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자료실

조회 수 39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우리가 기록한, 야학의 모날모순!

 

 

유지영 | 오마이뉴스 기자. 많은 것을 좋아하면서 살고 있어요. 잘 웃고 잘 울어요. 장래 희망은 정확하게 듣는 사람.

 

 

금요일 저녁 9시, 노들야학의 국어 수업이 끝나고 5명의 국어 교사들이 야학 근처에 있는 포차로 모여들었다. 주5일제라는 마수 아래 다들 무척이나 고단한 일상을 보내고 난 뒤였다. 막 주말이라는 감미로운 시간이 시작되는 찰나였다.

 

국어1반을 맡은 천성호 선생님의 손에 종이 한 뭉치가 들려 있었다. ‘천 샘’은 포차에 오자마자 모인 교사들 손에 종이를 하나씩 턱턱 쥐어주었다. 전국야학협의회에서 전국 야학 학생들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제1회 야학백일장’ 안내 글이었다. 

 

백일장 포스터

 

“우리도 국어 시간에 노들 백일장 한 번 해봅시다.” 천 샘은 비장하게 입을 뗐다. 그 후 몇 시간 동안 모든 것이 속전속결로 정해졌다. 종이를 쥐어주듯 천 샘은 교사들에게 하나씩 역할을 턱턱 쥐어주었다. 백일장 기획안, 포스터 디자인, 사회자, 심사위원 등 하나씩 역할이 정해졌다. 내게 떨어진 역할은 심사위원이었다.

 

“심사위원! 아, 이거 진짜 엄청난 역할이에요. 크하하~” 천 샘은 노들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법한 특유의 말투로 자신의 주장을 밀어붙였다. 거절하고 싶었지만 불과 몇 초 전까지 다른 샘들이 하나씩 백일장 역할을 맡을 때마다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던지라, 양심상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애매한 웃음과 눈썹 긁기로 소심한 거절 의사를 밝혔지만 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심사위원이 됐다.

 

일은 착착 진행됐다. 며칠 뒤 국어4반의 현아 샘은 백일장 기획안을 써왔다. 국어5반 준호 샘이 포스터를 제작해 노들야학 전체에 백일장 포스터가 붙었다. 국어3반 은영 샘은 행사의 사회를 맡았고 '모날모순(모든 날 모든 순간) 백일장'이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었다. 하지만 야학에 와서 포스터를 볼 때마다 ‘과연 글을 몇 명이나 쓸까’라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총 38편의 보석 같은 글.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우였다. 백일장이 열리기 며칠 전부터 학생들의 글이 그야말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글 중에는 짧은 시도 있었지만 긴 산문도 있었다. ‘몇 명이나 글을 쓸까’라는 우려 대신 마음속에는 다른 걱정이 들어섰다. ‘과연 이 글들을 제 시간 안에 읽어볼 수나 있을까’라는 걱정이었다. 결국 12월 21일 백일장 공모가 끝나기 직전, 교사와 학생 응모자를 포함해 총 38편의 글이 들어왔다.

 

글을 쓰지 못하는 학생은 말로 대신 읊었고 다른 학생이나 교사가 이를 받아 써주었다. 글을 쓸 줄 아는 학생은 한 자 한 자 직접 글을 썼다. 그렇게 완성된 글이 38편이었다. 좀 촌스러운 비유긴 하지만, 한 편 한 편이 정말 보석 같았다. 심사를 하기 위해 38장의 종이를 들었다. 묵직했다. 여기서 대상 1편, 최우수상 2편, 우수상 3편까지 딱 6편을 골라야 했다. 

 

야학에서의 생활, 한글 혹은 수학을 배우고 난 뒤의 경험, 야학의 이동권 투쟁 이후의 생각 등등, 심사를 하기에도 조심스러울 정도의 표현들이 ‘툭툭’ 쏟아졌다.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심사를 해야 했다. 종이 위로 눈을 바쁘게 굴리면서 글을 하나씩 넘기며 심사를 시작했다.

 

궁금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 덧붙인다. 심사는 크게 두 가지 항목으로 나눠서 진행했다. 하나는 사전에 학생들에게 제시한 ‘야학과 삶’이라는 주제에 잘 맞춰서 글을 썼느냐였고, 또 다른 하나는 글이 야학 구성원들의 공감을 얻기에 적합한지였다. 그 심사 기준에 맞춰서 글을 보기 시작했다.

 

“애경 언니, 장콜(장애인 콜택시) 왔대요!” 그 말 한 마디에 심장이 바삐 뛰었다. 연말이라 장콜이 잘 안 잡히기 때문이었다. 한 번 지나가면 길게는 2시간도 넘게 기다려야 하는 장콜이 이날은 유독 원망스러웠다. 어느덧 나를 비롯한 세 명의 심사위원들의 손이 빨라졌다. 고작 1~2점 차이가 나는 글들이 많았다. 그만큼 글을 모두 잘 써서 심사가 어려웠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글쓰기를 끝마친 학생들은 어느덧 교실에 모여 노래를 쿵짝쿵짝 부르고 있었다. 박경석 고장 샘의 백일장 맞이 축하 공연도 마무리가 됐다. 장콜이 떠나기 전에, 기다림에 지친 학생들이 집으로 가기 전에, 심사를 마무리해야 했다. 그렇게 6명의 당선자가 정해졌다. 곧 이 글들은 문집으로 만나볼 수 있다.

 

백일장에 참석해준 모든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또 글을 잘 썼으나 아쉽게 상을 타지 못한 분들에게는 1년 후 다시 열리게 될 백일장 기회를 노려봐달라는 아쉬움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백일장 수상 작품

 

대상)

 

투쟁이 바꾼 시선

이상우 

 

(노들야학에) 처음에 왔을 때 좀 신기했어. 이런 곳도 있구나.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어서 좋은 학교다 생각했었어. 그리고 여기선 ‘내가 해보고 싶은 거 제대로 해볼 수 있겠구나’ 싶었어. 

특히 야외 수업에서 이런 느낌이 있었어. ‘같이 살려는 건데 왜 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이런 생각. ‘이런 게(투쟁)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때 세상이 바뀌는 거 같았어. 장애인을, 나를 보는 시선이 달랐어. 장애인은 시설에 있어야 할 것처럼 봤었는데 ‘내 몸이 바깥에 나와있어서 그런 걸까?’ 장애인도 시설 바깥에서 살 수 있다고 사람들이 본다고 생각하게 됐어. 내가 나와서 그렇게 보게 되는 거 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 시선도 많이 변했다고 생각해. 어려워도 자꾸 부딪치면 시선도 바뀌게 돼. 요즘 활동지원사 실습이 오면 나를 보고 놀라. “몸도 안 좋은데 어떻게 그렇게 활동하냐고.” 이런 말 들으면 기분이 좋아. 

또 활동지원사가 옆에 있어서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이제는 생각하게 되는 게. 그렇게 새롭게 나를 느끼는 게 되는 게 좋아. 용기라고 할까. 즐겁게 살고 있어. 내가 꿈꿨던 것이 비로소 이뤄진 것 같고. 사회 나와서 공부하고,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을 때 특히 좋아. 결혼도 마찬가지고.

 

 

 

최우수상1)

 

야학

조호연

 

여기 오기 전에 외로웠었지

집에도 밖에서도 외로웠지

언제부턴가 어디서 들려왔지

여기로 오세요 여기로 오세요

바람타고 나를 부르는 소리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인가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바람따라 간 곳

그곳은 항상 시끌벅적

선생보다 학생 나이가 많은

특별한 이곳

이곳엔 친구들이 많아서 기뻤지

날 반가이 맞이해 주는 이곳

가진 것은 없어도 마음이 좋은 이곳

 

 

 

최우수상2) 

 

이영애의 한글 정복기

이영애

 

제가 2002년도에 사회복지 선생님을 만나게 됐어요. 정립회관의 주간보호센터 선생님을 만나게 됐는데요, 제가 한글을 못 배웠다니까 3층에 ‘노들장애인야학’이 있다고 얘기하셨어요. 같이 가서 야학 선생님께 소개시켜주고 그 때부터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ㄱ, ㄴ, ㄷ부터 시작했어요. 맨 처음에는 잊어먹고 또 잊어먹고 했는데, 2년이 넘어가니까 조금 글자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맨 처음에 집 앞에 있었던 ‘이발소’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어요. 그러다가 문장을 읽을 수 있게 되었어요. 국어반에 계시는 정민구 선생님이 ‘도가니’ 책을 학생 분들께 만들어주셨어요. 도가니를 읽으라는 숙제를 내주셔서 평일에는 조금 일찍 와서 글을 읽었습니다. 책을 한 학기 동안 떼었습니다. 야학에 온 지 2~3년이 되자, 글을 다 떼었습니다. 텔레비전 자막도 다 읽을 수 있고, 외국영화 자막도 조금씩 읽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은 한글을 몰라서 답답했었는데, 이제 글을 잘 읽을 수 있어서 제 자신을 뿌듯하게 생각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540 2019년 여름 119호 - [동네 한 바퀴] 노동건강연대 그리고 정우준 / 김유미 [ 동네 한 바퀴 ] 노동건강연대 그리고 정우준   김유미 일상 대부분의 커피와 밥을 노들에서 해결하는 사람. 야학에서 수학 2반 수업을 맡고 있다. 이번 학기 목... file
539 2019년 여름 119호 - [오 그대는 아름다운 후원인] 인터뷰_김태식 노동·정치·사람 집행 위원장 / 한명희 [ 오 그대는 아름다운 후원인 ] 연대의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인터뷰_김태식 노동·정치·사람 집행위원장   한명희 어제, 오늘, 내일 그렇게 애쓰며 삽니다, ... file
538 2019년 여름 119호 - 고마운 후원인들 2019년 5월 노들과 함께하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CMS후원인 (주)머스트자산운용 강남훈 강미자 강미진 강병완 강복현 강성윤 강수혜 강영미 ... file
537 2019년 봄 118호 - 노들바람을 여는 창 *김유미 노들바람을 여는 창 김유미 | <노들바람> 편집인 1. 그저 기분이겠지만. 요가를 하다보면 호흡, 그러니까 숨 쉬기가 아주 중요하게 여겨지는 때가 있습니다. 목표... file
536 2019년 봄 118호 - ‘잊는다’는 것은……. *장선정 ‘잊는다’는 것은……. 장선정 | 노란들판 남동생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어요. 1월 새벽이었는데, 이 추운 아침에 도대체 누구냐며 전... file
535 2019년 봄 118호 - [고병권의 비마이너] 여기 사람이 있다 *고병권 [고병권의 비마이너] 여기 사람이 있다 고병권 | 맑스, 니체, 스피노자 등의 철학,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런저런 책을 써왔으며, 인간학을 ... file
534 2019년 봄 118호 - 그들을 죽인 것은 작동하지 않은 스프링클러가 아니다 *정성철   그들을 죽인 것은 작동하지 않은 스프링클러가 아니다 종로 고시원 화재 사망 사건,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권 문제     정성철| 다른 건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자... file
533 2019년 봄 118호 - [장판 핫이슈] 말로는 폐지, 하지만 실상은 가짜 폐지? *박철균   [장판 핫이슈]  말로는 폐지, 하지만 실상은 가짜 폐지?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해 사다리를 매단 가을 겨울 장애인 투쟁   박철균 | 2015년 4월부터 지... file
532 2019년 봄 118호 - 차별의 벽, 아픔의 벽을 함께 넘는 노력 *김호세아   차별의 벽, 아픔의 벽을 함께 넘는 노력 코레일 차별규정 현장 실측 및 진정 기자회견을 준비하며   김호세아 | 잘못은 반성하고, 사과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 file
531 2019년 봄 118호 - 노들과 나의 인연 *강윤중     노들과 나의 인연                         강윤중 | 경향신문 사진기자. 무려 20년차다. 2002년 ‘장애인이동권’으로 생애 첫 사진다큐를 한 뒤 기자로서 나... file
530 2019년 봄 118호 - [형님 한 말씀] 2019년을 맞으며... *김명학   [형님 한 말씀] 2019년을 맞으며...   김명학 | 노들야학에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2019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에는 노들야학을 알고 계시는 여러분들 가... file
529 2019년 봄 118호 - [노들아 안녕] 노들 공장 적응기 *서민정   [노들아 안녕] 노들공장 적응기    서민정     안녕하세요. 저는 2018년 8월에 노란들판 사무팀원으로 입사한 서민정입니다. 입사 소감을 쓰기에 앞서 뜬금없는... file
528 2019년 봄 118호 - [노들아 안녕] 변화를 추구하는 활동 현장에 함께하고자 합니다 *김유진   [노들아 안녕] 변화를 추구하는 활동 현장에 함께하고자 합니다   김유진      안녕하세요.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자립주택팀 신입활동가 김유진입니다.  저... file
527 2019년 봄 118호 - 어쩌면 여기서는 함께 살아나가 볼 수 있지 않을까 *정진영   어쩌면 여기서는 함께 살아나가 볼 수 있지 않을까     정진영 |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요즘입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와 더불어 어떻게 ... file
526 2019년 봄 118호 - 노들 신입활동가 교육을 마치고 *장준호   노들 신입활동가 교육을 마치고   장준호 |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안녕하세요 저는 노들센터 자립주택 코디네이터 장준호라고 합니다.  졸업 후 4년 ... file
525 2019년 봄 118호 - 사단법인 노란들판 로고 ‘디자인’ 이야기 *고수진   사단법인 노란들판 로고 ‘디자인’ 이야기   고수진 | 생각이 깊은 디자인을 꿈꾸며 오늘도 작은 손을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디자이너     오랫동안 사단법인 노... file
» 2019년 봄 118호 - 우리가 기록한, 야학의 모날모순! *유지영     우리가 기록한, 야학의 모날모순!     유지영 | 오마이뉴스 기자. 많은 것을 좋아하면서 살고 있어요. 잘 웃고 잘 울어요. 장래 희망은 정확하게 듣는 사람. ... file
523 2019년 봄 118호 - [교단일기] 우당탕탕 낮수업 파이팅 *김지예         [교단일기]   우당탕탕 낮수업 파이팅   김지예  | 후회하는 일이 취미인 집순이지만 늘 세상일에 촉을 세우고 삽니다.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 file
522 2019년 봄 118호 - 낮수업, 긴장감과 허기짐의 이유를 찾아서 *이화영     낮수업, 긴장감과 허기짐의 이유를 찾아서 교사 세미나 후기                                               이화영 | 그래픽디자이너는 무얼하는 사람일까... file
521 2019년 봄 118호 - [자립생활을 알려주마] 연순 아파트     [자립생활을 알려주마] 연순 아파트    고권금 | 소개글을 쓰려고 하니 Superorganism의 Something for your mind 노래가 생각나네요.       슬랩스틱, 다정... fil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 54 Next
/ 54
© k2s0o1d5e0s8i1g5n. ALL RIGHTS RESERVED.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