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봄 118호 - 우리가 기록한, 야학의 모날모순! *유지영
우리가 기록한, 야학의 모날모순!
유지영 | 오마이뉴스 기자. 많은 것을 좋아하면서 살고 있어요. 잘 웃고 잘 울어요. 장래 희망은 정확하게 듣는 사람.
금요일 저녁 9시, 노들야학의 국어 수업이 끝나고 5명의 국어 교사들이 야학 근처에 있는 포차로 모여들었다. 주5일제라는 마수 아래 다들 무척이나 고단한 일상을 보내고 난 뒤였다. 막 주말이라는 감미로운 시간이 시작되는 찰나였다.
국어1반을 맡은 천성호 선생님의 손에 종이 한 뭉치가 들려 있었다. ‘천 샘’은 포차에 오자마자 모인 교사들 손에 종이를 하나씩 턱턱 쥐어주었다. 전국야학협의회에서 전국 야학 학생들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제1회 야학백일장’ 안내 글이었다.
“우리도 국어 시간에 노들 백일장 한 번 해봅시다.” 천 샘은 비장하게 입을 뗐다. 그 후 몇 시간 동안 모든 것이 속전속결로 정해졌다. 종이를 쥐어주듯 천 샘은 교사들에게 하나씩 역할을 턱턱 쥐어주었다. 백일장 기획안, 포스터 디자인, 사회자, 심사위원 등 하나씩 역할이 정해졌다. 내게 떨어진 역할은 심사위원이었다.
“심사위원! 아, 이거 진짜 엄청난 역할이에요. 크하하~” 천 샘은 노들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법한 특유의 말투로 자신의 주장을 밀어붙였다. 거절하고 싶었지만 불과 몇 초 전까지 다른 샘들이 하나씩 백일장 역할을 맡을 때마다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던지라, 양심상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애매한 웃음과 눈썹 긁기로 소심한 거절 의사를 밝혔지만 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심사위원이 됐다.
일은 착착 진행됐다. 며칠 뒤 국어4반의 현아 샘은 백일장 기획안을 써왔다. 국어5반 준호 샘이 포스터를 제작해 노들야학 전체에 백일장 포스터가 붙었다. 국어3반 은영 샘은 행사의 사회를 맡았고 '모날모순(모든 날 모든 순간) 백일장'이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었다. 하지만 야학에 와서 포스터를 볼 때마다 ‘과연 글을 몇 명이나 쓸까’라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총 38편의 보석 같은 글.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우였다. 백일장이 열리기 며칠 전부터 학생들의 글이 그야말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글 중에는 짧은 시도 있었지만 긴 산문도 있었다. ‘몇 명이나 글을 쓸까’라는 우려 대신 마음속에는 다른 걱정이 들어섰다. ‘과연 이 글들을 제 시간 안에 읽어볼 수나 있을까’라는 걱정이었다. 결국 12월 21일 백일장 공모가 끝나기 직전, 교사와 학생 응모자를 포함해 총 38편의 글이 들어왔다.
글을 쓰지 못하는 학생은 말로 대신 읊었고 다른 학생이나 교사가 이를 받아 써주었다. 글을 쓸 줄 아는 학생은 한 자 한 자 직접 글을 썼다. 그렇게 완성된 글이 38편이었다. 좀 촌스러운 비유긴 하지만, 한 편 한 편이 정말 보석 같았다. 심사를 하기 위해 38장의 종이를 들었다. 묵직했다. 여기서 대상 1편, 최우수상 2편, 우수상 3편까지 딱 6편을 골라야 했다.
야학에서의 생활, 한글 혹은 수학을 배우고 난 뒤의 경험, 야학의 이동권 투쟁 이후의 생각 등등, 심사를 하기에도 조심스러울 정도의 표현들이 ‘툭툭’ 쏟아졌다.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심사를 해야 했다. 종이 위로 눈을 바쁘게 굴리면서 글을 하나씩 넘기며 심사를 시작했다.
궁금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 덧붙인다. 심사는 크게 두 가지 항목으로 나눠서 진행했다. 하나는 사전에 학생들에게 제시한 ‘야학과 삶’이라는 주제에 잘 맞춰서 글을 썼느냐였고, 또 다른 하나는 글이 야학 구성원들의 공감을 얻기에 적합한지였다. 그 심사 기준에 맞춰서 글을 보기 시작했다.
“애경 언니, 장콜(장애인 콜택시) 왔대요!” 그 말 한 마디에 심장이 바삐 뛰었다. 연말이라 장콜이 잘 안 잡히기 때문이었다. 한 번 지나가면 길게는 2시간도 넘게 기다려야 하는 장콜이 이날은 유독 원망스러웠다. 어느덧 나를 비롯한 세 명의 심사위원들의 손이 빨라졌다. 고작 1~2점 차이가 나는 글들이 많았다. 그만큼 글을 모두 잘 써서 심사가 어려웠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글쓰기를 끝마친 학생들은 어느덧 교실에 모여 노래를 쿵짝쿵짝 부르고 있었다. 박경석 고장 샘의 백일장 맞이 축하 공연도 마무리가 됐다. 장콜이 떠나기 전에, 기다림에 지친 학생들이 집으로 가기 전에, 심사를 마무리해야 했다. 그렇게 6명의 당선자가 정해졌다. 곧 이 글들은 문집으로 만나볼 수 있다.
백일장에 참석해준 모든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또 글을 잘 썼으나 아쉽게 상을 타지 못한 분들에게는 1년 후 다시 열리게 될 백일장 기회를 노려봐달라는 아쉬움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백일장 수상 작품
대상)
투쟁이 바꾼 시선
이상우
(노들야학에) 처음에 왔을 때 좀 신기했어. 이런 곳도 있구나.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어서 좋은 학교다 생각했었어. 그리고 여기선 ‘내가 해보고 싶은 거 제대로 해볼 수 있겠구나’ 싶었어.
특히 야외 수업에서 이런 느낌이 있었어. ‘같이 살려는 건데 왜 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이런 생각. ‘이런 게(투쟁)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때 세상이 바뀌는 거 같았어. 장애인을, 나를 보는 시선이 달랐어. 장애인은 시설에 있어야 할 것처럼 봤었는데 ‘내 몸이 바깥에 나와있어서 그런 걸까?’ 장애인도 시설 바깥에서 살 수 있다고 사람들이 본다고 생각하게 됐어. 내가 나와서 그렇게 보게 되는 거 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 시선도 많이 변했다고 생각해. 어려워도 자꾸 부딪치면 시선도 바뀌게 돼. 요즘 활동지원사 실습이 오면 나를 보고 놀라. “몸도 안 좋은데 어떻게 그렇게 활동하냐고.” 이런 말 들으면 기분이 좋아.
또 활동지원사가 옆에 있어서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이제는 생각하게 되는 게. 그렇게 새롭게 나를 느끼는 게 되는 게 좋아. 용기라고 할까. 즐겁게 살고 있어. 내가 꿈꿨던 것이 비로소 이뤄진 것 같고. 사회 나와서 공부하고,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을 때 특히 좋아. 결혼도 마찬가지고.
최우수상1)
야학
조호연
여기 오기 전에 외로웠었지
집에도 밖에서도 외로웠지
언제부턴가 어디서 들려왔지
여기로 오세요 여기로 오세요
바람타고 나를 부르는 소리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인가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바람따라 간 곳
그곳은 항상 시끌벅적
선생보다 학생 나이가 많은
특별한 이곳
이곳엔 친구들이 많아서 기뻤지
날 반가이 맞이해 주는 이곳
가진 것은 없어도 마음이 좋은 이곳
최우수상2)
이영애의 한글 정복기
이영애
제가 2002년도에 사회복지 선생님을 만나게 됐어요. 정립회관의 주간보호센터 선생님을 만나게 됐는데요, 제가 한글을 못 배웠다니까 3층에 ‘노들장애인야학’이 있다고 얘기하셨어요. 같이 가서 야학 선생님께 소개시켜주고 그 때부터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ㄱ, ㄴ, ㄷ부터 시작했어요. 맨 처음에는 잊어먹고 또 잊어먹고 했는데, 2년이 넘어가니까 조금 글자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맨 처음에 집 앞에 있었던 ‘이발소’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어요. 그러다가 문장을 읽을 수 있게 되었어요. 국어반에 계시는 정민구 선생님이 ‘도가니’ 책을 학생 분들께 만들어주셨어요. 도가니를 읽으라는 숙제를 내주셔서 평일에는 조금 일찍 와서 글을 읽었습니다. 책을 한 학기 동안 떼었습니다. 야학에 온 지 2~3년이 되자, 글을 다 떼었습니다. 텔레비전 자막도 다 읽을 수 있고, 외국영화 자막도 조금씩 읽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은 한글을 몰라서 답답했었는데, 이제 글을 잘 읽을 수 있어서 제 자신을 뿌듯하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