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여름 119호 -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작지만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 이종운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작지만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이종운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개인 대의원.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코딩 덕후이며 지금은 통신회사에서 비가시권 드론 비행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철학을 좋아하며 최근에는 정창조 동지가 쓴 <한나 아렌트 사유의 전선들>을 힘겹게 읽고 있다.
많은 청각장애인 당사자들이 인권활동에 관심을 가지며 함께 연대하기를 기대하며 지금도 장판에서 외로이 있다
최재민 어디서 오셨어요?
이종운 아~! 저는 양유진 친구예요. 420 집회 참석할려고 왔어요.
최재민 아 그렇군요. 만나서 반가워요~!
18년 420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광화문 광장에 도착하자마자 처음으로 마주친 사람이 발바닥 최재민 동지였고, 활짝 웃는 미소로 반겨주어 나는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장판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타잔~! 타잔~! 이라고 치타가 말을 했 습니다.”
유치원 때 숨을 죽이며 <타잔> 동화책 라디오 테이프를 들은 적이 있고, 지금도 내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는 대사이다. 그렇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경증의 청력 손상이 있었고, 보청기를 낀 상태로 숨을 죽이며 온 신경을 상대방에게 집중하면 어느 정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자전거를 타다가 교통사고를 크게 당하면서 청력을 완전히 잃었다. 이때부터 보청기가 소용없게 되었고 상대방의 입모양 움직임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의사소통을 해왔다.
“3년간의 재수생활이 나에게 준 것”
평생 공부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내가 고2 마무리할 즈음에 늦은 공부 바람이 불었다. 어째서였을까? 사연은 그러하다.. 그때 나는 충남 당진군 면천면 성상리라는 작은 촌 동네에서 지내고 있었고 대학생이라고는 구경조차 할 수 없는.. 말 그대로 논과 밭이 전부인 작은 동네였다.
하루는 서울에 놀러갔고 이때, 젊음의 거리를 누비는 많은 대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왠지 재미있는 인생을 살고 있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길로 나는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도 그때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이때부터였을까? 그 이전에는 공부하고자하는 마음조차 없었기 때문에 나의 장애가 크게 와닿는 순간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공부를 시작하고 나니 슬슬 나의 장애가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학원이나 인터넷 동영상 강 의는 자막이 나오질 않았다. 책만 보고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도서관에서 스스로 공부를 했다. 3년간의 재수생활을 마친 뒤에야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고 그토록 바라던 서울 생활을 시작하면서 장애는 개인적인 노력 으로 극복을 해야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했다.
“장활을 통해 장애운동을 알게 되다!!”
2008년 ‘장활’이라는, 장애민중연대현장활동의 줄임말로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대학생 및 활동가들이 모여 ‘장애문제의 사회적 이해’를 공부하고 ‘현장 활동’을 하는 모임을 통해 ‘장애인 운동’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전에는 ‘장애’란 개인적인 노력을 통해 극복을 해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면 장활을 한 이후부터는 ‘장애’란 사회적 구조로 인해 생기는 문제이며 우리의 권리 확보를 위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장활이라는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비로소 진정한 나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하여!!!”
지난 18년 12월 31일 국무총리 공관 앞에서 많은 동지들과 함께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를 외치며 새해를 맞이했다. 이때, 발언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그렇다. 앞으로도 더 많은 동지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끝까지 함께 싸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