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봄 118호 - 그들을 죽인 것은 작동하지 않은 스프링클러가 아니다 *정성철
그들을 죽인 것은 작동하지 않은 스프링클러가 아니다
종로 고시원 화재 사망 사건,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권 문제
정성철| 다른 건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자기소개는 못하겠다. 너무 어렵다. 빈곤사회연대에서 반빈곤운동을 하고 있다.
2018년 11월 9일 새벽, 청계천 수표교 인근 국일고시원에 화재가 발생했다. 단열기구 사용과 스프링클러 미설치가 원인으로 지목된 화재는 18명의 사상자를 낳았고 그중 7명의 삶을 앗아갔다. 서울시와 국토부는 화재로 갈 곳 없어진 이들에게 ‘서울형 긴급복지지원제도’를 통해 다른 고시원 방을 얻을 수 있는 1개월 치 주거비를 지원하고 ‘국토부 긴급주거지원’을 통해 6개월간 임시주거 할 수 있는 임대아파트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거주공간에서 발생한 화재로 죽음을 목도한 사람들에게 똑같은 공간으로 들어가라고 떠미는 정부의 대책은 한국 사회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권 현실을 보여줬다.
고시원을 생각하면 대게 대학생이나 고시생들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고시원은 더 이상 공부하는 사람들이 잠시 머무르는 공간이 아니다. 보증금 마련이 힘든 가난한 사람들이 단기 또는 장기간 머무르는 거처 중 하나다. 화재가 난 고시원에 거주하는 사람들 역시 대부분 40~70대 생계형 일용직노동자,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였다고 한다. 2018 한국도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주택 아닌 쪽방‧고시원‧숙박업소 등에서 생활하는 가구는 37만에 달한다. 이중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가구는 15만이 넘으며 97%가 1인 가구다.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가구의 소득대비 임대료 비율은 평균 30.2%이며, 수도권에 위치한 고시원의 평균 월세는 33만 4000원이다.
고시원을 포함한 주택 이외의 거처에 대한 주거복지정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07년 쪽방, 비닐하우스에 거주하는 가구를 대상으로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정책이 본격화되었다. 이후 2010년 정책 대상에 고시원 및 여인숙 거주자를 포함하는 ‘주거취약계층’ 용어가 공식화되었다. 그리고 2011년부터 홈리스를 포함한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주거취약계층 임대주택’은 쪽방‧고시원‧숙박업소 등 비주택 거처에서 3개월 이상 거주한 사람을 대상으로, 다른 임대주택에 비해 저렴한 보증금 50만원에 시세의 약 30% 월세로 입주 가능하다.
하지만 공급량이 너무 적다. 2007년부터 2018년 4월까지 공급된 주거취약계층 임대주택은 6700호에 불과하다. 공급량이 1년에 고작 600~700호 수준인 것이다. 주택 이외의 거처에서 생활하는 가구가 37만이라는 현실에 비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2018년 조사에 따르면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가구 중 공공주택 입주 의사가 있는 가구는 60.7%에 달하지만 주거복지를 이용해본 가구는 5.7%에 불과했다. ‘정보를 몰라서’, ‘신청방법‧절차를 몰라서’, ‘자격이 안 될 것 같아서’와 같은 이유로 신청조차 못 해본 가구가 80%다.
더불어 공급되는 주택 대부분이 외곽에 위치해 있는 문제가 있다. 자신의 생활권역이나 원하는 지역에 입주하기란 모래사장에서 진주알 찾기만큼 어렵다. 이번 화재에 대한 대책으로 제시된 6개월 임시거주 가능한 임대주택의 위치 역시 외곽이었다. 종로인근 인력소 등에서 하루벌이 삶을 살아 온 대다수의 화재 피해자들에게 임시로 머물기 위해 집기를 구입하여 외곽 임대주택에 입주하라는 것은 안전한 집 잠깐 내줄 테니 내일의 일상을 포기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절반 이상의 화재 피해자들이 임대주택에 들어가길 거부한 이유다.
작동하지 않은 스프링클러, 사망 원인 중 하나일 순 있지만 전부는 아니다
화재 원인 중 하나가 단열기구일 수 있지만 전부일 수는 없다. 고시원의 경우 중앙난방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하지 않는 고시원도 있을 뿐더러 한다고 해도 추위가 가시는 온도에 맞춰지지도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떻게 단열기구를 사용하지 않는단 말인가. 스프링클러가 사망 원인 중 하나일 수는 있지만 전부는 아니다. 화재로 사망한 사람들은 4만원 더 저렴한 창문 없는 방에 거주한 사람들이었다. 고시원 화재는 예견된 재난이었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거주지에서 인명사고가 났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어야 하는가. 고시원‧쪽방‧숙박업소 등 거처를 거주공간으로 인정하면서도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이나 조건에 대해 제대로 고민하지 않아 온 정부와 지자체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 아닐까.
국토교통부는 지난 10월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주거지원 방안으로 ‘고시원 매입 공공 리모델링 시범사업’과 ‘쪽방촌 인근 매입임대 활용 단체 이주지원 시범사업’ 계획을 발표했지만 세부내용은 담겨있지 않았다. 물량이 절대 부족한 임대주택을 쪽방 인근에 마련한다는 것은 맞는 방향이지만 쪽방‧고시원 등 거처에 대한 대책과는 분리되어야 한다. 고시원‧쪽방 등에서의 삶이 재난에서 안전할 수 있게 하는 안전설비와 함께 비주택 거처에 대한 별도의 주거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최저주거기준이라는 것이 있다. 주택 면적, 방 개수, 채광 등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주거기준을 정해놓은 것이다. 하지만 최저주거기준은 주택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고시원‧쪽방 등 비주택에는 현실적 적용이 어렵다. 그렇다고 고시원 등 비주택 거처에 대한 주거기준을 세우지 못할 이유는 없다. 미국, 영국, 호주 등 해외의 경우 한국의 고시원과 비슷한 비주택 거처에 별도의 주거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고시원‧쪽방 등 거처에서 화재로 인한 사망사고는 계속 있어왔다. 그때마다 가난한 사람들의 거주공간에 대한 문제도 계속 제기되어왔다. 2017년에만 해도 1월 종로 쪽방 지역 화재로 1명이 사망, 같은 달 숙박업소 방화에 의한 화재로 8명이 사망했다. 더 이상 가난이 재난으로, 죽음으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 죽음 이후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게만 지원되는 땜질식 처방으로는 이 문제를 멈출 수 없다. 고시원‧쪽방 등 거처를 사람이 사는 공간으로 인정하고 정책이 설계되어야 한다. 사람이 살고 있음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비주택 거처에 안전과 더불어 주거기준을 마련하는 주거권 대책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