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봄 118호 - 낮수업, 긴장감과 허기짐의 이유를 찾아서 *이화영
낮수업, 긴장감과 허기짐의 이유를 찾아서
교사 세미나 후기
이화영 | 그래픽디자이너는 무얼하는 사람일까가 늘 궁금한 그래픽디자이너. 늘 만드는 생활이 두려워져 잠시 쉬며 만나지 못했던 관계들을 노들야학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2018년 하반기 노들야학의 낮수업은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후 1시 30부터 4시까지 주제가 다른 요일별 수업으로 이루어진다. 월요일은 자립생활 수업으로 야외 활동과 체육관 수업, 화요일은 만딩고 댄스 수업, 수요일은 핸드드립 카페 수업, 목요일은 진 만들기 수업, 금요일은 노래방 수업을 한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저녁 야학 활동을 오래 한 학생들과 시설에서 거주하는 발달장애인 학생들 약 20명으로 구성되었다.
요일별 수업들을 살펴보면, 나의 일주일 활동 시간표로 삼고 싶을 정도로 매일 흥미진진한 수업들이지만, 교사로 참여하는 나는 솔직히 재미보다는 힘들다란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점심을 먹고 바로 수업에 들어가지만, 수업이 끝나는 동시에 “배고파!”를 외치며 주머니 속 사탕을 만지작거리는 것이 행동 패턴이 되어버렸다. 이 허기짐의 이유를 따져보자면 2시간 반 동안의 수업 시간에 내 몸의 감각들은 모두 초긴장 상태에 놓이기 때문인 듯하다. 서로 조금씩 다른 장애의 특징 때문에 학생들이 표현하는 언어와 욕구가 모두 다르고, 거기에 교사의 언어와 욕구가 서로 얽히게 되면, 우리는 서로의 다양한 언어와 욕구를 알아채기 위해 몸의 모든 감각들을 깨울 수밖에 없는 상태에 자연스레 놓이게 된다. 때문에 이런 긴장감과 허기짐을 반복해 느끼는 낮수업 교사들은 발달장애인의 이해를 주제로 각 주제와 관련된 전문가들을 초대하여 교사 세미나를 열어보기로 계획하였다.
10월 13일 금요일 발달장애인의 도전 행동과 교수 환경(박미경 교사)을 주제로 시작한 교사 세미나는 10월 17일부터 매주 수요일 저녁 7-9시에 노들장애인야학 4층 세미나실에서 총 5회에 걸쳐 진행되었다. (첫 번째 주제였던 ‘발달장애인의 도전 행동과 교수 환경’은 개인적인 일정으로 불참하게 되어 2회차 세미나부터의 소감을 적겠다.)
2회차 세미나는 ‘발달장애인 교육의 원칙들–길잡이 교사’란 주제로 전 특수학교 교사이면서 노란들판에서 일하고 있는 조상필님이 진행했다. 발달장애인들의 특징에 대한 소개와 상필님의 특수학교 교사 시절의 경험담 이야기 후 바로 그룹 토론으로 이어졌는데, 낮수업 교사들이 경험한 수업시간에서의 갈등 상황 및 다양한 이슈들을 함께 경험하지 못한 세미나 참석자들에게 내용을 전달하는데 그치게 되어, 길잡이 교사에 대한 충분한 토론으로 이어지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어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3회차 강의는 ‘발달장애의(지적장애 및 자폐성 장애) 이해’를 주제로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김기룡님께서 해주셨다. 지금까지 발달장애인들을 지원하는 국가 정책과 예산 규모 그리고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과 관련하여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한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에 대한 미래의 발달장애 정책 방향을 살펴보고, 국가가 바라보는 발달장애인의 지원 규모나 시각, 태도들을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다. 현재의 노들야학이 더 많은 발달장애인들을 포용할 때, 실제로 무엇을 고려하고 어떤 지원 가능한 관계들을 맺으면 좋을지에 대한 구체적 정보와 조언들도 더불어 듣게 되어, 앞으로의 수업 운영에 참고하고 반영할 수 있을 것 같다.
4회차 세미나는 스쿨오브무브먼트의 최하란 대표의 ‘발달장애인 돌발 행동에 대한 안전한 방어와 실천’을 주제로 셀프 디펜스, 자기방어 훈련 시간을 가졌다. 최하란 선생님은 여러 기관과 함께 발달장애인의 돌발 행동에 대한 케이스들을 수집했고, 돌발행동이 나타났을 때 현장에서 발생하는 여러 갈등과 위험 상황들에 대한 분석을 하면서, 안전한 방어와 실천은 장애인의 인권과 교육권 그리고 실무자들의 인권과 노동권을 함께 존중하고 보호하는 교육이라고 했다. 그리고 실무자들에 대한 안전한 방어와 실천에 관한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교육은 장애인들을 위한 교육, 치료, 복지 등 사회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했다. 한 시간가량의 강의 후, 간단한 스트레칭과 몸풀기를 시작했다. 두 사람씩 짝을 짓고, 우선 방어를 하기 전 돌발 상황을 진정시킬 수 있는 언어와 목소리, 어투와 손짓 등을 연습하고 나서, 방어할 때 공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몸의 위치와 동작들을 실습했다. 자기방어의 기본 원리는 1. 손을 들어 자신을 보호할 준비를 하기 2. 상대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하기 3. 공격의 경로에서 벗어나기 4. 안전한 각도와 거리를 유지하고 주시하기 라고 한다.
마지막 5회차 세미나는 ‘발달장애인의 교수 학습 방법과 교수 환경’이란 주제로 현 특수학교 교사인 소진님의 강의였다. 사실 이 강의는 특수학교 교사들이 공부하고 사용하는 학습법 전문 용어들이 많아 나로서는 강의 내용을 바로바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소진님이 실제로 학교에서 쓰고 있는 빼곡한 학생 관찰 일지와 글과 그림이 함께 있는 교수 도구의 예시를 보니, 꾸준한 관찰과 자세한 기록들이 쌓여야만, 학생들의 언어와 욕구를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는 준비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들장애인야학의 낮수업 교사를 시작하기 전, 나의 일상 안에서 장애인들을 만나 사회적 관계를 맺어본 경험과 기회가 있었는가, 스스로 묻는다. 늘 타고 다니는 저상버스 안에서 장애인 이용자를 만나본 적 있는가? 지하철 엘리베이터 승강장 앞에 서 있는 장애인을 본 적 있는가? 장애인 고용을 촉진한다는 정부의 정책에 맞추어 장애인 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장을 본 적 있는가? 내가 일하는 곳에서 장애인 노동자와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가?
낮수업에서 매일 경험하고 있는 허기짐과 내 몸의 모든 감각들을 초긴장 상태로 놓아야 하는 어쩌면 당연한 이유는, 비로소 학생들과 만나게 된 관계 때문일 것이다. 이제야 난 한 학기를 함께한 낮수업 20여명의 학생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떤 수업을 좋아하고 어떤 선생님을 좋아하는지 알게 됐고, 한 명 한 명의 표정들이 뚜렷이 그려진다. 맛있는 것을 더 먹고 싶고, 좋아하는 사람과 오래 이야기 나누고 싶고, 좋아하는 노래를 여러 번 듣고 부르고 싶고,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수업 시간에도 그냥 드러눕고 싶고, 하는 이러한 마음과 욕구들은 사실 누구에게나 있는 것 아닌가. 한 번의 교사 세미나로 낮 수업 학생들을 이해했다고, 알 것 같다고 할 수는 없다. 이제야 나와 그들이 분리가 아닌 만남의 관계로 서로 한 걸음 내디뎠을 뿐이다. 곧 개학이다. 우리는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하루하루 만나서 시간을 보내고 시도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또 그것이 아니라면 다시 돌아가도 괜찮은 관계가 되었다. 일상의 부분을 나누는 우리는 또다시 수업을 시작한다.