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여름 119호 - 최루액과 보이스피싱 / 서기현
최루액과 보이스피싱
서기현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7년 동안 집안에서 거지꼴로 살다 IMF때 반강제 자립(자립생활 아님 ㅋ).
IT업계의 비장애인들 틈바구니에서 개고생하다 장판에 들어와 굴러먹은 지 15여년.
현재 어느 자립생활센터에서 소장으로 놀고먹으며.. 오로지 주둥아리 하나로 버티는 중.
여느 때와 같이 나는 집회를 하러 지하철을 타고 가고 있었다. 이동하는 동안 지루하여 꾸벅꾸벅 졸며 비몽사몽 있을 때쯤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깜짝 놀라 받아보니 역시나 모르는 사람이었다.
"예. 전장연의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예전에 최루액 관련 소송에 참여하신 적 있으시죠?"
"예, 그런데요?"
"아, 다름이 아니라 그 사건과 관련해서 국가 배상이 결정돼서요. 선생님에게 100여 만원이 지급될 꺼예요. 계좌번호와 통장 사본을 주시면 좋겠어요."
"예? 아… 그래요...? 제가 지금 이동중이라서요. 4시 이후에 연락드리면 안될까요...?"
"아.. 예 알겠습니다.~~"
꽤 해맑은 전화 목소리라서 그런지 아니면 황당한 내용이라서 그런지 잠시 동안 멍했다. 최루액 관련 소송이라.... 그게 언제적 얘기였지? 아… 2014년! 세월호 참사… 고 송국현 동지… 그리고 최루액.....
2014년은 꽤 암울했던 기억이 있다. 그 해 4월은 전국민적인 비극,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바로 그 다음날인 17일에는 고 송국현 동지가 화재로 입원해있다가 돌아가셨다. 어느 때보다도 엄혹한 분위기에서 420투쟁은 준비되고 있었다.
그 당시 이전에도 이동권과 관련된 투쟁은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유독 더딘 영역이 있었으니, 고속, 시외 버스다. 2014년에는 휠체어를 타고 이용할 수 있는 고속, 시외 버스가 단 한 대도, 정말 단 한 대도 없었다. (2019년 올해에 들어서야 겨우 10대로 시범운영의 *계획*이 있을 뿐이다. ㅠㅠ 징한 놈(?)들...)
그나마 서울 시내에는 지하철과 저상버스, 장애인콜택시로 이동이 가능했지만 시외로 이동할 때는 KTX를 이용해야만 하는데 열차 1대(보통 8~10량)에 전동휠체어 2대 밖에 못타기 때문에 상당히 제한적이다. KTX역이 대도시 위주로 있는 것은 그렇다고 쳐도 지방에서의 이동은 또다른 문제이다. 지방은 지하철은 커녕, 저상버스, 장콜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420공투단(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에서는 전국 각지 구석구석으로 갈 수 있는 고속, 시외버스에 주목했다. 이미 2005년에 제정된 이동보장법에 의해 고속, 시외버스에도 장애인의 접근권이 보장되어야 하지만 버스업체의 이기주의와 정부의 무관심 속에 2014년 당시까지 (그리고 2019년인 지금까지도) 횔체어를 타고 탈 수 있는 고속, 시외버스는 없었다. 그래서 그즈음부터 설, 추석 때마다 그리고 420 때마다 고속버스 타기 투쟁을 버스터미널에서 진행했다.
2014년 4월 20일,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서 우리는 350만원어치의 버스표를 미리 사고 정당하고 당당하게 버스를 타겠다고 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바람은 무참히 깨졌다. 버스로 접근도 물론 못하게 막았고, 이 상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경찰들의 바리케이트 뒤로 이상한 등짐 같은 것을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손에는 물총도 아닌 농약뿌리는 기계 비슷한 것이 들려있었다.
우리의 목소리와 행동이 조금 격해지자 그 뒤에 있던 경찰들은 바리케이트 너머로 무언가 물 같은 것을 쏘기 시작했다. 그냥 물인 줄 알고 (소규모 물대포 정도로 생각하며) 바리케이트를 다시 밀려는 순간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아아악 내 눈, 내 눈....!"
"저 새끼들 최루액 쏘고 있어....!"
순식간에 시위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 았다. 다급하게 물을 찾는 사람. 시위대에서 빠져 멍하니 눈물콧물을 흘리는 사람. 이 상황에 더 분노하여 경찰을 들이받는 사람.... 욕설과 비명, 오열과 분노,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어느 순간 최루액은 내 상반신에도 튀어 오른손이 화끈거리고 있었다. 황급히 물로 닦았지만 벌겋게 부어오른 오른손은 진정되기까지 2,3일이 걸렸다.
최루액 분사 사건은 이후, 파장이 꽤 컸다. 거의 모든 장애인 단체가 비판 성명을 냈고, 지상파 뉴스에도 나왔다. 며칠 후 서울지방경찰청에서는 420공투단에 담당자를 보내 공문을 전하며 사과를 했지만 여전히 어쩔 수 없는 대응이었다며 변명을 늘어놓았고, 끝내 그 사과는 거부되었다.
손해배상 청구는 사건이 있은 지 3년이 지 난 2017년에서야 진행이 되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공익 변호사가 소송을 진행했고, 관련 기자회견에서 '버스를 타는 것을 정당한 사유 없이 막은 것, 용의자가 도주하거나 소요사태에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함에도 최루액을 분사한 것, 얼굴에 정조준하여 최루액을 분사한 것 등은 명백하게 관련 법령이나 지침을 어겼고 그로 인해 집회참여자들에게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주었으므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한다'라고 밝혔다. 물론 나도 그 혼란했던 기억과 잊을 수 없는 고통 때문에 소송에 참여하기로 했었다.
거의 2년에 가까운 긴 재판 끝에 지난 2019년 1월 16일 2심에서 정당한 사유가 없는 최루액 분사가 인정이 되었다. 그래서 33인의 소송인들은 100만원(실제로는 5년간의 이자 를 포함해서 130여만원)의 배상금을 받게 된 것이다. 다만 소송대리인이 주장했던 버스 접근을 물리적으로 막은 행위, 350만원어치의 버스표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던 재산권 침해의 문제는 재판부가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다 인정을 했더라면 배상액은 더 늘어났을 것이다. (아까비… ㅋㅋ) 솔직히 고백하자면 소송에는 참여했지만 그 자세한 내용은 배상금을 받는 과 정에서 알게되었다.
내 입장에서 뜬금 없이 모르는 사람이 전화 해서 통장 사본을 달라하니 당황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서울지방검찰청의 검사라고 하는 사람까지 전화로 그런 정보를 달 라하니… 100% 보이스피싱으로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대담하게 '이거 의심되는데 검사님 신분을 어떻게 믿죠?'라고 묻자 '하하… 이해 합니다. ○○○변호사님이 대리인이시니까 확인해보세요..'라고 했다. 나는 즉시 전장연(전 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확인을 했고 기사까지 검색을 하고서야 안심을 했다.
하도 세상이 어수선(?)하여 생긴 에피소드 였지만 개인적으로는 등골이 오싹했다. 나름 여기저기 확인해서 안 당했(?)다는 뿌듯함도 있었고 ㅋㅋ (그래도 또 조심 또 조심… 언제 어떻게 당할지 모르니...ㅠㅠ) 갑자기 생긴 돈을 어떻게 쓸까하는 고민도 잠시.. 전장연에서는 문자로 발빠른 제안을 했다.
"강제는 절대 아니지만 ○○○원은 법률 대리 비용, ○○○원은 전장연 후원금, ○○○원은 개인 수익금으로 쓰시면 좋겠습니다..."
순간적으로 조금 부끄러웠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빛의 속도로 개인수익금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이체했다. 그 개인수익금은 잘 썼다. 나머지 금액도 변호사분이나 전장연에서 잘 썼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평소에는 겪기 힘든 일들이었지만 아쉬운대로 잘 해결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판사, 검사 분들이 장애인의 이동권을 이해하고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전 정권에서 싸놓은 똥(?)을 현 정권에서 치우는 꼴이지만 국가의 잘못을 공식적으로 국가에서 인정을 했다는 것은 높이 살 만하다. 그래도 더 나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