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여름 119호 - 황유미님 12주기를 함께하러 가는 길 / 한명희
황유미님 12주기를 함께하러 가는 길
한명희
노들야학 명희입니다.
삼성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1023일 농성장을 마쳤던
작년 여름과
그 농성장들을
밤을 기억하며
마음을 옮깁니다.
강남역 언제 마지막으로 가봤더라. 반올림 농성이 1023일을 끝으로 마무리 되었고 그 이후부터 그곳을 가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공간은 때론 누군가와 함께 외쳤던 구호들이 가득 차있다. 그 계절, 함께 거리에서 먹었던 김밥 한 줄도, 집에 가는 길 잡았던 술자리 한 잔도 더듬거리니 기억이 났다.
우리도 광화문농성장 지하역사에서 장애 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로 농성을 3년째 하고 있을 때쯤이었는데,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당사자분이 노들야학에 함께할 수 있는 것이 있는지에 대한 상담을 오셨다. 신경 손상으 로 인해 시각장애가 점점 진행 중이었고 집에서 나와 어딘가를 이동하기에도 부족한 활동지원 시간으로 인해, 그리고 세상에 대한 공포로 인해 한 발자국도 내딛기 어려웠다고. 사실 노들야학에서 시청각장애에 대한 학생 지원은 전체 장애 유형별의 교재교구가 지원되는 것도 아니고 전체적인 학습에 대한 분위기 등으로 어렵다. 우린 서로의 답답함을 토로했고 무언가의 관계로서라도 진척이 필요했다. 그때 마침 반올림은 농성을 시작할 무렵이였는데, 농성장에 가보고 싶어졌다. 학생들 몇 명과 함께 가서 서로의 억울함을 사무치게 뱉어 냈고 그러한 시간들이 우리를 조금이나마 친하게 해준 거 같다. 무엇인가 힘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것이 마냥, 연대라고 한다면 연대일 거고. 그날 만났던 이종란 샘을 비롯한 반올림 사람들이 좋았다면 그랬을 거고.
100일이 되기 전 처음 찾은 반올림 농성장은 내리 쬐는 햇볕과 추위를 막아줄 지붕 하나 없었고 바닥을 조금 띄어줄 두꺼운 깔판만 있었다. 그렇게 온전히 계절을 우린 있는 힘껏 안았다. 함께 해주었던 전장연, 노들야학 친구들과 아침 8시에 농성장 주위를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반올림에 대한 사안이 담긴 글을 나누어주는 아침 선전전도 같이 갔었다. 우리가 5,6명 너무 많이 가는 바람에 농성장에 있던 선전물이 모두 소진되었고 직접 복사를 더해왔던 것도 생각이 난다. 그렇게 잊기도 쉽고 사실은 별일 아닌 일들이 쌓여갔다. 그렇게 함께 반올림 농성의 하루 중 일부를 채우는 것이 기뻤나 보다.
몇 번 농성장을 찾으니 아는 이들도 많아졌다. 자기네도 농성을 하는 사람들이 여기 농성장에 온다고 반올림 분들은 이야기 하셨지만, 그런 외박하는 기분이 좋았다. “바쁠 텐데”라는 말로 시작하는 인사들,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인 마음이 전해졌다. 하루를 구성하는데 바쁨이 뭐길래, 반올림 농성장에 온 어머니와 아버지가 생각이 난다. <또 하나의 약속> 영화에서 본 황유미 님의 아버님 황상기 님도 보았다. 농성장에서 같이 간 친구들과 아버님이 같이 야간사수를 하는 기회도 얻었는데 실제로 영화에서 본 박철민 배우와의 억양과 사투 리가 너무나 똑같아서 무언가 속으로 신기했다. 이것 또한 영화라면 찬란한 결말도 우리에게 와주기를 빌어보았다. 속초에서 아직도 택시운전을 한다는 아버님, 매주 속초에서 강남역을 일주일에 2번 이상을 오고가는 아버님의 그 서울로 오는 길은 어떠한 마음이었을까. 11시가 되니 따님의 이야기와 삼성과의 투쟁에 서 서러웠던 이야기를 접어두고 주무셨다.
따님을 속초 울산바위 언덕에 묻어두고 속초에서 매주 오는 아버님처럼, 1023일 동안 매주 휠체어를 탄 딸, 한혜경 님(삼성반도체 피해노동자)과 함께 춘천에서 서울까지 열차를 타고 올라온 김시녀 어머님. 나에겐 이들이 영웅이었다.
삶을 복구한다는 것이 감히 난 상상이 안 간다. 요즘 나의 삶은 무언가를 무너지게 하기에도 나의 조금씩 부서졌을 나의 어떤 것을 볼 자신이 없다. 하지만 이 반올림의 영웅들은 그 삶을 애써 무던히 복구하고 있었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삼성이라는 자본에 대항하며, 그렇게 매일 그 하루들을 지켰다.
이번 3월 반올림 황유미 님의 추모제는 아버님이 딸을 뿌렸던 그 속초 울산바위 언덕을 함께 올랐다. 하늘은 맑았고 마음은 설렜다. 아침 일찍 사당역에서 모여 출발한 버스는 그렇게 설렌 마음들을 태우고 아버님이 매일 같이 올랐을 그 바위에 함께 갔다. 함께 추모제를 진행했고 황유미 님이 좋아했다는 후리지아를 모두 같이 들고 그녀를 그리고 노동의 현장에서 고통받고 억울하게 떠났을 그녀/그들을 추모하였다. 요즘 같은 날에는 어제도 올랐을 그 언덕에서 미풍이 불어 아버님의 등을 조금이나마 괜찮다고 밀어주었으면 좋겠다. 반올림의 속초행은 그렇게 그 설레는 마음들에게 선물을 주었고 우리도 그 선물 같은 하루에 함께 했다. 무너질 수 있는 그 많은 삶의 기회 들에게 그 선물이 언젠가 꺼내어 볼 수 있는 힘이 되어주길, 함께 했던 친구에게도 빌어본다.
삼성에서 일한 뒤 백혈병 등 질병을 얻은 사 람은 360여명. 사망자는 100명이 훨씬 넘는다. 2007년 3월 황유미 님 사망으로 촉발된 삼성 반도체 사태. 피해자들로 구성된 반올림은 11년 만에 삼성과 최종 중재안에 합의했다. 하지만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난 4월 8일 서울반도체 악성림프종 피해노동자 이가영 님이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나이 26살이 되던 봄이었다.
2018년 11월 삼선전자-반올림 중재안 발표 후, 11년간 피해 제보 450건에 절반 정도 되는 제보인 200건이 11,12월 두 달 동안 들어왔다. 반올림의 시즌2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그 시즌2의 하루들도 이렇게 기억할 수 있는 근사한 나날들이 될 수 있기를.
마지막으로 이 봄의 벚꽃을 좋아했던 가영 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