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자료실

조회 수 36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김유미 <노들바람> 편집인

 

  1. 얼마 전, 야학 4층 들다방에서 보았던 낯선 얼굴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열흘 지났을까. 메시지

로 울리는 휴대폰 속에서 그의 얼굴을 다시 봅니다. 부고. 2019년 5월 13일, 고인이 된 이창선. 향년

35세. 2017년 12월 탈시설한 그는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자립주택에 살면서, 동료들을 만났습니

다. 탈시설 당사자 모임에 참여하고, 여행을 가기도 했습니다. 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에 입학해 공부

하고, 연극에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자유. 저는 그가 누린 자유의 시간이 너무 짧다고 느낍니다. 저는 불평등한 위치, 도약이 어려운 위

치에 갇힌 이들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와 연결된 나의 위치를 봅니다. 비장애인인 저도

뭐 그닥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 같진 않습니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하니까요.

하지만 그가 바라는 자유와 비장애인인 내가 바라는 자유는 아주 많이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노들이

라는 공간은 나의 위치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만듭니다. 고인은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를

지원해 줄 활동지원사가 어릴 때부터 있었으면 나도, 나도, 시설이라는 낯선 곳에 가지 않고 우리 집

에서 살았을 거예요.”

 

 

  2. 2009년 6월 4일, 마로니에 공원 앞에 파란색 트럭 한 대가 도착했습니다. 활동가들이 트럭에

실린 짐들을 공원 구석으로 옮겨왔습니다. 짐을 내리는 데 몇 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플라스틱 서랍

장, 종이 박스, 이불 보따리 몇 개, 벽시계 같은 게 기억 납니다. 석암 베데스다 요양원에 살던 8명의

짐이었고, 8명의 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적었습니다. 8명은 한 날 한 시에 시설을 퇴소하고, 마로니

에공원으로 나왔습니다. 집단 퇴소와 동시에 자립생활을 요구하는 농성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10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10년 사이 탈시설 장애인을 위한 자립지원 정책이 만들어지

고, 활동지원서비스가 확대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이 지원제도들이 충분하다고 할 순 없습

니다. 우리는 피곤할 정도로 매순간 싸우며, 마이너스(-)에서 영(0)의 자리로 움직이는 중입니다. ‘자

유로운 삶! 시설 밖으로!’는 여전히 뜨거운 구호입니다. ‘마로니에 8인’의 투쟁 이후, 전국 각지 장애

인거주시설에서 사람들이 탈출하듯 빠져나왔습니다. 그 중 한 명이 이창선이었을 것입니다. 여전히

부족한 집, 생계급여, 활동지원시간. 그리고 역시나 부족했을 선택의 기회들, 관계의 경험들, 자신을

위한 시간들. 변주로 가득한 생의 시간, 느닷없이 닥쳐오는 것들. 앞으로도 이것들 사이에서 없었던

삶을, 새로운 자유를 만들어가야 하는 거겠지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573 2019년 가을 120호 - 서울 인강학교 공립화에 즈음하여 / 이승헌 서울 인강학교 공립화에 즈음하여   이승헌 | 사회복지법인 인강재단 대표이사     인사   자유롭고 평등한 노들장애인야학의 26번째 생일을 축하합니다. 한때 노... file
572 2019년 가을 120호 -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교사 세미나 후기 / 이가연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교사 세미나 후기       이가연 | 고려대학교에서 헌법을 전공하고 있으며, 소수자의 기본권, 그중 장애와 장애여성의 권리에 관심을 가지며...
571 2019년 가을 120호 -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며...... / 김상희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며......     김상희 | 아담한 술집에서 술 마시는 걸 좋아합니다! ㅎㅎ           1. 퀴어문화축제에서 자유를 보다.     지난 6월 1일 서... file
570 2019년 가을 120호 - 故 박종필 2주기 추모포럼, 사회운동 활동가의 건강권을 묻다 / 강혜민 故 박종필 2주기 추모포럼, 사회운동 활동가의 건강권을 묻다      강혜민 | 비마이너 기자. 비마이너 기사로 야학 수업하고 싶어서 시사반 수업을 맡았으나 일정... file
569 2019년 가을 120호 - [노들 책꽂이] 눈부신 생명의 이야기 / 박준호 [노들 책꽂이] 눈부신 생명의 이야기 &lt;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 - 화상경험자는 무엇으로 사는가&gt; 지은이 송효정 박희정 유해정 홍세미 홍은전, 온다프레스   박준... file
568 2019년 가을 120호 - 고마운 후원인들   2019년 9월     노들과 함께하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CMS후원인     곽상아 (주)머스트자산운용 강남훈 강미자 강미진 강병완 강... file
» 2019년 여름 119호 - 노들바람을 여는 창 / 김유미 김유미 &lt;노들바람&gt; 편집인     1. 얼마 전, 야학 4층 들다방에서 보았던 낯선 얼굴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열흘 지났을까. 메시지 로 울리는 휴대폰 속에서 그의 ...
566 2019년 여름 119호 - [고병권의 비마이너] 죽음의 설교자들 / 고병권 [ 고병권의 비마이너 ] 죽음의 설교자들   고병권 맑스, 니체, 스피노자 등의 철학,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런저런 책을 써왔으며, 인간학을 ... file
565 2019년 여름 119호 - 우리의 일상을 바꾸는 투쟁,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향해 / 김윤영 우리의 일상을 바꾸는 투쟁,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향해 송파 세모녀 5주기를 맞아   김윤영 빈곤이 아니라 빈민을 철폐하는 세상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빈... file
564 2019년 여름 119호 - 최루액과 보이스피싱 / 서기현 최루액과 보이스피싱   서기현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7년 동안 집안에서 거지꼴로 살다 IMF때 반강제 자립(자립생활 아님 ㅋ).  IT업계의 비장애인들 틈바구니... file
563 2019년 여름 119호 - 끝이 보이지 않는 차별의 수풀더미라도 포기하지 않고 누군가 먼저 헤쳐나간다면 얼마 있어 많은 사람들의 발자취를 통하여 길이 생깁니다. / 이승헌 끝이 보이지 않는 차별의 수풀더미라도 포기하지 않고 누군가 먼저 헤쳐나간다면 얼마 있어 많은 사람들의 발자취를 통하여 길이 생깁니다. 이승헌 장애인차별금...
562 2019년 여름 119호 -[ 욱하는 女자 ] 아직도 갈 길이 먼 장애인이동권 / 박세영 [ 욱하는 女자 ] 아직도 갈 길이 먼 장애인이동권   박세영 센터판 활동가 세O. 센터판에서 가끔(?) 욱하면서... 맘 내키는대로(?) 활동하고 다니는 나름 정신없...
561 2019년 여름 119호 - 장애인 활동보조 권리 찾기를 위한 점수와의 전쟁 / 조민제 장애인 활동보조 권리 찾기를 위한 점수와의 전쟁   조민제 스물 셋에 장애인지역공동체에서 활동을 시작한 후 서른여섯인 지금까지 장판(장애인운동판)에서 현존... file
560 2019년 여름 119호 - [장판 핫이슈] 달마는 동쪽으로, 전장연은 세종시로~~ / 수리야 [ 장판 핫이슈 ] 달마는 동쪽으로, 전장연은 세종시로~~   수리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차별에 침묵하는 자들의 카르텔을 깨고 싶어 쉼없이 꽹과리를 ... file
559 2019년 여름 119호 - 영화 <Still Life>(스틸라이프) 그리고 BeMinor(비마이너) / 장선정 영화 &lt;Still Life&gt;(스틸라이프) 그리고 BeMinor(비마이너)   장선정 사회적기업 노란들판         1.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몰라도 나는 무연고사에 대해 생각하고 ... file
558 2019년 여름 119호 - 황유미님 12주기를 함께하러 가는 길 / 한명희 황유미님 12주기를 함께하러 가는 길   한명희 노들야학 명희입니다.   삼성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1023일 농성장을 마쳤던 작년 여름과 그 농성장들을 밤을 기... file
557 2019년 여름 119호 - [형님 한 말씀] 이종각 이사장님께 드립니다 / 김명학         이종각 이사장님께 드립니다.  김명학 ; 노들야학에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종각 이사장님 그동안 안녕하세요.   만물이 약동하는 봄입니다. 요즘... file
556 2019년 여름 119호 - 호식형과 함께 했던 노들야학 / 이진희 호식형과 함께 했던 노들야학   이진희 1998년부터 2002년 노들야학에서 활동했고,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어요.         매해 추모하는 자리를 정성... file
555 2019년 여름 119호 -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 걸고 듣기를 포기하지 않기 / 김수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 걸고 듣기를 포기하지 않기 자립 욕구 공유회 참관 후기   김수연 노들야학 신임교사 교육 중     지난 3월 6일(수)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
554 2019년 여름 119호 -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작지만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 이종운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작지만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이종운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개인 대의원.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코딩 덕후이며 지금은 통신회사에...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 58 Next
/ 58
© k2s0o1d5e0s8i1g5n. ALL RIGHTS RESERVED.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