의정서가 비준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정부 측 국가보고서에서는 인권위 자체의 권고가 있고,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시정명령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인권위의 권고는 말 그대로 권고이기 때문에 압박을 줄 수 있는 수단일 뿐이며, 시정명령은 그 필요요건을 까다롭게 하였기 때문에 실제로 시정명령까지 닿는 데 많은 한계가 있다.
세미나를 하면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의 주요 내용과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최종견해, 그리고 이에 대한 정부의 국가보고서 내용을 조목조목 따져보았다. 예를 들어 장애인권리협약 제6조에는 장애여성 및 장애소녀에 관한 별도의 조항이 존재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장애인권리협약이 생겨난 배경과 마찬가지로, 기존 여성차별철폐협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여성의 고유한 권리 및 반차별을 제대로 보장해주지 못하는 한계 때문에 장애인권리협약에 마침내 별도로 생겨난 조항이다. 해당 조항에서는 장애여성과 장애소녀가 다중적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모든 인권과 자유를 완전하고 동등하게 향유하도록 보장하는 것을 명시하였다. 그러나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는 최종견해에서 한국의 장애인 정책과 법률에 성인지적 관점이 부족하다고 하였으며, 가정 및 시설에서 벌어지는 장애여성 대상의 성폭력 조치가 미비하다고 우려하였다. 또한, 장애여성의 임신과 출산 때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한국의 강제불임 사례에 대해 조사를 할 것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권고에 대해 추후 제출된 국가보고서에서는 모든 여성에게 적용되고 있는 출산 비용 정책을 마치 장애여성에게만 지급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등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고, 앞으로의 정책적 개선을 선명하게 제시하지 않았다. 장애여성 뿐 아니라 다른 쟁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생각해보면 나는 평소 헌법과 장애에 관해 공부하면서 장애인권리협약을 접한 적이 있지만, 법률가들의 연구를 접했을 뿐, 장애 당사자나 다른 이들의 생각을 직접 들어볼 기회는 별로 없었다. 국제인권법의 영역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낯설어할 수도 있거나, 아니면 별다른 효력이 없다고 생각하여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세미나를 통해서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권리협약을 알아야 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느꼈다. 한국에서 현재 투쟁 중인 장애 쟁점들이 장애인권리협약 속에서 교차하고 있다. 국내에서만 야기되는 일인 것 같아도 국가보고서와 모니터링이라는 제도를 통해 전 세계 수많은 장애인과 함께 연대하고 있으며 국내적 이슈를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릴 수 있다. 이러한 연대는 한국 정부에 커다란 압박이 될 것이며 국내의 법과 정책의 이행으로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일 선택의정서를 비준하게 된다면 권리침해의 사안 별로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직권조사가 가능해진다. 따라서 장애인권리협약을 제대로 활용한다면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장애등급제의 완전한 폐지, 활동지원 만 65세 연령제한, 탈시설, 자립활동 등의 쟁점들을 더 구체화하고 새로운 메커니즘으로 환기해 권리의 보장으로 나아갈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