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봄 118호 - 어쩌면 여기서는 함께 살아나가 볼 수 있지 않을까 *정진영
어쩌면 여기서는 함께
살아나가 볼 수 있지 않을까
정진영 |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요즘입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와 더불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몸짓패에서 활동했고, 지리학과 인류학을 공부합니다.
‘진짜 하나?’ 노들보글 라면맞춤대회가 실제로 열리기 직전까지 나는 이런 의심을 품고 그 과정을 지켜봤다. 너무나 우연한 계기로 시작되었고, 실제 열리는 당일까지 많은 변동사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에 따르면, 노들보글 라면맞춤대회는 집에서 라면을 끓였다는 장기 형의 일상적인 말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을 들은 누군가가 수업 중에 라면을 한 번 끓여 먹자고 했고, 그게 노들보글 라면맞춤대회를 개최하자는 결정으로까지 이어졌다. 라면맞춤대회 개최가 결정된 그 날, 나는 집에 가며 야학 수업을 함께 참관하던 친구와 ‘이렇게 사소한 계기로 갑작스럽게 정말 대회가 열릴까?’와 같은 이야기를 나눴다.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도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라면에 새우깡을 넣어 먹곤 한다는 누군가의 말에 재료 중 하나로 새우깡이 등장했다. 가스불이 무섭다는 누군가의 말에 가스버너 대신 라면 포트가 등장했다. 대회 준비 중간에 못 오게 된 학생도 생기고, 새로 등장한 학생도 생겨서 팀의 구성도 계속 바뀌었다. 무수히 많은 좌충우돌을 겪으며 노들보글 라면맞춤대회는 준비되고 개최되었다.
좌충우돌. 노들보글 라면맞춤대회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나는 좌충우돌하는 그 시간들이 좋았다. 그 좌충우돌은 그냥 지나치기 쉬운 말들을 지나쳐버리지 않은 데서 생긴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계의 입장에서는 무의미하고 사소하게 보일 수 있는 사람들의 말과 사정들을 ‘좋은 게 좋은 거지.’, ‘개인적인 사정들을 어떻게 다 봐주겠어.’라는 말들로 일단락하지 않은 데서 나온 좌충우돌이었다. 라면을 끓였다는 경험을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넘겨버리지 않고, 불이 무섭다는 이야기를 흘려듣지 않는 등의 섬세함이 좋았다. 사소하고 섬세하며 소중한 라면맞춤대회였다.
나는 라면맞춤대회를 준비하고 개최하는 좌충우돌의 시간들을 함께하며 노들야학에서 계속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런 노들의 사소함, 섬세함, 즐거움 같은 것들은 나에게 많은 용기를 주었다. 나는 노들야학에 오기 전에 우울함을 느끼고 있었다. 사는 게 힘들고 화나는 일들이 많은데, 삶을 바쳐서 투쟁할 깜냥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없이 무기력한 상태였다.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따위의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짧게나마 노들야학의 수업들을 참관하는 시간 동안, 살아가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세상이 사소하게 받아들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사소하지 않은 문제들을 같이 고민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 또한 이곳에서는 무력하지만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노들과 함께한 짧은 시간들 동안 나는 노들이 좋아져버렸다. 세상의 입장에서 무의미하고 사소하게 느껴지는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은 섬세함이 좋았고, 곳곳의 즐거움이 좋았다. 오랜만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여기서는 함께 살아나가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